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이사야 28:23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11(1-16)
생사화복은 주께 달렸다. 이를 아침저녁으로 두려워할 줄 아는 게 지혜이다. 사마리아는 B. C. 722년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하나님은 앞서 아모스와 호세아를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하셨다. 이에 회개하지 않은 데 따른 말씀이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1).”
여기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을 가리켜 ‘쇠잔해 가는 꽃’과 같다 하신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가 건설하여 세운 왕궁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분지의 언덕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저들의 영화은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다. 곧 저들의 번영이 방종과 교만을 가져왔다. 여로보암 2세 때부터 번영하여 앗수르의 침공을 받기 전까지 이어졌다. 사치와 방탕은 우상숭배와 자만으로 이어진다.
아모스가 경고하였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암 6:, 13).” 술취함은 방탕함으로 이어지고 방탕함은 영적교만을 이끈다. 호세아는 경고하였다.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 4:7).”
결국 저들은 이사야 때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경고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오늘에 이르러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모든 역사와 사실을 일러 알게 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교만은 파멸의 시간을 빠르게 부른다.
오늘 이사야는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4).” 그렇게 이스라엘은 3년만에 함락되었다.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왕하 18:10).” 아스돗이 29년, 두로가 13년 걸려 함락된 것에 비하면 하나님의 선민의 최후가 참으로 허무하다.
그런 것이어서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 이와 같은 말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두고는 뭐라 이를 말이 없다. 우리의 견고함은 하나님께 있다. 오늘 이사야는 이를 알게 한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5).”
이를 위하여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6).” 그러므로 성경은 누누이 바라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20).” 이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시 28:8).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하셨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우리로 주어진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 우리 일의 처음은 ‘처음 사랑을 기억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일은 선하거나 악하다. 죄가 번식하거나 믿음이 자란다.
예배 후 시편 127편을 읽으며 다음 주일 본문을 더듬다 주가 주시는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우리를 부르신 데 있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빛과 소금’의 일을 행하여야 한다. 한데 이를 어렵게 하는 것이 넘치는 상 위에서 주흥을 즐기는 것 때문이다. 오늘 이사야는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7-8).” 하고 그 실태를 말한다. 그때그때마다 읽고 듣고 생각하는 말씀이 서로 이어져 나를 사로잡으신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한데 이 일이 그렇게 어렵다. 마음 같지 않아서 죄란 그저 살짝 비껴난 길이고 조금 휜 줄자 같다. 처음은 미미하여 대수롭지 않게 다가온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럴 수 있는 일을 두고, 우린 마치 호들갑을 떠는가 싶게 민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가리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벧전 5:8, 마 26:41).” 이러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더하신 덴 다 이유가 있다.
인류의 두 축, 서구문화는 무너진 바벨탑을 재건하는 데 큰 의를 둔다. 동양문화는 염세적이라 할 정도로 속세를 떠나 홀로 눈을 깔고 배꼽만 내려다보며 말이 없고 움직임이 적은 것을 미덕으로 안다. 하여 군자는 비가와도 종종걸음 치지 않고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 하고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사 28:9).” 하고 바아냥거리듯 저마다의 문화 위에 세워졌다.
말씀은 큰 소리로 불러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곧 바른 은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는 일이다. 아니면 모든 게 허무하여서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사 28:10).” 우리의 잡다한 자기 사고가 진리를 가린다.
이에 서로 다른 징계의 양상을 이사야는 전하는데,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11-13).” 결국 다른 말을 하는 이방인이 다스릴 것이고, 이에 보응하심으로 공의를 깨닫게 하실 것이다.
은혜와 공의가 우리 삶을 지키신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신 일은 모두 헛되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
이 놀라운, 그리하여 두려운….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7).” 은혜와 공의는 함께 하여서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렘 32:18).” 주는 반드시 이행하신다. 우리 일에 그 특징은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이는 바벨탑을 쌓는 일과 같다. 위선적인 일을 자처하거나, 하여 이는 바리새인과 같아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혹은 일만 만들거나 되레 일거리가 되는 사람도 있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1-13).” 그러니 모두가 사는 게 가지가지고 그 시대마다 다르지 않아서,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사 28:15).” 오늘 이사야에 나오는 것처럼 겁 없이 산다. 당장은 위풍당당하여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말씀은 이어져서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17-18).” 여전히 이 시대에도 이 말씀이 와 닿기는 할까?
이를 알면서 우린 더욱 예수밖에 없음을 되새기게 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0-11).” 우리를 아시는 주가 우리로 주의하고 떠나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오늘도 나는 이 아침에 먼저…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23).” 주의 말씀에 나를 세운다. 어제는 아팠고 오늘은 조금 나았다. 어떤 날은 이렇고 어떤 날은 저렇다. 그때마다 오락가락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26).” 이에 말씀은 살았고 능력이 있어 나로 알게 하신다.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29).” 그럴 수 있는 나의 여러 어려움이나 고통이 바울의 고백처럼 그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한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이는 그 이유가 있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12:9).”
나의 약한 데에서 주의 능력이 머물게 하심을 안다. 곧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89:7).
이는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하여 오늘 시편을 펼칠 때면 새롭게 말씀을 구하게 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19:9).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선한 뜻을 기초로 하여,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1).
이를 산문으로 다시 읽으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모든 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1).” 그러니 우리의 일이란 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그리하여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15-16).
할 때에,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2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9).” 묵묵히 주어진 일에 충실함으로,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30:12).
할 때에,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119:28-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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