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1 주일
행 10:34-35, 38
하나님의 눈길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10: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들어가는 말
1. 바울의 회심과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 이전의 사울은 여전히 살기등등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가두려고 대제사장에게 승인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저는 ‘땅에 엎드러져’ 큰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4). 그 일로 저는 시력을 잃었고 사흘 동안 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은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에게 저를 돌볼 수 있게 하셨다. 그때 아나니아는 묻기를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13).” 그럼에도 하나님은 종종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신다. 그때만 해도 누가 훗날에 사울이 바울이 될지 알았겠나?
2. 오늘 본문은 가이사랴에 있는 이달리야 부대의 군대 백부장 고넬료라 하는 자가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듣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그릇 하나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담겨있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말씀에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 이것이 ‘우리의 의’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의 의’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3. 하나님 앞에 선다는 일은 빛 앞에 감춰진 게 없다는 소리이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이와 같은 진리는 구호가 아니라 삶이다. 막연한 가르침이 아니라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사는 우리의 하루하루 삶의 현장이다. 온통 그 안에서 악다구니 쓰며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빛은 우리에게 평화를 더하신다. 그럼에도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 19:42).” 왜 그럴까? 회개란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서는 동시적인 일이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그동안 자신이 자부하며 살아왔던 날을 ‘다시 생각한다’는 의미다.
1. 우리의 믿음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기쁘심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그 믿음의 증거가 회개다. 회개는 자신을 돌아보며 예전의 자기 삶을 하나님 앞에 후회하는 일이다.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우리가 의로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나온 날이 죄악되었다는 것을 통회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우리는 누구도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2. 복음으로만이 평화를 이루신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복음이 무엇인가? 우리가 모두 죄인들인 것과 주의 보혈의 은총만이 구속의 길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12-13).” 곧 우리의 평안은 복음의 신발을 신는 것이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 6:15).” 이는 결코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시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3. 오늘의 관심이 남은 인생을 선도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왜 자꾸 주일을 범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길까? 아이가 물었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허용하였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중복되어서이다. 그건 아직 학생이고, 안 믿는 부모의 슬하에 있어서 그런다? 곧 졸업을 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한 집안을 이끌며 부모로 살다 노년을 준비하느라, 우리의 어쩔 수 없음은 연이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를 어쩌나?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이는 단지 구호가 아니고 죽기 살기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일이다.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허용은 끊임없이 번식한다. 그러므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0-21).”
4. 우리의 고통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첫째,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둘째,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그저 광물과 같이 아무런 변화도 없는 영혼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더 큰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넷째, 하나님의 지극히 큰 영광을 이루려는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다섯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5. 우리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 성령 하나님을 보신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곧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 2:11).” 하는 오늘 말씀과도 연관이 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35).” 그런데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곧 죄란, 하나님을 곁에 두고도 다른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이에 사람살이뿐 아니라 만물이 피곤하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8).”
6.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예수님은 선을 행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병을 낫게 하고,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탄압에서 놓여나게 하는 일 정도의 것이 아니다. 두루 다니시는 예수께 하나님은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이 하셨다. 이것이 ‘선한 일’이다. 선이란,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시는 것이다. 곧 그의 죄를 돌이켜 ‘하나님이 함께 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시적으로 선을 가름하고 의를 구하려 한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3-34).” 의를 행하기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우리의 자랑은 주의 이름뿐이다.
7. 우리도 변화되리라.
곧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2).”
이는 우리 심령뿐 아니라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곧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우리로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하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고전 8:20).” 그러므로 우리는 고대하고 바란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 42:2).” 우리의 결핍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하게 한다. 우리의 연약함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8.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이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곧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반드시 그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이를 알 때,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시 36:10).” 곧 기뻐할 수 없는 중에도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구원의 능력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죄를 혐오하고 날마다 주의 도우심을 구한다.
9.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여섯 가지의 ‘더욱’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첫째, 더욱 믿음으로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3:28).”
-둘째, 더욱 성령으로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셋째, 더욱 은혜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넷째, 더욱 그리스도와 함께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7:27, 10:10).”
-다섯째, 더욱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1:5-6,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여섯째, 더욱 하나님 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73:25).” 고로 그 확증은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26).”
나오는 말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호 4:12).” 돌아보면 우리의 죄는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하였나? ‘나무에게 묻고 막대기에게 대답’을 들었다. 하나님을 곁에 모시고도 다른 하나님을 찾았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세상이라는 갈대지팡이를 의지하였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사 36:6).” 돈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알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 그것이 만족스러울 줄 알았고,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보람이 될 줄 알았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5).” 우리 안의 의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다. 하나님은 결코 차별이 없으시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신 1:17).” 또한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행 15:9).”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2).” 이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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