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전봉석 2023. 4. 10. 04:54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2:8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편 126:3

 

 

 

오늘 이사야는 초림과 재림의 포괄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여호와의 종의 노래>로 구분되는 네 편의 본문은 42:1-9절, 49:1-7절, 50:4-9절, 52:13-53:12절이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 노래로 분류된다. 여호와께서 칭찬하시며 주의 종의 성품을 노래하며 시작한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42:1).” 또한 그 종을 향한 여호와의 전적인 보증이 나타난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5-6).”

 

이와 같은 보증의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밝히신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8).” 저는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이시다(5). 곧 하나님은 종에 대해 보호하시고, 저로 선민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셨다(6-7). 역사적인 사실로는 고레스를 종으로 세워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회복시키시는 것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회복과 구원의 예언이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려 성자 하나님의 종 되심에 따른 노래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8).” 곧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그만큼 하나님은 하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릴 사랑하셨음을 알게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그러므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우리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을 다하는 동안 온전히 주의 길을 따라 간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그 길로 들어서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돌아 먼 길을 온 것 같다. 저마다 어떤 슬픔이나 상처를 안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며 사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다. 보면 다들 자기 고집에 갇혀 산다. 그 아집은 자기 등에 집을 이고 사는 보리새우나 달팽이 같은 형국이다. 힘에 겨운 날들인데 돌이킬 재간이 없다. 성경은 그런 우리를 붙들고 이르시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어떻게든 좀 해보려고 했던 날들을 돌이켜 본다. 그 고단했던 시절에 비해 오늘은 또 어떠한가, 생각하게 된다. 오늘 말씀은 주의 종을 가리켜 설명하기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2-4).” 그리하여 오늘의 내가 가능하였다는 생각.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그리하여서 나로 하여금 돌이켜 주의 긍휼하심 앞에서 살게 하신 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이제 오롯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나의 그 모든 시절 위에, 허물과 실수 위에, 더욱이 주를 사랑하게 된 이 마음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 앞에 멈춰 서게 된다. 나로 하여금 더는 나의 나 된 것으로 마음을 졸이며 살지 않게 하시려고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어제는 아들 일로 마음이 어려웠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말이 없어진 사이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나의 말을 대신한다. 예배 후에 아내는 아들에게 준비하던 시험 접수는 하였는지를 물었고 아들은 화들짝 놀라며 날짜를 확인하더니… 지난 금요일까지가 접수 일이었던 모양이다. 난색을 표하며 난감해하는 아들의 표정을 읽으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 월요일에 알아보고, 한두 해 더 소신껏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는 말을 나는 위로랍시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고 그만두었다. 아내와 둘이 무슨 말을 더 나누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식사를 하고 교회로 다시 올라왔다. 마음은 좋지 않았다. 다만 주의 뜻이 무엇인지, 나는 오늘 말씀에서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보면 다들 자기 고집이 있고 그 아집이 깨지기까지는 별 수 없다는 것을. 누가 뭐라 한들 소용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과 각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까지 나 역시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온 듯하다. 사람 결코 사람 말 듣지 않는다. 이는 가족이라 더 어려운 것도 있다. 이에 주 앞에 아뢰는 것,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우리의 걸음마다에서 알리신다.

 

가령 나는 한 친구의 여전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처럼 마음 쓰고 애썼으나 나는 어쩔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하였을 뿐 결국은 하나님이 하셨다. 뒤늦게 성경공부를 하고 찬양단도 하고 부활절 성가대 활동으로 감사하였을 저의 시간을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수고를 안고 주 앞에 나아오는 것이 복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어쩌다 그런 실수를 하였을까, 하고 이래저래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된다. 본인도 어처구니없었는지 놀라하는 표정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개입하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혼자 교회에 있는 동안 마음은 어렵고 속상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주님, 하고 부르는데 괜한 눈물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저 아이가 마주하고 의지하여야 할 저의 하나님에 대하여, 나는 부디 그 길이 너무 멀리 돌지 않기를 구하였다. 고집은 엄연히 교만이고 아집은 엄연히 하나님을 멀리 둔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한, 어느 집사는 집사이면서도 ‘자기 건물’이란 이유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두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런저런 내막을 다 알 수 없지만 속된 말로 ‘생긴 대로 사는 것이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3).”

 

별 수 없다.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나를 돌아봐도 그렇고, 사람이란 본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족속이다. 딸애의 친구인 누구는 자기 언니가 그처럼 멋대로 굴다 위암을 얻어 뒤늦게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을 보면서도 안 믿는 가정에 안 믿는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였다. 명색이 신학을 하고 조교로 교사로 교회를 섬겼던 그 애는 이내 안 믿는 신랑과 그 가족들의 일원이 되어 ‘잘 산다.’ 딸애는 가끔 그 친구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가 돌이켜 돌아오기까지의 일을 가늠하다 어질머릴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아들이 빌어먹는 삶이라 해도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으로 쓰이기를 위해 기도한다. 같은 것을 공부하였던 교회 아이의 승승장구하는 지금의 현실이 나는 위태롭다. 앞서 한국은행에 취업하면서 믿음 안에서 잘 자랐는가 여겼던 아이는 뻐꾸기 둥지를 날아가듯 더는 교회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산다. 지금 이 아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하지만…. 그러느니,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0-11).

 

이제와 확신하는 것은 이 땅에서 잘 됨이 주를 멀리하는 것이라면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와 같이 비루하나 주를 의지하며 사는 것이 낫다.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사 38:16).” 나는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42:12).” 오늘 본문은 일갈한다.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18-19).” 봐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삶으로,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20).” 우리에게 이와 같은 숙련된 믿음의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바라는 한 가지 일,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6:1-3).

 

오늘 우리에게 행하신 일, 이 땅의 이런저런 상황으로는 비루한 삶이라 해도 내밀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알기까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우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어떠한 때에 값없이 부르시고 주의 자녀로 삼으신 것인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이를 안다면 다른 무엇을 견주어 주의 사랑을 저울질할 수 있겠나.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오늘의 나로 나는 누구를 주의 이름으로 사랑한다. 가족이든지 남이든지 우리가 주의 자녀로 하나된 것을 생각하며,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주가 날 위해 기도하심으로 나도 기도할 뿐이다. 마음이 아프고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슬픔이 나를 엄습할 때도 나는 기도할 뿐이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4).

 

할 때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6).

 

우리의 눈물이 헛되지 않을 것을. 우리의 기도가 단 한 마디로 거저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이에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남은 생에 주가 내게 두신 일이라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리하여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롬 2:7, 약 5: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