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삼하 21:1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19:12
죽이고 죽고, 모해하고 음해하고, 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중에도 진실은 선다. 저마다 사연은 있고 그럴 수밖에 없던 필연적인 이유들이 겹치면서,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저들도 자신인들 자기를 어쩔 수 있었겠나? 내남없이 똑같은 본질이어서 누구의 어떤 모습을 보다 싫증이 날 때 그게 바로 나였겠구나, 생각을 한다. 오늘 말씀은 더욱 그 현장이 지긋지긋하다. 싸움과 싸움이 그칠 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매순간이 “다윗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그러그러할 때,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우리의 본분은 그 중심이 어떠하냐? 하는 것이다. 주께 묻고 주를 의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호 4:12).” 남들이 그러는 것이야, 저가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런다 할 수 있겠으나 우리는 어쩔 것인가? 내가 아는 복음의 값은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되셨다.’ 곧 저의 죽으심이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내가 여전히 저들과 같이 있을 때이다. 그 복음의 이익은 죄인인 나를 의롭다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9).” 그 결과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즐거움이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11).” 나는 나무에게 묻고 막대기가 나에게 답을 해주던 것을 주께서 돌이키셨다.
나는 요즘 아이와 성경공부를 할 때 더는 ‘아픈 아이’를 대하듯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엉뚱한 잡소리가 평소 내가 늘 항변하는 것들과 다르지 않아서 말이다. 곧 우리는 모두 병들었다. 다만 누구는 아프고 누구는 아프지 않다. 어떻든 서로가 병들었다는 것을 자꾸 외면한다. 그러니 그럼 다른 길이 있나? 좀 더 너그럽고 인자하게, 온화하고 의연하게 굴려고 해도 심지어 나의 병적인 조바심과 안달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누구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주께 물어야 하고 주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남들보다 ‘더욱’,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10).” 우리에게는 ‘더욱’이 필요하다.
더욱 믿음으로,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곧 더욱 성령으로,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또한 은혜로 더욱,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5, 8-9).” 그러므로 더욱 그리스도와 함께,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7:27, 10:10).”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1:5-6,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더욱 하나님 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73:25).” 고로 그 확증을 본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26).”
정말이지 하는 것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이다. 장모를 모시고 아이를 상대하는 일이 대수로울 게 없는 것 같은데 번번이 녹초가 된다. 전날에도 아홉시에 곯아떨어지더니 어제도 열 시가 안 돼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오전에 다시 되새기는 것으로 새 힘을 얻는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감정에 더는 마음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불안은 저절로 일고 육신의 고통도 제멋대로여서 그저 그러려니, 아프면 아픈 대로 놓아둔다. 가령 아이가 ‘교묘하게’ 스스로를 장애인이라 여기며 마치 그래서 그래도 되는 일처럼 변명할 때 나는 꾸짖는다. 그건 모두가 다 같고 저마다 자신과 다퉈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공부하기 싫고, 책 읽기 싫고, 글쓰기 싫을 때 그처럼 능청을 떤다. 그러면서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기가 막히게 잘도 한다. 뭐라 꾸짖고 야단치다 그게 곧 나였다는 것에 새삼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교묘하게 바꾸어 변명으로 삼으려는 것은 엇비슷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종종 느끼지만 죄와 은혜가 맞물려있다. 가짜가 정말 진짜 같은 것은 진짜가 진짜 진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다윗의 시대가 아무리 요동친다 해도, 기근이 몇 년째 이어진다 해도, 우리로서는 주께 묻는 것뿐이다. 주의 인도하심을 바랄 따름이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그렇게 반문한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9:12).” 내가 어찌 나의 허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이를 뭐라 하고 장모에 대해 어떤 불편한 마음이 실은 다 내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어서, 마치 나는 저들보다 낫다 여기는 마음이 죄악이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나의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주셔야 하는 일이지 내가 누굴 훈계하고 가르쳐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13).” 주 앞에 다만 송구하고 부끄러워 나는 주의 도우심만을 바랄 뿐! 언제까지 스스로 쓸모없는 허리띠를 두르고 걸을 수는 없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렘 13:11).” 우리에게는 든든히 붙드시는 주의 진리의 띠가 필요한 것이다. 오직 진리로 띠 띠우고,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엡 6:14).” 날마다 또 새날을 허락하시는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시기를.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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