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전봉석 2023. 2. 27. 05:08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아가 8:14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91:15
 
 
 
하나님과의 관계가 물질과 사람과 자기 내면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우린 주 앞에 설 때면 믿음의 잔에 담긴 것을 들고 간다. 오늘 아가서는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8:2).” 하는 부분에서 석류는 사랑과 풍요의 상징이다. 석류나무는 거룩하고 아름답다. 왕궁을 채워 꾸미는 데도 쓰였고 열매는 ‘루비 주머니’라 하여 그 빛깔과 맛과 향기로 고급술을 담그기도 하였다. 그만큼 우리의 귀한 것, 이를 주 앞에 내어놓으며 사랑을 전한다. 이는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보시고 주는 기뻐하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이는 백부장이 중풍으로 누운 하인을 위해 예수께 고하고, 예수께서 직접 그의 집에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자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9).” 곧 예수에 대한 존중과 그 믿음이 확실함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또는 믿음 없음으로 인하여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13:57-58).” 주의 능력은 배가 되거나 축소된다. 곧 우리가 주 앞에 들고 서는 잔은 석류와 같은 믿음이 담긴 잔으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 15:6-7).” 곧 우린 의로 말미암아 산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롬 5:8).” 하여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5).” 우리가 무엇을 하기에 앞서 그 마음의 믿음을 먼저 보신다. 이에 우린 주의 품에 안기는 어린아이 같이 단순하고 순수하다.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아 8:3).” 사랑의 증표로 그 품에 안기는 일은 그 중심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우린 늘 수고로운 인생에서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10).” 영원을 사모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11).”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이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와 같은 말씀으로 평안을 얻는다.
 
사랑의 노래가 이어져 결혼한 사이로까지 나가고(1:1-5:1), 결혼 후 갈등과 극복을 통해 사랑은 성숙하여 간다(5:2-8:14). 저 둘은 그 가족을 방문하고 어릴 적을 회상한다.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8:5).” 즉 비로소 우린 영광에 들어간다. ‘거친 들’ 곧 고난의 시간을 지나 천국에 들어간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9, 14).”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무엇을 붙들고 서는지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43).” 그때는 온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묻는 것 같다. 그것도 어떻게? 주춤거리며 마지 못해 가는 걸음은 아닌지, 아가서는 마지막 장에서 소리친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8:14).”
 
그때의 우리 믿음, 사랑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 아가서 7절,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곧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그렇듯 알게 하셨고, 알고 있는 것을 붙들고 나는 간다. ‘죽기까지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면서’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이에 더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아, 이 귀한 믿음의 의!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아 8:10).” 오늘 아가서의 고백에서 나는 나의 변화와 성숙을 기뻐하고 참 다행으로 여긴다. 그리고 남은 생을 소망하며.
 
내가 얻은 화평, 이는 ‘완전하다’는 의미로 더는 필요치 않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전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가는 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18).” 오늘 내게 두시는 이 직분,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19).”
 
하여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5-16).” 하여 더는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으며, 무슨 일에든지 주가 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는 것. 때론 여전하여 어떤 걱정이 또는 조바심이 나로 하여금 고질적인 열등감을 갖게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나 때문인가?’ 하는 자격지심으로 사탄은 나를 찌르고 들어온다. 아이들이 무슨 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누가 힘들어할 때 ‘이게 다 나 때문에’ 하는, 내면의 깊은 자책이 나를 끌어내려 우울의 늪에 던진다. 주저앉게 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하여 붙들리기 일쑤일 때, 필사적으로 나는 말씀 앞으로 나온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대하 15:7).”
 
이처럼 주 앞에 나와 아뢰는 것,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12).” 나는 포도원에 있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13).” 오늘 아가서의 난해하고 어려운 표현 앞에서 주가 열어주시는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아,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14).” 주는 나를 붙드시고, ‘나의 것’, ‘내게 속한’이라 명하실 때 비로소 안도한다. ‘내 사랑하는 자야!’
 
오늘 시편은 그렇게 이어져 나를 엄위하시는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91:1-3).
 
나로 주께 더 가까이 하게 하심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나의 약함이 나로 하여금 주를 더욱 바라게 하였다. 어떤 힘든,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어떤 슬픔에 있어서도,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결국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27:4, 73:28, 49:10).
 
나는 이와 같아서 안도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사는 동안에 이를 알았고, 그때마다 이게 무얼까? 하고 궁금하였던 것이 있었는데… 이는 주가 나를 지키심이요 주의 성실하심이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2).” 이를 몸소 체험하고 살았다는 것을.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91:4-6).
 
오늘 시편은 그렇듯 또한 위로이다. 강력한 붙드심이다. 그리하여,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7).
 
그러했고 그러하며 그러할 것을,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8).
 
주께서 내 삶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시고 간섭하고 계시는지를… 이를 나의 아이들에게 또는 누가 어떤 어려움으로 호소할 때에 들려주어 내가 겪은 것을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하여,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9-11).
 
구절마다 그게 모두 나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4-15).
 
그리하여,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