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8:11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편 132:13-14
하나님은 부르시고 새 일을 행하신다. 앞서 그의 비밀한 일을 우리에게 알리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일은 진실하고 비밀한 일을 안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잠 28:18).” 바른 길로 가지 못하면 그릇된 길로 간다. 거짓을 버리지 않으면 참된 것을 말할 수 없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성도의 정체성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악의 모양이라도…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이는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일로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하시는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면구스럽기만 하다. 어떻게 나는 스스로 나를 이길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없다, 할 때에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하기까지, 하여 온유한 자로 산다는 일은 모든 팔복이 필요하다. 심령이 가난하려 긍휼한 자로 살고자 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로 살려 애통하는 자로 산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복의 비밀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일로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앞선 이의 모든 족적이 그러함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낸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9-10).”
이는,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11-12).”
하나님의 처음과 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이다. 그 외에 다른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것으로 맹세하실 수 없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알고 영광을 돌리기까지 바울은 애끓는 심정으로 가르친다.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2-3).” 곧 우린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없고, 자신의 의지로 하려 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연단은 가차 없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3-4).” 삶 가운데서 우린 이미 알았고 이를 확신하여서 이리 붙들렸다.
주가 이루시는 것,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갈 3:4-5).” 결국은 믿음으로이고 믿음이 아니면 성령으로도 행할 수 없는 일이어서… 오늘 본문은 크게 외친다.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사 48:6-7).”
새 일, 우리로 ‘출애굽’하여 더는 세상살이를 도모하지 못하게 하셨으니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출 15:11-12).” 할 때에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졌고 ‘새 일’을 향한다. 이때에 우리로 깨어 근신하며 살기를 오늘 본문은 가르친다.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사 48:8).” 곧 우리의 죄는 이 땅에 나기 전에, 내 어미의 태중에 있기도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 비밀한 일을 이루시기까지 곧 구원의 과정은 지난하고 그 세월은 길고 더딘 듯 하여 열에 아홉은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고 자기 길로 떠나가는 것이겠다.
여기서 끝이라면 모든 게 또한 허무할 따름인데,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하나님은 그리하실 수 없으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겔 39:25).” 즉 오늘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두고 살필진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아니면 오늘에까지 이를 수도 없었다. 누가 나만큼 하나님을 생생하게 곁에서 마주하고 살았던 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릴 적 내가 아직 철이 들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엄청난 역사를 시작하셨다. 강원도 평창 두메산골 작은 예배당에서의 부흥회와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소년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하여 훗날에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게 된다. 그때에 나는 아직 젖 먹이 아이였고 나의 앞뒤 시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였다. 다만 그때도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아이였다. 너무도 가난하였던 시절이었고, 주어진 몫의 날들이 가혹하여 때로는 죽기를 갈망하며 자살을 무슨 보험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럴 수 있다는, 언제든지 그럴 것이라고 하는 희망이 나로 하루를 또 견디게 하였는가? 생각하였더니 실은 그게 하나였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시편에서 기도를 배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시 79:9, 11).
새벽에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층층마다 서는지 한참을 더디게 올라왔다. 순간 그것이 택배기사가 그리하는 것을 알았고 다른 쪽 엘리베이터를 누르는데 소용이 없었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데 딸아이 나이쯤 되었을까? 여자아이가 뒤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열리는 문 안에서 놀라 쳐다보았다. 내려가나요? 하고 묻더니 내가 타기 무섭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일층까지 내려오는 사이, 내 안에 어떤 안타까움이 혹은 미안함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였다. 저는 문이 열리자 잰걸음으로 달려서 세워진 트럭 조수석에 올랐다. 운전하는 이는 부친인가? 나이가 제법 들어보였다. 늘 대수롭지 않게 물건을 시키고 받고 하였던 일이 누군가의 새벽을 깨우고 고단한 삶을 토대로 내게로까지 전하여지는 것이었구나, 하는. 새삼스럽기는… 마치 몰랐다는 듯 나는 차를 가지고 교회로 오는 이른 새벽길에 울고 싶은 것인지, 무엇이 안 된 것인지 마음이 어려워 주의 이름만 되뇌었다.
며칠 전 동생은 재판 건으로 교회를 미룬 채 공장을 다니고 있는데 몸이 힘들거나 사람으로 마음이 상하거나 하여, 그만두고 택배 일을 할까 한다는 소릴 들어서였을까? 이와 같이 묵상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 짧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구석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던 딸아이 또래의 택배기사가 마음에 남았고… 어릴 적 목회에 쪼들려 그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던 부모의 모습과 덩달아 그 길을 행하였던 형제들의 생활이 불현듯 생각이 나서 그러한가.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0-11).”
여느 삶보다 목회자로 주의 종으로 세우시고자 할 때의 그 모진 연단의 시간을 나는 잘 안다. 이내 승복하여 주의 길을 감당하기까지 하나님은 거침이 없으시다. 오늘 본문은 마치 그리 부르시는 것만 같다.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12-13).” 하면서 나는 나의 날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하였던 모든 날 가운데 허투루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내버려두신 적이 없다.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심은,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에 9:13).” 곧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19-22).”
어떤 이의 고단한 새벽 시간을 목격하고, 중첩되어 우리로 하여금 주의 길을 가게 하시려고 연단하시는 것을 돌아보다 생각하였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2:23).
이에,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사 48:15-16).”
오늘도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울먹거리며 주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복이었다. 저는 나의 구속자이고 인도자이시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17).” 그러므로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18-19).” 말씀으로 말씀을 붙들고 주의 이름으로 주께 아뢴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132:1).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0-11).” 살면서 사는 날 동안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나는 무엇을 두고 근심하는가? 할 때에….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3-14).
곧 우리 구원의 안식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102:27-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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