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를 붙드소서

전봉석 2019. 11. 25. 07:0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대하 11:4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시편 120:6-7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시는 말씀 앞에 오래 머문다. 서로의 다툼이 또한 그 분쟁과 노함이 실은 하나님이 그리 두시는 까닭이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상한 심령으로 주께 부르짖을 따름이다. 이에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120:1).” 우리가 성전으로 올라가는 첫 번째 이유였다. 곧 우리의 통회하는 마음뿐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7).” 우리는 저마다 신령한 사람인데 사람이 그 본분을 잃으면 육의 사람으로 살 따름이라.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고전 15:46).”

 

아이가 오고 우리는 모두 저를 반겼다. 늘 그늘져 있던 모습에서 모처럼 같이 남아 식사도 하고 잠깐이지만 대화도 하고 돌아갔다. 흔히 양치기 소년이라 해서 거짓말 하는 저를 탓하지만 저의 외로움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죽하니 그러할까? 우리가 아이를 새사람으로 덧입힐 수 없으나 우리의 모습으로 저를 알게 하려함이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3-24).” 그 또한 의지의 문제다. 그래도 아이가 왔다! 다른 가족들은 꾸물꾸물한 날씨에 늦잠을 자기 딱 좋은 날, 혼자 일어나 준비하고 나왔을 아이의 발걸음이 감사하였다. 심지어 다른 아이는 전날에 어디 가까운 데 가서 점심이나 먹자는 데도 본인은 주일에 교회에 간다며 온 것이었으니! 이는 주에게서 나서 주 안에 있음이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이 모든 게 어찌 나의 수고로 이루어지는 일이겠나? 성경공부 때문에도 아이가 월요일에 또 오겠다는 말에 고마웠다. 서로에게 마음 쓰고 은근히 위하는 그와 같은 섬김이 아이 안에 생겨난 것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돌보고 위할 뿐이다. 주가 이루신다. 지혜의 삶이란 내가 주를 바랄 따름이다. 잠언 11장에서 이를 더듬었다.

 

먼저는 거짓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 나는 아이를 대할 때 꾸며서 마음을 더할 것도 아니고 억지로도 할 게 아니었다. 어쨌든 거짓말은 사탄의 전유물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그러므로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3:9-10).”

 

결국 교만으로 치욕과 수치가 온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11:2).” 내가 우쭐하여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구는 게 교만이다. 하나님은 이를 싫어하신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3-4).” 스스로 일러 그러할 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4:1).”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대신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2).” 주께 겸손한 게 가장 지혜롭다.

 

이는 곧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리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11:3).” 누구더러 뭐라 할 거 없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 나의 문제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왕상 3:6).” 이를 시인은 행함으로 아끼지 아니하시는 주를 찬송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그러므로 구원의 소망으로 의를 이룬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11:4-8).” 이를 알게 하시려고 환난을 두셨다(5:3-4). 주일 날 같이 말씀을 나누면서 이를 증거하였다. 저마다 환난을 피해 교회로 오지만 정작 말씀은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시니(14:22, 5:10). 이와 같은 말씀에 어찌 순종할 것인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이는 실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않는 일상의 일이다.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11:9).” 왜냐하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이는 엄연한 일이어서 설마, 할 때 큰 코 다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7:2-4).” 하나님이 저들을 멸하실 때 우리도 같이 멸망하지 않게 하시려고 징계하심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그러므로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26:4-5).”

 

그래서도 남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11:10-11).” 특히 누구의 어떤 이야기를 듣고 또는 무슨 사연을 두고 같이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행여 저의 그런저런 사정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거나 이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되겠다. 행여라도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을까 두렵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8:14).”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2:3-4).” 그러므로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11:12).

 

삶을 굳건히 세우는 도략은 말씀뿐이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11:13-14).” 아이들과 먼저 잠언을 읽으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2:20-21).”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살 길이 있다. 내가 저 아이를 또는 어느 누구를 위함에서도 먼저는 말씀으로 바로 서야 하는 이유이다.

 

경솔하고 성급하면 스스로 복을 걷어찬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11:15).” 내 안에 이는 어떤 조바심이 스스로의 보증이 되려는 마음에서 삐끗할 때가 많다. 가령 야곱의 팥죽이야기에서 에서의 경우가 그런 게 아니겠나?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25:34).” 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 당장의 배고픔에 그리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정욕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그러므로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22:36).”

 

조금 긴 내용의 메모를 정리하면서 벌써 다음 주일 설교 원고를 생각하였다. 내가 취할 수 있는 게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일뿐이라, 또 누가 죽었다.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은 그 여파가 심상치 않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사는 일이라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뉴스를 보다 누구를 생각했고 그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까를 먼저 염두에 두는 일이 내 일이었다. 말씀밖에는 답이 없다. 다른 어떤 관심이나 의로움이나 선행은 그 자체로 놓아둘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지혜의 소리를 흘려듣지 말자(22:6, 15:26, 6:25, 7:24). 소유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5:8, 10:2, 고전 15:58). 부유와 가난은 선악의 여부에 달렸다(6:26, 28, 34:9-10, 37:25). 어쩌면 이와 같은 병적인 나의 메모 습관은 일찍이 아버지가 설교 원고를 받아쓰게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우리의 삶은 본이 되어야 한다(31:10, 30, 6:7, 살전 4:11, 9:11, 살후 3:6). 고로 게으름을 버리자(12:11-13, 22:29, 3:10, 5:13). 그러할 때 정결한 삶이 이루어진다(28:3, 59:8, 2:7-8). 실제로 말을 맛나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15:11, 벧전 2:1, 3:6-8, 1:26, 4:6). 그러할 때 사랑만이 모든 허물을 덮는다(5:44, 12:10, 벧전 4:8, 5:20). 이처럼 메모를 보고 이를 묵상글에 옮겨 적으며, 설교 원고를 준비하듯 나의 삶이 곧 이 숱한 거짓의 세상으로부터 건짐 받기를 기도한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120:2).” 거짓된 세상은 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면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6).” 이 땅을 사는 동안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7).” 그러므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119:1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