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전봉석 2023. 4. 8. 04:44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편 124:8
 
 
 
위로의 하나님이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해 포로 되었던 생활을 끝내고 그들과 함께 돌아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신다. 믿는 자란 ‘말하는 자의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말씀으로 이어져 우리 안에 믿음으로 살아계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17).”
 
하여 누가 언제 이와 같은 소리를 외쳤든지, 썼든지 ‘이 예언의 말씀은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그러므로 말씀 앞에 이처럼 포개어 앉아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자체로 듣게 하시는 이의 권능으로다. 누구는 어떤 어려움이 또는 육신의 나약함이 저로 하여금 말씀 앞에 꿇린다. 이때의 환난은 우리에게 소망을 갖게 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7-8).
 
사람이 사람에게 이를 행할 수 없다. 뭐라 말해도 본디 생긴 대로 살듯이 자기 고집대로 이고 지고 그 속에서 산다. 동생의 어떤 일을 두고 저가 믿었던 사람에 대해 낙심할 때, 나는 어려서부터 보았던 ‘교회 안의 사람들’에 대하여 냉소적으로 말하였다. 사람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좋을 때나 좋은 사이인 것이지 ‘어떤 순간’에 저마다의 아집에 갇히는 ‘보리새우 등껍질’ 같은 게 저마다의 심보다. 마음을 쓰는 속 바탕을 겉으로는 알 수 없다. 본인도 자신에게 놀라는 게 사람이다. 나는 누구의 말을 옮길 생각은 없다. 다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듣지 않는데는 무슨 말이라도 소용이 없다. 결코 우린 우리 스스로도 한 뼘의 신앙을 임의로 성장시킬 수 없다.
 
하여 하나님은 징계를 두시고 징계는 긍휼하심 앞으로 이끈다. 오늘 본문 1절,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시대적 배경으로는 바벨론 포로기 말쯤으로 끌려간 주의 백성들이 곤고한 상태이다. 저들이 왜 포로가 되어 끌려갔는지, 왜 위로 필요한 생이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징계하시되 주의 백성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우리가 바라여 주께 구하는 일,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90:13-14).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이래도저래도 한숨뿐이다. 어제 아침은 자동차 수리를 맡기느라 어머니께 일찍 갔다가 아내와 함께 오전 카페에 가서 브런치로 한 끼를 때웠다. 그러다 당신 먼저 쓰러진다, 하고 아내에게 한 마디 했다. 이어 저녁 예배 때는 둘이 식탁을 물리고 앉아 ‘우리에게 맡기신 한 영혼’으로 장모의 남은 생을 두고 말씀으로 나누었다. 장모의 구원의 확신이 목적이신지, 우리의 훈련이 필요해서인지… 분명한 것은 그때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02:13).
 
이런저런 일로 마음 쓰이고 속상하고 힘들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마음을 휘젓고 있다 해서 이 일이 사라지거나 둔화될 리 없다. ‘정한 기한’이 다 되기까지 어머니는 그 남은 생을 주 앞에서 씨름하며 천국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이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가 아니라 그 준비기간이다. 우리로서는 이를 감당하며 주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를 수행해야 한다. 나는 아내에게 ‘친정엄마’에서 ‘한 영혼’으로의 의식전환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주님의 마음과 권능을 간구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때론 다급하여 강제적으로, 때론 시간을 두고 오랜 기다림으로 우릴 훈련하신다. 시시각각 그 기한을 다하여 간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3).”
 
하고 오늘 본문은 우리를 예비하게 하고,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4-5).”
 
언덕이 낮아지고 위험한 곳이 곧 평지가 될 것을, 모든 육체가 함께 볼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곧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막 13:36-37).” 그때가 되어 누군 여전히 이를 알지 못하고 누군 앞서 이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 17:34-35).”
 
나는 동생에게도 놓아두고 사람, 의지하지 말라고 권하였다. 같이 교회를 이루고 뭐라도 할 거 같은 이에게 어떤 실망과 좌절을 맛볼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의 생은 물론 교회를 이루시는 데 있어서도 전적인 하나님의 주도하에 주가 원하시는 바로 주께서 행하실 것이다. 일찍이 나는 부친의 목회여정에서 여러 차례 사람에게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입안의 혀처럼 굴던 성도가 심지어는 교회 건축 중에 그 책임을 등지고 모든 것을 들고 떠난 일도 있다. 이제와 누굴 지적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더욱이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서는 결단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 비싼 경험을 거쳐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의지할 이는 하나님뿐이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6-7).
 
오늘 본문은 이를 알린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8).” 다른 것으로 힘을 얻고 의기투합하여 주의 일을 운운하였다가는 그 끝이 낭패뿐이다. 사람은 단지 긍휼히 여김으로 주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이이지 주체적으로 주의 일에 합당할 이는 없다. 아브라함도 여러 번, 다윗은 수차례를, 모세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내로라하는 믿음의 선친들로 저들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어찌 해볼까 하여 궁리하다 낭패를 당했다. 역사적으로 이스마엘의 후손은 애를 먹이고 롯은 가는 길을 지연시켰다. 이어서 다윗이나 모세나… 우리의 실수는 여전하여서 ‘애굽’을 의지하거나 ‘사람’의 도움을 구하려다 낭패다. 한데.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03:15-18).
 
이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9).”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보는 자가 복이었다. 사람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고 나름의 신념이나 이상도 아닌,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1).” 언제까지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21).” 몰랐다고 한들 소용없다. 이미 우리에게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었다.
 
때론 실패가 또는 질병이 우리로 ‘일단 멈춤’을 알리는 표지판처럼 위험을 알렸고, 아내가 혹은 곁의 누가 주의 도우심을 전하였다. 누구라도 몰랐다, 처음 듣는다 할 수 없다.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25).” 주는 이미 우리에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29-30).” 할 수 있다 하셨고 할 수 있게도 하셨다. 이에 우리가 이와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31).” 수천 년 전의 말씀이 오늘도 여전하여서 우리 영혼을 당기신다. 말씀 앞에 꿇리신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이와 같은 말씀을 받을지 말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 어려움 곧 징계가 주의 긍휼하심을 바라게 한다. 하여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오늘 우리에게 또는 저에게 우리로 행하여야 하는 일에 대하여 ‘외치는 자의 소리’로 족하였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 그것이 부모이든지 자식이든지 교회 안의 서로이든지… 우리의 관계는 곧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위함이었으니, 우리로 하나님을 맛보아 알게 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 8:9-10).”
 
인격적인 관계란 부대끼고 씨름하며, 징계도 받고 채찍도 맞으면서 우리로 비로소 주의 긍휼하심을 알게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8-20).” 나는 이른 아침 주 앞에 올라와 심란하였던 마음을 내려놓으며 말씀 앞에 꿇린다. 나를 꿇려서 내 안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고요하게 한다. 그러할 때, 시편 한 구절의 말씀으로 나를 승복하게 하신다.
 
…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 그 때에
… 그 때에
… 그 때에
 
…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124:1-5).
 
나는 더듬더듬 한참씩 어느 부분을 입에 머금도 생각한다. 나의 일생에 그 완악하고 아집에 갇혀 옴짝달싹 못할 때를 떠올리다,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6).
 
곧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살아서 남은 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1-22).” 이 은혜, 주의 긍휼하심을 ‘외치는 자의 소리’로 생을 다하기까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주가 행하실 것이다. 그가 시작하셨으니 그가 이루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