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전봉석 2023. 4. 11. 04:56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이사야 43:2-3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을 듣는다.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말씀에서 눈물이 고인다. 저가 나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고,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하시는 말씀 앞에서 가슴이 벅차오른다(2-3). 이런저런 상황들로 마음이 어렵고 몸이 고단하다가도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하실 때에 다른 무엇이 더 위로가 될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시는 말씀 앞에서 무너지듯 더는 바랄 게 없다. 그가 오늘 내 앞을 지나시며,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하실 때에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는 지어져가서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더는 무엇이 문제이겠나?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 나는 침잠하듯 가라앉는다. 침묵 저 깊은 곳에 몸을 웅크리고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전에는 그러하였다면 이제는 말씀 앞으로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8-10).” 때론 일련의 상황이 앞뒤로 욱여쌈을 당한 것 같이 어려울 때도 이처럼 말씀 앞에 앉으면 그 이유가 보인다. 목적이 있으신 걸 알게 된다.

 

물 가운데를 지날 때, 불 가운데로 지날 때, 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 가운데서 주가 함께 하심은 더욱 선명하였다. 인생의 고초가 어디 개인의 문제이던가? 아침마다 장모를 뵈러 갈 때면 우글거리듯 병원 안은 북적인다. 어제는 곁에 앉은 이가 마치 우리와 똑같은 일을 재연하는 것처럼 노인을 앞에 두고 같은 성화를 부린다. 노인은 우리 장모와 다를 게 없이 같은 고집으로 자기 생각뿐이다. 순간 서로가 닮은 것이…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사는 게 다 그런 모양이다. 다만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믿음 위에서인가? 홀로 섰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겠다.

 

돌아오면서 나는 아내가 성화부리지 말 것과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족한 것을 말하였다. 친정엄마 일에, 자식들 일에 아내는 예민하였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한 때에 오늘 아침의 말씀이라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2).” 주가 함께 하심을. 그 모든 게 주의 손에 달린 것임을. 그리하여 주께 나는 어떠한가 하면,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4-5).” 어떤 상황에서도 주가 이끄시고 주가 돌보신다. 이것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이미 엄청난 값으로 치른 것이어서 주는 결코 빼앗기실 리 없다. 그러므로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염려와 근심이 혹은 고달픔과 초조함이 행여 나를 상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6-7).” 나를 그가 지으셨고 나를 그가 지명하여 부르셨나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하시는 말씀 앞에서 눈물이 흐른다.

 

현실이 어떻다 해도, 하여 그 마음이 어떠하다 해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하시는 말씀 앞에 무너지듯 감사할 따름이다(9-10).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다른 해결이 무에 필요하겠나? 어떤 결말이 이보다 더 나을까? 이른 새벽,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 100:2-3).

 

하면 그 어떤 문젯거리, 어려움, 고초라 해도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저녁에 둘이 식탁에 앉아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본다. 서로의 어떤 말이나 약속보다 위로가 크다. 어머니 때문에 같이 나누기 시작하던 바울서신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사역을 보았다. 성경의 성경 로마서에서 우리로 의롭다 하신 이의 무궁하신 사랑을 알았다. 아이들 일로 혹은 자신만의 어떤 서러움이 아쉬움 가운데서도, 오늘 본문과 같이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43:12).”

 

이에 우리를 이끄는 목적 있는 삶이라는 것을,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평소보다 나는 지나치게 안정제를 의존하고 있고,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어 경직되는 몸의 고통을 감내한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기 무섭게 잠이 든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내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아우성이다. 주께 아니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까? 말을 한들? 요즘 특히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사람, 사람으로 안 된다. 말하는 자는 말하여서 상처 받고 듣는 이는 들음으로 상처가 된다. 서로가 말로는 단 한 뼘도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이고 현실이다. 나는 이제야 깨달은 사람처럼 주의 이름만 부른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나의 마음을 아셨는가?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사 43:15-17).” 주가 행하신다. 행하셔야 하고 아니면 다른 수가 없다. 잠시 동안 인생은 반짝 젊은 날의 화양연화 같은 날들도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어제 오전에는 병원에 앉아 장모와 아내가 똑같은 말로 티격태격하며 나누는 대화내용이나 옆 사람들의 성화가 서로가 다를 게 없다는 데서 새삼스러웠다. 모두가 고생인 게 저마다의 아집 때문이다. 늙으면 늙어서 그의 완고함으로, 젊으면 젊어서 그의 교만함으로, 거기에 누가 무슨 말로 돌이켜 저를 붙들어줄 수 있을까? 오후께 부친이 먼저 안부전화를 하셨고, 좀 어떠하신가? 하고 물어서 나는 투정부리듯 이러쿵저러쿵 말하는데… 너도 그러했다, 하시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우리말의 함정이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묵인하거나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순전히 남 탓을 한다. 너 때문이고, 너만 그렇다! 말하다보니 내가 그러고 있었던가, 아버지는 나의 말문을 막듯이 ‘너도 그랬다.’ 할 때 헉, 하고 숨이 멈추는 것 같은…. 우린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8-20).”

 

우리는 이런저런 일련의 어려움 가운데서 외려 주가 함께 하심을 느낀다.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긴 누구 모친은 결국 딸과 싸우고 따로 방을 얻어 나갔다. 애써 모신다고 모시던 따님은 정신과치료를 받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가쁜 숨을 고를 뿐이다. 안 보고 떨어져 있으니 마음이 안 됐고, 찾아가 만나기라도 하면 또 한바탕 난리도 아니게 싸움이니…. 가족이 원수라! 차라리 남이어서 봉사하는 것이거나 돈 버는 일이라면 견디겠다는 저이의 말에 나는 공감을 느낀다. 난들 아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가족이라서 저마다의 사연 없는 집구석이 어디 있겠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놀랍고도 태연하시다. 당연하시다는 듯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여기서 놀라운 단서를 하나 우린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사실. 서로가 가족이냐 남이냐, 사랑하냐 미워하냐 하는 따위의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뒤죽박죽 서로가 얽혀 자기 고집과 아집으로 으르렁거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알게 하시는 것이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6-7).” 아, 이 놀라운 사실 한 가지! 우리는 가족을 운운하며 서로 어쩌지 못할 문제를 안고 씨름하는데, 정작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그리하여 하나님만 바라게 하시는 것이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31:19-20).

 

이 놀라운 숨은 뜻. 우린 서로 가족을 운운하며 서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가근불가원 가운데서 곤욕을 치를 때, 오늘 시편은 한 자리 띄어앉아 들려온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127:1-2).

 

이 간단하고 단순한, 결국은 주가 세우시고 지키실 때 가능한 것들에 대하여… 더욱이 가족은 원수만 못한 것이 죄가 들어와 하와는 아담에게 아담은 하와에게 서로는 죄의 동기가 되었다. 하나는 적극적인 가담자로 하나는 방관자로, 그 둘이 이루어 낳은 처음 자식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 유리하였다. 다만,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일련의 사태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한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였듯이 지나고 나서야 교훈이 된다. 이 현실의 한계는 잃은 뒤에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26).” 말씀은 냉정을 찾고 차가운 머리로 주를 바라보게 한다.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27-28).” 언제까지라도 우리의 악순환은 계속되면서 우리로 주 앞에 나아오게 하심인데,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19:165).

 

오늘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은,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69-170).

 

하여,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