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이사야 20:3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시편 111:10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 이 삼국의 함락과 멸망에 대한 예언이 이어지고 있다. 성경은 그 때를 밝힌다.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1).” 이어 이사야가 저들의 멸망을 예언하여 벗은 몸과 맨발로 3년을 다닌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2).”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백성이 모르게 행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3).”
이와 같은 사명과 그 상징에 애굽을 의지하던 유다와 인근 나라들이 충격과 수치를 느낀다. 이 예언은 B. C. 670년 앗수르에 의해 애굽이 함락됨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쉬 의지하고 하나님을 대신하려드는 모든 대상은 ‘애굽’이다. 곧 우리의 인본주의적 사고가 애굽이며 그에 따른 의존과 협력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다. 이에 바울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9).”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진정함을 알렸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시 44:6-7).
나의 ‘애굽’은 무엇인가?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에 앞서 무엇을 찾는지? 그것이 가족이나 친구이나 돈이나 권세이든지 모두는 ‘애굽’이고 저들은 상한 갈대지팡이 같은 우상일 따름이다.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왕하 18:21).” 혹은 자기 신념, 생각이나 자존심이 애굽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순종할 때 때론 원치 않는 수치와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 오늘 이사야는 벗은 몸과 맨발로 3년이나 저들 사이를 다니며 예표가 되고 상징이 되었다. 그 광경을 상상하면 이를 보고 가슴 아파하며 통회하는 사람보다 우스꽝스런 저의 모습에 야유와 조롱이 이어졌을 게 분명하다. 곧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면서 때론 사람들의 판단과 나름 조언의 소리에 더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어느 가정은 교회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들 풀린 부동산 규제와 재산형성의 하나로 아파트를 한 채 이상씩 장만하느라 무리할 때에 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 곁을 지켰다. 그때 몇몇 교인들은 서로가 친하다는 이유로 왜 그러고 있냐는 듯 ‘이 좋은 기회’를 운운하며 뭐라 하곤 했다. 그리고 채 4, 5년이나 됐을까? 그때 무리하여 교회 곁을 떠나 자기 집 장만에 혈안이 되었던 신자들이 대부분 낭패를 겪고 있다.
애굽은 때로 든든하다. 언제든 달려가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둘도 없는 은인이거나 가까운 동지 같다. 이에 저의 실체를 경고하는 데는 때로 질타나 모진 반론이 따른다. 그때에 우린 무엇을 바라야 할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이는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
주를 믿고 주의 뜻을 살피며 주가 주신 사명을 다할 때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 믿음’으로,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 곧 우리에게는 애굽보다 말씀이 가까워야 한다. 신랑이나 아내에게 혹은 존경하고 의지하는 누구에게 먼저 상의하고 고백하기에 앞서 말씀 앞에 자신을 놓아 주의 뜻을 바라는 것, 우린 이를 위하여 세상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를 오늘 시편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111:10).
우리의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무기는 주를 경외함으로 ‘훌륭한 지각’을 가졌다. 이는 영원토록 주를 찬양하는 것.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5).” 오늘 이사야의 말씀을 나는 내가 전에 따르고 의지하였던 어떤 사람이나 가치, 의지하였던 것들을 생각하면 새삼 놀라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땐 그들이 늘 곁에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 터지면 저들을 찾고 의지하면 되었다. 언제든 술잔을 기울이며 무슨 말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같이 이겨낼 줄 알았다. 우정이라고도 여겼고 사랑이라고도 느꼈다. 하나 그것이 좋을 때나 서로 좋았던 것이지 정작 어떤 낭패와 곤란한 지경에 놓였을 땐 가장 먼저 숨기고 시치미 떼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체면과 위신이 상할까 하여 피하거나 멀리하기도 하였다.
내가 주 앞에 올 때, 돌이켜 주의 일에 붙들릴 때 저들 입에서 온갖 비난과 조롱이 있었다. 당면한 현실에서 무책임한 회피주의자가 되었고, 누군 아예 사이비 종교인으로 놀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한다.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저들과 어울릴 때 누가 그럴 때면 나 또한 그러했던 입장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
나는 오늘 자신들이 그처럼 따르고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놀라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우리가 흔히 설마, 했던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실망에서 절망으로 이어지는 경우처럼…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6).” 이 황망한 현실이 오히려 주를 찾고 의지할 수 있는 적기임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하면 할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산다는 일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이 일 저 일에 치여 교회를, 주일을 잠시 쉬거나 멀리하면 멀리했지 결코 손에 든 기회나 호기로운 판단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한참들 그럴 때 교회 목사가 또는 옆에서 같이 신앙으로 함께 하던 이가 ‘벗은 몸과 맨발’로 저들 곁을 지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떤 조언이나 말씀의 권유도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자신들도 나름 주를 안다. 믿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때 내가 어울리던 사람들이 공교롭지만 대부분이 그러하였다. 믿기는 믿지만 각자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저들이 책임감 있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성공한 사람들’로 알고 가까이 한 적도 있다. 한데 성경은 다시 외쳐 소리를 높이는 것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그러니 우린 어쩐다? 내가 가까이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이나 나의 기호나 즐거움이 모두 저기에 있는데, 우리 안의 갈등은 모래만하든지 돌멩이만하든지 둘 다 가볍지 않으니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잠 27:3).” 결정해야 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이에,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111:1).
오늘 시편의 찬송이 나를 반긴다. 정직하다 함은,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11:7, 112:4).
우리가 정직을 고수하고 주 앞에 서는 것은,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잠 11:6).” 이는 지혜이고,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5:8).” 영원한 기쁨의 절정이다. 하여,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97:11, 140:13).
그러할 때에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2-33).” 정직은 언제나 지혜와 함께 움직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정직에서이고, 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뉘지 않았다. 그 마음을 다른 것과 섞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과 손을 깨끗이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111:2).
곧 우리가 기리는 일, 하나님을 바라고 더욱 사랑하여 알고자 할 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7).” 이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한 가지,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이 영원한 것을 위하여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3).
오늘 시편의 찬송과 기도가 주일 아침 새로이 주 앞에 마음을 다잡게 한다. 곧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그리하여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4-5).
그것으로 오늘 나로 주의 평강이 주장하게 하는 것,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그러할 때에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6-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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