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3-14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시편 98:9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이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 앞에 선다. 우리는 무엇으로 굳건할 수 있을까?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 6:48-49).” 말씀으로 힘을 더하는 것.
우린 살면서 그 공적이 드러난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3).” 어떤 일 앞에서의 우리 자신, 그에 따른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증명될 것이다. 곧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취하게 되는 행동으로 말이다. 가령 아이성 함락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여호수아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 7:10).” 먼저 저를 불러세우셨다. 더 올라가 사라에게 쫓겨난 하갈이 슬픔에 젖었을 때도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창 21:17).”
곧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실의와 낙심에 그냥 있게 하지 않으신다. 그때마다 나를 찾아오신 다양한 목소리와 그 손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돌아보면 그럴만한 위인이 아닌데도 나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는 항상 ‘그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한다. 더는 다른 최선이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외에 약속하실 게 없다. 그러므로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48:9).”
그리하여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신 것이었으니, 세상은 우릴 치려하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7).” 오늘 이사야는 이를 증언하며 이른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 이에 어느 훗날 예수께서 이르셨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우리의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저는 십자가를 감당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르셨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6-38).”
자기 십자가, 우리로 교회를 위하여 지우신 것.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곧 우리 곁에 두시는 한 영혼으로 인하여 당하는 그 괴로움을 기뻐하는 일.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하고 생각할 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것까지도 주가 함께 하심으로 가능하였다.
종종 나로 빠져들게 하는 고질적인 열패감을 나는 안다. 이것으로 사탄은 번번이 나를 공격한다. 그러할 때 저의 꿍꿍이는 나를 뒤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인데,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그때마다 성경이 나를 불러 세워 이르시는 말씀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39).” 곧 이를 위하여도 믿음을 주셨다. 내 안에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증거는 넘쳐난다. 그와 같이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15).” 하고 오늘 본문은 우리의 성장기도 그와 같음을 알린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19:7-8).
곧 나로 넘어뜨릴지언정 주저앉히지는 못한다. 더러는 실의와 낙심을 던지지만 그것으로 쓰러져 있게 할 수 없다. 누굴 위해 기도한다. 저의 어떤 사연이 나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그럴 때 내게 더하시는 용기가 더 크다. 중보기도의 힘이다. 즉 내가 날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내 곁에 두시는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나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곧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목사가 되고 누구보다 가장 선명한 사실은 그런 것 같다. 견주어 내세울 것도 없지만 못지않게 주가 인정하시는 일, 첫째는 말씀을 열어보이심이고, 둘째는 ‘내 양을 먹이라’ 하신 데 따른 보장이며, 셋째는 내 자식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을, 아이를 위하여 기도할 때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삼상 1:27).” 나는 저들의 장래를 알 수 없다. 저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내 몫의 기도와 말씀과 사랑으로 대하는 일, 자고로 목회란 이런 게 아닐까? 마음이 쓰이고 요동쳐 여러 생각이 짓누를 때도 있지만 어쩌겠나?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나는 그것까지도 주께 맡긴다. 주가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전 5:2-3).”
그저 단 하루, 나는 그 한 장씩 써내려가는 글처럼 주어진 다음 문장을 채워가듯 오늘도 허락하셨으니 충일할 따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로, 비록 내세울 게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5-6).”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까지!’ 그때마다 주는 나의 임마누엘이셨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10).”
그저 묵묵히 ‘외치는 자의 소리’이면 족하였다. 흩어져 금세 사라질 뿐이라 해도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이와 같은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일 뿐. “그런즉 너희 조상들 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돌아와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의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대하 30:8).”
한때 나는 앞서 믿음 안에서 씨름하는 이들은 욕하였다. ‘이런 일’을 앞에 두고 기도만한다고 무슨 일이 되겠나? 하는 마음으로 할 말 못할 말을 퍼붓기도 하였다. 오늘에 와 그때 나 자신을 돌아볼 때면 보란 듯 그 모든 일을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삶으로 느끼고 내 안에 이는 부끄러움을 감당하게 하신다. 나의 불신은 더 오랜 것이어서 국민학교 5학년 때였나? 남의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짓고 화장실도 없이 살 때였던 것 같다. 난간에 올라앉아 검은 길 위를 쉼 없이 달려가는 자동차를 물결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어떤 망설임. 그 맡도 끝도 없는 갈등 가운데서 차갑게 흐르는 눈물만 느끼고 있을 때, 나의 ‘임마누엘’은 그때도 나의 등 뒤를 붙들고 계셨다.
한동안 ‘글방 선생’으로 있을 때 나는 어쩌면 더 뒤처지는 아이들을 멀리했던 것 같다. 왜 저 아이가 따라오지 못하는지. 그 마음을 열지 못하는지. 실은 짐작할 수 있어서도 그 애를 밀어냈던 것 같다. 후에 주 앞에 엎드리고 알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심지어 ‘그런 애들’을 밀어내며 멀리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끌림’으로 그 애들이나 나나 여느 적당했던 아이들과 달리 더 끈끈하고 알 수 없는 유대감으로 그 시절을 같이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령 한 아이는 갑자기 돌변하여 학교도 빼먹고 말썽만 부리면서도 글방에는 왔다. 나는 그 애가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글방으로 오면 그저 같이 라면이나 끓여 먹고 한나절씩 서로 말도 없이 시간을 죽이다 가곤 했다. 그런 식이었는데 그게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 일은 없다. 나는 애쓴 게 아니다. 그냥 이끌리는 ‘어떤 느낌’으로 말이 없어도 말이 되는 시간들이었다고 할까? 한 아이는 고2가 될 때까지 숨기고 살던, 실은 전신마비의 언니가 집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글로 쓰면서 서로가 한동안 울었던 일이 전부였다. 난 그 애가 늘 잘 되길 바랐다. 용기를 내어 그 이야기를 글로 써서 전국규모의 큰 상을 받기도 하고 다소 높은 금액의 상금도 탔던 것 같다. 드러내고 난 이야기는 금세 그 마음을 아물게 하였고 더는 숨기지 않고, 자신의 꿈인 연기를 할 용기도 갖게 하였다. 같이 예배도 드리고, 한동안 인천으로까지 주일에도 오면서…. 그러다 소식이 끊기고 나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대학 졸업 후 몇 번의 실패와 낙심으로 은둔형이 되었다는 소식에 또다시 저를 생각한다. 생각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겐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필요하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 8:5-6).” 미처 내 생각이 닿지 않는 더 어릴 적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나의 하나님은 임마누엘이 아니셨던 적이 없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98:2).
나는 이에 증거이면서 증인이다. 차마 말할 수 없는 학창시절의 여러 일들 속에서도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3-24).” 그러기까지 주는 오늘도 쉬지 않으신다. 곧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89:28).
이는 주가 세우신 것이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4-6).
나로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그 자리에 있게 하셨던 이가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키게 하신다. 이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여 나는 이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는 것뿐,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98:9).
그리하여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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