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38:21-22 / 주 나의 구원이시여

전봉석 2020. 12. 24. 15:08

20201227 주일예배

 

 

시편 38:21-22

주 나의 구원이시여

 

38: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38: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들어가는 말

그야말로 다사다난 했던 2020년도 마지막 주일이면서, 우리가 교회를 이뤄 함께 예배를 드린 지 12년이 다 돼 가는 해이다. 마침 오늘 시편은 시편에서 도드라지는 일곱 편의 참회 시 가운데 하나다(6, 32, 38, 39, 51, 130, 143편). 이는 모두 다윗의 시편들로 그 첫 구절만 봐도 통회와 자복의 절규가 나타난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6:1).” 어쩌면 우리의 감사는 참회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그래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32:1).” 이 복을 아는 것이 온전한 두려움이다. 가령 아이가 시험을 못 봤다고 옆집 아저씨 눈치를 보지는 않는다. 그렇듯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38:1).”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뉘우침으로 진정한 찬송을 하게 된다.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 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39:1).”

 

참회 시 가운데 절정은 51편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나단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 앞에 자복하는 일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51:1).” 곧 우리 잘못을 인정함으로,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130:1).”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주께 부르짖게 된다. 그리고 주의 응답을 간구한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143:1).” 오늘 시편의 말씀은 그와 같은 기도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38:21-22).”

 

올 한 해, 어느 때보다 지치고 힘들었던 세상살이에서 오늘의 이 현실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강조하시길,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곧 우리는 사뭇 이 지경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눅 17:27).” 설마, 하는 안이함으로 살았던 게 사실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틀어진 삶의 자세를 바로잡기를 바란다.

 

1. 생활 반경을 기도와 간구로 맞추라.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 38:3-4).”

 

모든 사물은 일정한 반경을 따라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는 사람이나 동물나 같다. 일상의 구획을 벗어나면 이를 우리는 일탈이라 한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한 번 밴 습관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오늘 시편의 첫 구절을 보자.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1).” 우리가 우리의 실태를 바로 알 때 이와 같은 고백도 나온다. 그럼에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2).” 하는 삶의 절규가 나올 뿐이다. 살면서 누군들 상처가 없으며 슬픔과 고통이 없겠나? 영혼이 곪아 악취가 난다(5). 슬픔은 깊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공격적으로 변한다(6). 그와 같은 열기는 고통스럽다(7).

 

일찍이 주님은 우리의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심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즉 우리의 기도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으나 그 말도 안 되는 일들로 주님은 일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고로 우리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 뒤틀린 생활반경을 고칠 길은 기도뿐이다.

 

2. 소원을 주 앞에 내어놓으라.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시 38:9).”

 

다들 살면서 누구나 소원이 있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죽어라 산다. 비정규직은 상식 밖의 처우에도 이를 악물고 살고, 정규직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의해 끌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는 오늘에 당면한 현실과 같이 졸지에 ‘따귀 맞는 영혼’처럼 어안이 벙벙할 때가 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하는 원망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그들의 안색이 불리하게 증거하며 그들의 죄를 말해 주고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사 3:9).” 억울해하고 분해하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저는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인류 첫 살인자가 되었다.

 

과연 저만의 일인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우리도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8-9).”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엄청난 특권이고 은총이다. 그런데도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10).” 우리 안에는 억하심정이 있어 자주 억울하고 분하다. 성경은 그런 우리에게 이르신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 38:15).” 우리의 소원뿐 아니라, 마음에 담고 있는 분함도 주께 구하고 바랄 문제이다. 주께서 해결하신다.

 

어려움에 처하면, 제일 먼저 멀어지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음은 가장 가깝다고 여기던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 11절의 절규는 당해본 사람이면 안다.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이는 무엇보다 비참한 우리 인간의 한계다. 그러자 사람들은 미신을 숭상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146:3-4).”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면 저주뿐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 그러니 우리의 소원을 주께 두자.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마음도 주께 아뢰자.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끝까지 이루실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결국 인생은 의지할 게 없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3. 어려운 상황에서도 달가움으로 충성하자.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시 38:12).”

 

그럴 때마다 우리 안에 분이 인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오늘 시인은 자신의 죄를 앎으로 반박할 수조차 없다고 고백한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13-14).” 성경은 우리에게 이 모두를 받아들임으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신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예수님은 그리 행하셨다. 곁에서 같이 목격한 베드로의 증언으로 이를 들어보면,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도 그리 살라고 하심인데, 실제 그럴 수 없는 우리들로 인하여 예수께서 이를 감당하셨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2-25).”

 

오늘 우리가 여기 이렇게 주의 이름으로 모여 주의 말씀을 듣는 것 자체로 소망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거절하고 복음을 외면하는지 모른다. 안 믿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믿는 자들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마다하는 경우들이 늘어가고 있다.

 

정작 오늘의 이 모든 난국은 어쩌다 우연히 닥친 어려움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그걸 자꾸 현실적인 문제로 풀려니까, 세상 사람들을 좇아갈 뿐이다. 그냥 또 지나가겠거니, 하고 안이하게 들으면 ‘노아의 때’와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다들 이성적인 판단을 운운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보다 문명화된 인간으로 삼는다. 우리는 거기에 기웃거려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시 56:1).”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버려지는 느낌, 나만 혼자 덩그러니 떨어지는 느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 자신조차 나를 위협하는 세상이다. 저마다 극단적인 생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놀라운 의지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3).” 이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특권이고 은총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4).” 하는 담대함이 은연중에 우리 안에는 굳건하다.

 

 

나오는 말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 55:12-13).”

 

우리 짐을 주께 맡기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22).” 오늘 본문은 단지 절규하고 참회함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절망이 우리로 기도하게 한다(3-7).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4).” 주께 아뢰며 의지한다. 다시 말하지만 죄를 방치하면 영혼이 병들고, 영혼이 곪아 상처나면 악취가 난다(5). 그러므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 146:3-4).”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12).” 우리에게는 주를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다. 그러한 어려움이 우리를 자라가게 한다. 그러니 말씀을 사모하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오늘 시인의 다짐처럼 주께 맡기고 입을 조심하자(13-14). 자신을 돌아보아 주의 선하심을 알자.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그리고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살피며, 우리가 더욱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