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주일
시편 9:10-11
주의 이름을 아는 자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9: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들어가는 말
코로나19로 인해 연일 난리다. 그러나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 하시는 말씀 앞에 삼가 근신이 필요한 삶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언제까지일까? 우리 인생이 끝나기까지는 끝이 없다. 환난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로 소망을 주기 위함이다. 믿는 자의 특권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 소망은 무엇인가?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사 60:19).” 즉 더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이는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20).” 그러므로 하나님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그 하나님은,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하신 말씀을 붙들고, 오늘 시편 9편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앎으로 주를 의지하는 놀라운 원리’를 따라가려고 한다. 곧 우리는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다. 무슨 의미인가? 주를 의지할 권리가 있고 이를 우리의 사명으로 알고 시온에 계신 주를 찬송하며, 주의 하시는 일을 증거 하는 삶을 산다는 소리다.
1. 진정한 기쁨(1-3)
1) 우리는 주의 기이한 일을 전한다(1).
2) 그러므로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이름을 찬양한다(2).
3) 왜냐하면 원수들이 모두 주 앞에서 망할 것이다(3).
인생은 두 갈래의 길이 공존한다. 하나는 형통한 길이고, 하나는 곤고한 길이다. 이는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는 원리다. 하나님은 이 둘을 병행하게 하셨다. 우리의 지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곧 사람은 본래 형통한 날만 계속 되면 괴물이 된다. 돈의 노예가 되고 성욕에 만신창이가 되며 급기야는 환각과 망상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반대로 곤고한 날만 계속 된다면 사람은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하나님은 이 둘은 병행하게 하심으로 우리 영혼을 단련시키신다.
곧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그리하여 우리는 주를 의뢰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하는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오늘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우리 일상에서 기이한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들이다(9:1).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누리고 경험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이와 같은 체험이 없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떠하든 우리는 이를 즐거워하고 기뻐한다(2). 왜냐하면 지금은 원수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으나 저들의 결국은 망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3). 그래서 우리는 염려를 주께 맡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이는 범사에 주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2. 의로운 심판(4-8)
1) 주께서 우리를 변호하신다(4).
2)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실 것이다(8).
우리 모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믿는 자는 자신의 믿음으로, 믿지 않은 자는 자신의 의로, 그날이 오면 우리는 모두 주 앞에 발가벗은 것처럼 서게 될 것이다. 이때 오늘 시인은 우리를 변호하시는 이가 주님이심을 찬양한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4).” 곧 하나님은 정직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난 주일에 나눈 말씀에서처럼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7:10).” 하는 것인데, 이는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9:8).” 곧 우리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랄 수 있는 특권을 가지는 것이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52:9).” 이것이 우리의 찬양이다.
인생은 짧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시 39:5).” 곧 인생에서 의지할 것은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의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곧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곧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19).” 왜냐하면 이 땅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3. 주를 의지함(9-12)
1) 주는 우리의 요새이시다(9).
2)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10).
3)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12).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이는 참 어려운 말씀이다. 기쁠 때야 기쁠 수 있겠으나 이처럼 어렵고 힘들 때, 환난이 계속 이어질 때 과연 우린 기뻐할 수 있을까? 성경은 그래서 ‘주 안에서’이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심리학에서 사람이 기뻐하는 네 가지 이유를 찾았다. 보편적인 것으로 첫째는 사랑을 받을 때, 둘째는 자신을 소중히 여길 때, 셋째는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긍정적으로 느낄 때, 넷째는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눌 때이다. 이를 말씀으로 연관 지어,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할 이유도 분명해진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처럼 사랑을 많이 받는 자도 없다. 둘째, 그 하나님은 우리를 누구보다,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신다. 곧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셋째, 그 어떤 형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넷째, 우리는 이 소중한 소식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의 사명을 받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8-39).”
이처럼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 안에서’다. 주를 의지함으로 충분하다. 곧 오늘 시인은 이를 기뻐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 9:9).” 저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10).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11). 그 주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날마다 더한다.
4. 구원의 기쁨(13-20)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13).
2) 우리의 고통을 돌보신다(13).
3) 인생은 의지할 게 없다(19-20).
우리는 살면서 자주 미끄러진다. 인생은 엄연히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다. 그럴 때,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94:18-19).” 이것이 우리의 특징이다. 오늘 우리가 주를 의지하는 데 따른 증거는 주를 찬양하는 것이다. 저는 우리의 요새이시다(시 9:9).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 이를 우리는 안다. 곧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12).” 이는 곧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신 10:18).” 주는 우리의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시 9:13).” 또한 우리의 고통을 돌보신다.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18).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신다(19-20). 이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마 6:28).” 즉 저 들의 백합화는 어쩌다 거기에 피어난 백합화가 아니다. 거기에 심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상황과 여건을 조성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예수님은 저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바울도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오는 말
우리에게는 진정한 기쁨이 있다(1-3). 우리는 그의 기이한 일을 전한다. 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할 줄 안다. 그것은 우리의 원수-질병, 낙심, 좌절, 소외, 죽음 들은 망할 것이다. 모든 것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4-8). 그때에 우리의 의로운 심판장은 우리를 직접 변호하신다. 주께서 판결을 하신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도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다. 그 주를 의지한다(9-12). 저는 우리의 요새이다. 저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아는 자로서 누리는 구원의 기쁨을 잃지 않게 하실 것이다(13-20).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우리의 고통을 돌보신다. ‘다시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게 하셨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런저런 고통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때에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로서 우리는 기쁨과 감사를 누린다.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때로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를 엄습하지만, 그래서 늘 찬송과 염려가 같이 있고 십자가와 부활이 같이 있지만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는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다. 결국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을 믿는다. 우리의 사명은 그래서 하나이다.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11).” 오늘도 우리를 이 땅에 두시는 이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은,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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