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3 신년예배
시편 39편 5-7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39: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들어가는 말
시편 38편에 이어 39편의 말씀도 참회시다. 38편에서 참회를 통한 주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구하였다면, 오늘 39편에서는 우리의 소망이 주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절,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이러한 허무를 아는 것이 지혜다. 많은 철학자들이 들먹이고, 명상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들이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이것이다. ‘인생의 길이가 한 뼘이다.’ 그것도 ‘든든히 서 있는 때’ 즉 아직 젊고 건장하다고 여길 때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다.’ 그래서 6절,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날들이다. 그러면서 다들 내일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게 일가족이 모처럼 휴가를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누구는 코로나19로 판정 받아 부모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신혼부부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한 시에 죽고… 이와 같은 사건사고는 비일비재한데도 다들 내일이 보장된 사람처럼 산다. 그러면서 예수는 본 적이 없다고 믿음을 우습게 여긴다. 그러나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이는 우리의 특권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 하는 고백이 모두의 것일 수 없다.
1. 인생에서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기업을 대표하는 총수가 국정농단으로 9년형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저들은 모두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로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무엇이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렸다. 군부독재로 대통령을 지낸 이가 노년에 이르러 법정에 불려 다니고, 치매에 걸려 앞뒤 분간도 못한다. 그야말로 허무할 뿐이다.
오늘 시편의 다윗도 나이 들어 늙고 병들어 괴로움 중에 이 시를 쓴다. 인생살이에서 근심이 마를 날이 없다. 성경은 그 근심에 대하여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하는 근심’이고, 하나는 ‘세상으로 인한 근심’이라 한다. 하나는 회개를 이루고, 하나는 사망에 이른다. 우리는 그럼 어떤 근심에 사로잡히나?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의 일곱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이 근심은 우리로 간절하게 한다. 근심거리로 인해 주를 간절히 바라고 의지한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둘째, 우리의 근심은 자신을 변증하게 한다. 살 궁리를 하다,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내려가거나 ‘애굽’을 기웃거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런 자신을 다잡는다. 곧 자신을 변증한다는 것은,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이래도 되나?’ 하고 스스로 반문하는 것이다. ‘이러고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게 맞나?’ 여기서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이고 그리스도인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종교인은 자기 신념으로 믿음을 선택한다. 저는 열심을 다한다. 의를 추구한다. 곧 ‘자신이 잡은 것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자긍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자신이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래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셋째, 우리는 근심으로 분해한다. 전에는 그러려니 하던 나태와 안이함과 죄에 대해 묵인하였던 자신을 향해 분노한다. 세상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분개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복음에 자신을 맞추려 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자신으로 인하여 분낸다(마 5:6).
넷째, 이 근심은 우리로 두렵게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한다. 그동안 값싼 믿음으로 오해하고 있던 은혜, ‘사랑의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으로만 알던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 됨으로 두려워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는 게 아니라 거룩을 바라시고, 이를 위해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시 89:7).”
다섯째, 우리의 근심은 우리로 더욱 주를 사모하게 한다. 사모함은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은 사랑할수록 사랑을 더 갈구하는 법이다. 행여 그 사랑이 식을까, 잃어버릴까,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 주를 사모함이란 우리의 ‘자격 없음’을 알게 하고, 더욱 간절함으로 사모하게 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여섯째, 이 근심은 우리로 열심을 더하게 한다. 이 열심은 세상을 추구하는 열심과 다르다. 믿음의 사람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곧 우리의 열심은 말씀만으로 확신한다. 눈에 보이는 게 없고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해도,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일곱째, 이 근심은 우리로 자신을 벌하게 한다. 전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던 것에 대하여 더욱 조신하게, 근신하며, 자중할 줄 아는 자로 만든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을 벌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2. 허무한 인생이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게 한다.
첫째, 잠잠하여 자신의 근심을 돌아본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시 39:2).” 곧 우리의 근심도 값어치가 있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근심이 되어 우리로 잠잠히 주를 바라게 한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그렇게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둘째, 인생의 허무로 우리의 신앙은 자란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4).” 스스로 연약함을 알면 알수록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육체로는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셋째, 이 땅에서 재물을 쌓는 데 열중하지 않는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 곧 우리가 바라는 건강과 출세와 성공도 모두 재물과 같이 부질없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불안한 상황에서 금이나 명품이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넷째, 인생의 허무는 하나님을 더욱 바라게 한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새해에 우리가 붙들기 바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무엇을 바라는가?
다섯째, 모든 일은 선을 이룬다.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시 39:9).”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은 선하시다. 요셉은 이를 알았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8).” 그러므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여섯째, 징계는 우리를 근심하게 하나 이는 잠시 동안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 39:11).” 성경은 확고부동하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1-12).” 곧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징계가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7-8).”
일곱째,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자.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39:12).”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말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하다.
나오는 말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시 39:13).”
우리 인생이 얼마나 허무할 뿐인지, 그럼에도 근심이 끝이 없으니, 우리는 근심으로 간절하다. 자신을 변증하고, 분하게 여겨, 두려워할 줄 안다. 우리의 근심은 우리로 주를 사모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열심이고, 자신을 벌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건강한 영혼을 소유한다.
오늘 본문에서 살핀 바, 우리는 근심으로 잠잠히 자신을 돌아보고(2),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4), 헛된 일과 재물에 얽매이지 않고(6), 하나님만 바라며(7), 주의 선하심을 깨닫고(9),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며(11), 겸손하게 주 앞에 나온다(12). 주는 반드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건강을 회복시키실 것을 안다(13). 이는 단지 육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는 수준에서 벗어나 날마다 새롭게 되는 속사람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2021년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나 ‘어떠하든지’, 우리로 근심하게 하신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의 믿음의 장성하신 분량에까지 성장시켜주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엡 4: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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