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께 감사하라

전봉석 2019. 12. 11. 07:06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대하 27:2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26

 

 

요담은 그의 부친 웃시야가 정직히 행한 것처럼 행하였으나 저의 말년에 스스로 교만하여져 성전에서 구별된 제사장들이 행하는 제사를 자처하여 분향함으로 나병을 입고 죽은 것을 보고 그러했을까?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대하 27:2).”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데서 두려울 따름이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6).” 그러하고 그러할 수 있는 것이 주의 은혜인 것을.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26).” 자칫 발을 헛디뎌 언제든지 그릇된 길로 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이고 보면.

 

사는 데 너무 열중하면 그럴 수 있다. 어떤 문제에 함몰당하면 그럴 수 있고, 자기 사연에 자기가 심취하면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하든 믿음으로 주 앞에 서는 사람들이다. 이는 은혜이다. 돌이켜 회개하고 새로이 확신을 얻고 교회와 하나 되는 삶으로 이어가는 것이 은총이다. 그게 아니면 다들 사는 게 너무 척박하다. 그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3:16-17).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18-19).” 이는 모두 죄로 인한 것이고 죽는 날까지 누구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는 중에 온갖 이단이 득세하고 별의 별 인간들이 다 득실거린다. 기껏 잘 믿던 이의 마음에도 의혹이 일고 간교한 뱀은 오늘도 우리를 꾀어내려 안달이다. 그러니 도대체 어찌 할 방도가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이 필요하다. 자신을 비우고 비워내어 하나님 앞에 더욱 가난하여지는 수밖에 없다.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오직 주만이 나의 심령에 구주가 되어야 한다.

 

누가 어떤 이의 권유로 당장의 문제에 끌렸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어려움은 우리 영혼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가령 나는 어디가 아프다. 왜 또? 거기 아픈 데 이끌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하다못해 괜히 더 마음이 간다. 아픈 데 손이 자꾸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이나 그래서는 안 되는 까닭은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면 그도 그럴 수 있겠으나 그건 또 아니지 않나? 그래서 병 고침을 받고 문제 해결을 이뤄 천 년을 살고 만 년을 산다 한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 이는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3).” 우리의 목적은 영생이다. 이 땅의 것이 아니다.

 

나는 아이를 대하다 지치고 환멸이 올 때, 내 몸이 또 어디가 아파서 낙심이 오고 고통이 가중될 때, 이 모두는 지나가는 것이라! 잘해도 머물 수 없고 못 해도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뿐이다. 지나고 나면 그 끝은 모두 같은 것이어서, 가령 병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남은 평생을 잘 살았다 한들? 하던 일이 잘 풀려 좋은 결과로 떵떵거리며 잘도 살았다 한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사람이 죽었다. 저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물지 못하고 덧없이 해외를 전전긍긍하다 병들어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세운 병원에서 죽었다. 잘 살았다 해도 그게 다다. 못 살았다 해도 그게 다다. 나는 아이의 장애를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또는 다른 아이의 병적인 자기 환멸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두 아이는 글을 쓴다. 한 아이는 맥락이 없고 한 아이는 자기 슬픔에 절어 손목을 긋고 약물을 찾아 자살을 시도했던, 상처를 안고 살다 이야기로 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아이들의 글을 나는 같이 읽는다. 읽고 뭐라 말해줘야 하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아니면 내가 죽겠다. 아이의 글을 멈추게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말이란 과장과 축소에 능한 것이어서 본의 아니게 자신을 또 충동하기 십상이다. 나는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고백하고 아이의 고백을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미루었다. 아이는 말하고 싶어 하고 나는 이어서 듣기를 뒤로 하였다. 글로 쓰도록 유도하는 까닭은 글이란 말과 달리 자체 정화능력이 있어서이다. 문자화되는 이야기는 객관성을 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지나치게 주관적인 데 빠져드는 일이다. 그 일을 해결 받는 게 목적이면 굳이 하나님이 아니어도 좋고 성경과 교리의 중요성은 무시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3:25-27).” 아니면 누구도 주 앞에 설 수 없다. 어떠한 의와 도덕적인 삶으로도 우리는 주 앞에 의로울 수 없다. 예수의 보혈로 십자가의 긍휼하심밖에 없다.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5:10).” 그러니 우리의 모든 문제는 죄 때문이다.

 

하나님과 화목된 자로서 사는 일은 병을 고치고 살림이 좀 나아지고, 나라와 민족이 화합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마치 이를 사명으로 부여잡고 죽을 각오로 사는 것은 부질없이 하늘을 휘젓는 연과 같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고 언제든 날아가는 것이 연의 숙명이다. 우리는 그렇듯 지음 받지 않았다.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도 아니고 이것으로 목표를 삼아 사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이를 위하여 오늘의 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나로 인하여 저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이런저런 사연을 듣고 또는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저 안쓰럽기 그지없으나 이 또한 감정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저 아이들로 인해 하나님만 바라는 훈련을 한다. 아니면 살 수가 없다. 감당이 안 된다. 내가 더 지친다. 어제는 오후에 오는 아이의 끔찍한 이야기를 읽고 숨이 턱 막혀서 속으로는 계속 주의 도우심만을 구하였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이 아니고는 어찌 해결이 안 되는 일이다. 결국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고 계시다는 반증이 된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2:12).”

 

내가 죽을 때 내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내 의지나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3-4).” 그러므로 마땅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5-6).” 육신의 생각을 마치 영의 생각으로 둔갑시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사악한 궤변과 온갖 추잡스런 이단의 무리로부터 우리를 붙드시고 바른 길 가게 하시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1).” 잠시 한눈팔다 어느 순간 훅, 간다. 그러므로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4).” 감사하자. 병들었으면 병든 몸으로, 트라우마가 가득하면 가득한대로,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5).” 삶이 고단하고 고달프면 고달픈대로,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8).” 그 모두를 주관하시는 이에게 감사하자.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9).”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4).” 여기서 감사할 줄 모르면 거기서도 어렵다. 이것으로 감사할 줄 모르면 다른 것으로도 감사하기는 어렵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