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전봉석 2020. 7. 27. 06:00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예레미야 28:15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시편 64:9

 

 

어떨 땐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멀다. 남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사는데, 가족이나 그 이상으로 가까이 밀착된 관계에서는 볼꼴 못 볼꼴을 다 보며 살아야 하니. 어제는 문득 목회를 하는 데 있어 가족들이 가장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에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아니라면 갈 수 없는 길이구나, 싶은. 내가 임의로 어쩔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도 하였다. 하다못해 내가 낳은 자식인들 주의 선하심이 아니고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이게 맞나? 싶다가도,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다만 주의 뜻을 바랄 뿐이다. 기껏 예배 마치고 서로가 열을 올려 말에 말을 이어가는 것이 어디 집값 시세에 누구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그때부터 나의 의견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뭐라 해도 소용이 없다. 오죽하니 그럴 바에는 끝나고들 일찍 그냥 가든가그저 사는 이야기와 그 나름의 정세에 밀려 앞서 들었던 말씀에 대한 내용은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온통들 그 생각들로 꽉 찬 터라, 듣다보면 서로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어디 집값 시세가 어떻고, 재테크가 어떻고, 노후 대책으로 뭐가 어떻고 살다 살다 사는 데 따른 염려들로 이어질 따름이다.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28:19).”

 

우리의 언약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는 베드로의 증거처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3-25).” 남들이면 서로 못할 말들이 너무 잘 안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이어지고, 이를 제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졌다. 그렇듯 세상물정을 가지고 말하다 짚고 서려는 현실은 비참할 정도로 현실에 못 미치니까, 순간 밀려드는 좌절은 말씀으로 받은 은혜를 금방 걷어차고 만다. 걱정은 긴 한숨으로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나타난다. 나는 그와 같은 우리의 처지와 사정이 오늘 우리 안에 간절함을 허락하시는 은혜인 것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고후 7:12).” 남에게는 말씀을 권하고 성경으로 말꼬를 틔우겠는데, 이게 늘 붙어 있는 가족이라는 장점이 또는 단점이 되어 굳이 꼭 그런 말을 해야 하나, 싶어지는 것이다. 특히 처가 쪽 동대문 집 문제로 얽히는 것에 대해 늘 경계하지만 그러는 내 말은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이나 하는 소리 같으니까, 자식들도 듣지를 않는다.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거기서 손을 떼었으면, 하고 그처럼 일러도 그러면 앞으로 있을 이득을 계산하면 너무 아까운 것이라. 그러자면 얽힌 문제와 저들, 상대하기 쉽지 않은 대상들과 뜻을 같이 하거나 척을 져야 하는데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 전에 다만 얼마라도 어머니 살아생전 쓰실 수 있게 처분하고 저들, 안 믿는 자들과는 손을 떼라고 숱하게 일러도. 말씀과 현실의 괴리는 가족일수록 골이 깊다. 만약에 남이면 목사의 말에 귀를 좀 기울였을까? 손익계산도 못하는 위인이라 나의 말은 목사로도 아버지로도 별로 힘이 없다!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4).” 그러니 저들에게 기도제목으로 부탁한 오늘 오전 7시부터 같이 하게 되는 성경모임에 대하여 다들 의아해 한다. ? 여기까지, 그 이른 시간에? 하는 투였으니, 영혼의 갈급함에 대하여는 뭐라 설명할 길 없고 그것이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그런 접근에는 그렇듯 이상할 따름이다. 자신들이 어떤 직업을 얻고자 죽어라 하고 공부하고, 누구는 은퇴 후에 살 길을 모색하느라 퇴근 후에 날마다 열두 시 가까이 뒤늦게 영어 학원을 다니고, 직장에서의 일을 우선으로 여기면서, 정작 영적으로 고갈된 영혼에 대하여는 무심할 정도로 왜? 하고 되묻는 것이다. 저녁께 아들 녀석이 들어와 낮에 다 하지 못했던 어디 집값시세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형편에 돈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서로들 머리를 맞대고 어디 사이트를 들어가 무엇을 검색해보고 복리가 어떻고 이율이 어떻고 하는 말이 이어져서 나는 그냥 슬그머니 일어나서 자리를 피했다. 자식들이라도 내 마음 같지 않다. 더 어렵고 힘에 겹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하는 바울 사도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34). 우리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 믿는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여기지만 추구하는 바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고 이를 위한 수고와 노력에 비해 주를 바라는 데 애써 수고하는 마음이 턱 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결국 우리가 뿌리는 씨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면 그게 어찌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는 일이겠나? 그러므로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37-38).” 부디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꽉 채우시기를. 그리하여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31:1).” 우리는 아니라 할 수 있겠나? 성경을 단지 이론을 두고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주장이라면,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2).”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안 믿는 자들이나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그렇다 해도 믿는다고 하면서 그처럼 끌려다니 듯 세상물정을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정보가 재산이라 여겨 기를 쓰고 공부하면서 고후 은퇴 후 20여 년 나름과 이상과 현실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전전긍긍 모색하는 것이었으니나는 늘 내 자신이 가장 어렵고 다음은 가족들이다.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밀착된 상태라 그렇다. 그러니 떨어져 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주가 맡기신 일이라.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36:6).” 주의 엄위하신 위용 앞에 두려워 떨며 이루어가야 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거저 받았다고 저절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 아니다. 귀한 것은 그 귀한 것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데만도 엄청난 소요가 든다. 힘써 지키지 못하면 잃는다. 그러므로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4:9).” 그렇지! 내가 사는 날 동안 이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음은 언제든 떠나기 좋은 시절이다. 애굽이 잘만 돌아간다. 다들 그렇게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다시 세를 놓고 돈을 불려 부를 축적한다. 눈 먼 돈도 널렸다. 왜 이런 걸 모르는 척 못 본 척 하고 살아야 하는가? 쉽지 않다. 그러니 온통 생각은 출세와 성공과 안정이다. 더 나은 투자와 수익이다. 앞서 전하였던 불의에 대하여 특히 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데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 날 많은 이들이 그러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2-5).” 이와 같은 말씀에 과연 우리는 동의하는가? 가만히 듣다보면 모든 게 다 돈 때문이다. 성경은 이를 엄히 경고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러니 다들 자기를 찌름이라. 사는 게 전쟁 같다. 한가하게 앉아 성경을 나누고 말씀을 운운하는 일은 팔자 좋은 소리다. 나름들 이상을 말하지만 현실은 돈이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이런 말씀은 자식들에게도 먹히지가 않는다. 그러니 자꾸 뭐라 한들! 주의 간섭과 주의 돌보심만을 바란다. 듣기 좋은 말로 합세하여 거짓을 따를 수는 없다. 오늘 예레미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28:15).” 나 하나 말씀으로 먼저 바로 세워져야 하는 때이다.

 

코로나 핑계로도 그렇고 앞으로의 살 길을 스스로 도모하는 일에서도 그렇고, 마치 죽어라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능사인 줄 아는데 어쩌랴.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40:28-31).” 주의 권능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64: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