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14:5-7 / 그들, 가난한 자

전봉석 2020. 4. 24. 14:16

20200426 주일

 

시편 14:5-7

그들, 가난한 자

 

 

14: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어느 마을에 가난한 소녀가 살았다. 소녀는 날마다 먼 길을 돌아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소녀의 물동이는 깨지고 금이 가서, 물을 가득 채우고 돌아와도 항상 소녀의 물동이에는 물이 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루는 물동이가 소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아가씨는 금이 간 저를 버리지 않고 사용하시나요? 새로 양동이를 사든가, 누구에게 빌리면 더 나을 텐데요.” 그러자 소녀는 물을 길으러 오가는 길가에 핀 꽃들과 집안 가득 화병에 꽂아둔 꽃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금이 간 네 덕분에 길가의 꽃들에게 날마다 물을 줄 수 있고, 꽃들은 무럭무럭 자라 씨를 맺으면 봄철이면 나는 그것을 다시 길가에 심어 이처럼 집안 가득 꽃향기로 채울 수 있지 않니?”

 

성경은 우리의 가난을 높이 산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하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단순한 개념의 가난이 아니라, 실제의 가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곧 우리의 믿음이란 주를 의뢰함인데, 이는 결핍에서 나온다. 즉 부족함으로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본문 정황

우리 시대는 하나님을 외면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하고 오늘 다윗은 탄식한다. 세상에서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 자신을 두고 자신과 하나님이 다툰다. 그러나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는 수천 년의 이야기나 오늘 우리 시대의 이야기나 다를 게 없다. 하나님께서 살피신다. 과연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하고 보려 하신. 그러나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는 것이 오늘 시인의 고백이다. 누구 하나 나은 사람이 없다. 어쩜 이렇게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마치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오늘 시편은 시대를 논하고 비관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본래 처음 사람 이후 모두가 그러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곧 어느 시대에나 남은 자들은 있었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에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들이 있었다. 비록 그들은 가난하였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하나님은 항상 그들, 가난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깨진 질그릇으로, ‘내가 너희에게 이름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보기에는 깨져서 금이 간 쓸모없는 물동이 같으나,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7:38).” 즉 물이 줄줄 새는 것으로 오히려 꽃이 피고 향을 내었다. 그들, 가난한 자들로 주께서 이루시는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몸소 질그릇으로 오셨다. 저는 깨지고 금이 가서 그의 안에 담기었던 성령의 물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그 물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우리는 철마다 성령의 열매로 꽃을 피워 그리스도의 향기를 더한다. 이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부어지신 바 되었다.

 

- 다섯 개의 부어짐으로, ‘내가 너희에게 이름은

첫째, 그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15:11).” 둘째, 그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17).” 셋째, 우리들로 하여금 넘어지지 않게 하신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16:1).” 넷째, 우리로 주의 말씀이 기억나게 하신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4).” 다섯째, 우리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

 

- 이를 위한 네 가지 행보

첫째, 게으르지 않게 하신다. 둘째, 오래 참게 하신다. 셋째, 약속의 말씀을 받게 하신다. 넷째, 앞서 간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게 하신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

 

오래 전 계획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1:5).”

 

성경의 말씀은 풍자도 은유도 아니다. 오롯이 사실이다. 일관되게,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우리를 오늘 여기에 두셨다고 강조한다. 이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어쩌다 오늘은 없다. 목적이 없는 생은 없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4-6).” 때로는 이를 우리가 상식으로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엄연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5:23).” 그러므로 이미 끝난 이야기다.

 

이를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111:4).” 곧 우리 안에 두시는 믿음이 그 일을 한다. 우리 안에는 믿음의 잠재력이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제비 가족을 보았다. 어미 제비는 부지런히 먹이를 가져다 둥지에 있는 새끼들을 먹였다. 어느 날 새끼들이 자라 나란히 나뭇가지에 앉았을 때, 어미는 하나씩 가지 끝으로 밀어내어 새끼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어린 새끼들은 안간힘을 쓰며 바동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알았다. 자신들에게는 날개가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저마다 날갯짓을 하며 땅위로 착지하였다. 다들 그저 두 다리로 설 수 있어 족하였다. 그러다 걸을 수 있어 놀라웠다.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앉을 수 있어 기뻤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내 자유로이 날면서 참 자유를 만끽하였다. 본래의 잠재된 능력을 알게 된 것이다. 믿음의 성장에서도 가장 무서운 적은 안주하는 일이다.

 

신앙도 인생처럼 마라톤과 같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6:54).”

 

종종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한다. 하루 만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려하는 사람은 없다. 노련한 등산가는 보폭을 유지하고 일정하게 숨을 고른다. 조용하고 규칙적인 보폭을 지닌다. 그러다 안개가 끼면 당황하지 않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가 가던 걸음을 계속한다. 이 시대는 어쩌면 꾸준함을 잃은 시대다. 한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다. 이러다 말고 저러다 만다. 그러면서 생활의 달인을 찾아 열광한다. 저들의 놀라운 기술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잠깐 해보고 마는 것도 아니다.

 

1980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조지 루이츠는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하지만 저는 42.195 킬로미터 마라톤에서 결승점을 1.6 킬로미터 남겨두고 달리기 시작하여 1등으로 통과한 것이다. 환호하던 사람들이 그를 힐난했다. 그는 스스로 완주했다고 믿고, 다음에는 그 실력을 증명하겠다고 우겼다. 그런 그의 행동을 반사회적 이상성격자라고 한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이를 보고 크리스천 가운데서도 반종교적 이상성격자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마치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한 시간 남짓 설교를 들은 것으로 자신을 마치 42.195 킬로미터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알던 조지 루이츠처럼 믿고 있는 종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산다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 4:2).”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삶이란 그저 예식에 참예하는 행위로 그치는 게 아니다. 교회의 연례행사가 아니다. 삶이다. 살아서 사는 날 동안에 우리에게 뿌려진 성령의 물로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 향기를 나타내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가난, 거룩한 결핍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피어나고 씨를 받아 다시금 뿌려져야 한다. 이것이,

 

첫째, 구원을 이루는 삶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둘째,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4-5).” 셋째, 깨어 기도하는 삶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1).” 넷째, 향기 나는 삶이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다섯째, 어리석음을 멈추는 삶이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여섯째,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는 삶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111:2).”

 

나오는 말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31:24).”

 

세상이 참 어지럽다. 그러할 때,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우리는 다른 데 기웃거릴 거 없다. 별 거 없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9:3).” 그러한 우리는 남겨진 그들로서, 하나님의 의도적인 가난한 자들로서, 깨지고 금이 간 보잘것없는 질그릇으로밖에 살 수 없는 존재들이 해도,

 

그러나 거기서 그들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14: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