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사야 45:6-7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시편 129:4
하나님의 역사는 시공간을 초월하신다. 그 뜻에 따라 ‘고레스’도 들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붙드심이 우릴 놀라게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작은 나라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들어 고대 근동 모든 주변국을 정복하고 통치하고 다스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들어 쓰실 때 능치 못할 게 없다.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면 그리 이루어진다(1). 이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2-3).”
그리 행하심으로 그리 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누구도 그의 앞을 막을 수 없고 하시고자 하는 일에 돌이킬 수 없다. 그러므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이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고 이를 지켜 사는 것이 신앙이다.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18:35, 73:23).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둘이 앉아 예배를 드린다. 친정엄마와 아들 일로 마음이 어렵다. 아내는 내가 좀 어찌 나서면 안 되겠나, 하고 성화였다. 나도 그러한 마음을 주께 내어드릴 뿐이었다. 예배 중에 아들이 가족방에 카톡을 올렸다. 이번 실수(?)를 인정하고 한 해 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찾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냥 두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 범사에 예비 된 길이 있다. 오늘 이사야 본문 2, 3절에서 나는 그리 읽는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겠다고 하신다.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시겠다고 한다.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그 길을 여신다. 하나님이 그리 사용하실 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우리는 마주하고 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그리 이루어 가신다.
아내는 금세 화색이 돌았고 나는 순간 감사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일련의 사태가 주를 바로 알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어제는 아내와 둘이 그런 대화로 성경공부를 한 셈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오늘 우리 개개인의 ‘십자가의 도’는 무엇인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하나로 연결되었다. 주의 길을 행한다는 것은 이를 달리할 수 없다. 더러는 오늘의 상황이 안타까울 수 있다. 힘에 부쳐 쓰러질 것만 같은 괴로움일 수도 있다. 하나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둘이 앉아 나누는 말씀이 오늘을 비치고 있는 거울 같았다. 결국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9).”
우리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려고, 주와 만나게 하시려고, 주를 바라게 하시려고… 나의 설명은 길지 않았고 아내의 생각은 깊어졌다. 단지 늙으신 친정엄마, 아들의 일로 인해 속상해하는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도”로써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시는 부분에서 더욱 더 주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18). 우리의 지혜, 어떤 수완이나 묘수로 해결될 일은 없다. 곧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그러니 상대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할 일이다. 하면,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출 23:20-21).”
곧 일상의 사소한 일이란 어느 것도 사사로울 수 없다. 행여 우리의 사사로움이 우리로 그 영혼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미 2:13).” 주께서 우리 선두에 가신다.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가신다. 우리 가는 길은 평안하다. 이는 내가 알지 못하던 때에도 그리하셨음을 이제는 인정한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4-6).”
오늘의 이와 같은 말씀 앞에 토를 달지 못하게 하신다. 어떤 핑계도 변명도 할 수 없게 하신다. 일갈하여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말씀 앞에 잠잠할 따름이다. 모든 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게 된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47:2).
때론 막연하여 두렵다. 당장의 일로 분별이 어렵다. 감정에 휘둘리게 되고 마음에 끌려가기 일쑤다. 나를 헤집고 다니는 근심과 걱정으로 속수무책이다. 마치 염려가 긁어 파서 젖히고 뒤적여 물리칠 길이 없다. 하나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5-16).” ‘기약이 이르면’ 그러기까지 우리는 자신을 들들볶고 안달복달 애를 태우지만 그러는 것까지도 그러하게 두신다. 그리 두심으로 결국은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다. 분명히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이를 알게 하시려고,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8).” 하고 주가 일깨우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곧 어머니 가시는 마지막 길에 우리와 동행하게 하심은 저에게는 구원의 확신과 주의 마음으로, 우리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주의 권능으로… 주의 살아계심을 알고 이를 인정하기까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3-4).”
이 놀라운, 어떤, 기적과 같은. 혹은 감사로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사 45:12).” 이 모든 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안도한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39:13-14).
이를 전 생애를 걸고 알아가는 것이고 비로소 인정하여서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사 45:13).” 흔히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이를 인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러는 ‘광야 40년’이거나 방주를 짓는 데 걸리는 120년이었다. 이에 따른 의와 공의가 하나님의 보좌이시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89:14).
우리가 무엇을 인정하기까지 하나님은 참고 또 기다리신다. 그 두고 보는 시간이 우리를 단련하신다.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111:7-8).
하여 우리들로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4-15).”그러므로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19).” 오늘 말씀은 가차없다. 모든 일의 여부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22).” 이를 듣게 하신다. 반드시 이를 이루실 때까지이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23).” 이는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25).”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이다. 이에 오늘 시는 인내를 갖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129:1-2).
믿음으로 인한 고난은 필수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2).” 이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길이어서 저마다 이 길 위에서 저울질한다. 더러는 파선하고 배교하여 세상으로 간다. 그러나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우리가 믿음으로 생의 어떤 고초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주의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3).
믿음으로 가는 길이 더러는 왜 꼭 그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부당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성경은 일러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이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하여 우린 주를 바람으로 간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하여 우리는 기도한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의 어려움이 끝도 없을 것 같으나…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6-7).
주의 이름으로 겪을 때면 안다. 어렵고 고통스러우나 하찮다.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외로우나 가소롭다.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신 32:35).” 우린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주를 본다. 주가 부르시는 그의 음성을 듣는다. 주 앞에서 대수롭지 않다.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사 27:11).” 하여,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8).
이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상대적으로 우리는 돋보여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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