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이사야 65: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시편 149:1
신앙은 보존이 필수다. 믿음은 값없이 얻은 것이나 신앙은 그에 따른 섬김과 누림이 있다. 신앙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라가야 한다. 타락한 선민에 대하여 혹은 주의 일을 이루시는 데 있어 하나님은 거침이 없으시고 이에 우리는 신앙으로 이를 보존한다. 화초 같아서 돌봄이 필요하다. 가지치기도 분갈이도 해줘야 하고 때마다 물도 주고 해와 바람도 들고 나야 한다. 이때 우리의 겸손은 자양분이다. 하나님께 둔 신앙의 뿌리를 든든하게 한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하여는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곧 오늘 이사야서의 첫 구절에서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수긍하게 한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우리 신앙의 해충은 교만함과 오만함이다. 교만(驕慢)은 말(馬)이 높은 곳으로 치달리는 것과 같이, 말(言)을 길게 끌다 그물에 걸리는 어리석음이다. 오만(傲慢)함은 사람이 거만한 것을 일컫는다. 오늘의 본문도 선민으로서 교만하고 오만하여 타락한 백성에 대하여 하나님의 경고와 응징과 용서에 관한 내용이다. 어제는 돌아오는 주일 설교원고 본문의 내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그것이 오늘 아침의 말씀과 만나면서 우리의 신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1).
우리로 교만하고 오만하게 하는 것은 높은 곳으로 치달리는 말과 이를 모방하며 따르려는 마음의 일이 아니겠나? 이를 무모한 열망이라 한다면 그것은 남들처럼, 남부럽지 않게 살려는 스스로의 답이 화근이 되겠다. 신앙에서도 ‘만일 ~하였더라면’ 하는 식의 접근은 주의 뜻을 온전히 보지 못하게 우리 눈을 가린다. 가령 마리아와 마르다가 그 오라비 나사로가 죽자 실의에 빠져 예수님께 원망 조로 한 말이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또한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32).”
이는 베다니 연못 앞에서 만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도,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시면 ‘네!’ 하고 대답하면 될 일을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구구절절 말이 길다(5:5-7). 그러자 예수님은 거두절미하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8).” 우리에게 겸손은 ‘네!’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 5:9).”
이에 엮이는 쓸데없는 논쟁과 주제를 빗겨난 말들이 상황을 꼬이게 하는 것을 본다. 우리가 가진 무모한 열망이란 신앙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대조되면서 발생한다. 이에 시편은 그러지 않는 것이 신앙인 것을 알려주면서, 이는 마치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에서 얻는 평온을 바라는 것과 같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2).
젖 뗀 아이는 간난아이와 다르다. 엄마의 품이 얼마나 안전하고 포근하고 위로가 되는지를 안다. 곧 의지가 있고 분별이 있고 그 품의 평온을 아는 것이다. 그런 아이를 엄마 품에서 떨어뜨리려하면 애는 자지러지게 울며 발버둥을 친다. 필사적으로 엄마를 끌어안는다. 세상 그 무엇도 아이에게 엄마 품을 대신할 수 없다. 평온은 그렇듯 쉽게 얻는 게 아니다. 허튼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꼬인 생각을 평평하게 펴야 한다. 그러할 때 평온은 편안함인 것을, 평온은 삼가함으로 얻는 것이다. 젖 뗀 아이는 열망과 신뢰를 선택할 줄 아는 정도의 분별을 가졌다. 이를 바라라는 것,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31:3).
시편 131편은 읽으면 읽을수록 쉽고 짧고 간단한 것 같아도 그 의미, 평온의 길은 결단코 그리 간단할 수 없다는 데서 왜 그처럼 다짐부터 해야 하는지를 알겠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
종이에 옮겨 적어보기도 하고, 한자어를 찾아 그 부수까지 분해도 해보고, 그러다 바울의 설교를 기억하여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이를 또 여러 번 읽고 쓰고 하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생각하고…. 묵상은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상과 같아서 물은 먹잇감을 놓지 않는 사자 같은 즐거움도 알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사 31:4).”
오늘 본문 더욱이 1절에 이어,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24-25).” 나로 하여금 묵상의 단맛을 누리게 하신다. 상상함으로도 저 천국이 그립다. 사모하게 된다. 더욱이 요즘 장모와 저녁예배를 드릴 때마다 어느 본문으로든지 나는 천국으로 펼친다.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이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곧,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이와 같은 말씀을 줄 간격을 두는 것은 생각의 텀을 두어 오래 머물려함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는 데서 이미 결정된다. 내가 아는 나를 나 역시 용납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하물며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시는 말씀 앞에서 나는 무너진다. 우리의 겸손은 모든 것 아랑곳하지 않고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는 것과 같이 주께 안김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어지는 불순종과 그에 따른 진술은 모두가 그게 나여서 듣기 힘들다. 그러하나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사 65:16).”나는 이제 희망한다. 부디 더는 주를 멀리하지 않기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고후 5:10-11).”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31:23).
곧 두려워할 줄 안다는 것은 주를 경외함이었다.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나는 자주 시무룩하였고 때로는 심한 두려움도 느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듣고 믿기지도 않는 일로 믿음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데, 그게 싫었고 두려웠던 것은 그럼에도 지옥은 무서웠다. 그대로 믿지 못하고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인데, 나도 하나님의 자녀는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린 게 무슨 생각 때문인지 모든 천지가 말씀으로 지어졌다느니, 모세가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고 마른 땅을 딛고 건넜다든지, 처녀가 임신해서 아들을 낳은 이야기도 그렇고 그가 예수시며 하나님이시라는 내용들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때 주일학교 선생이었던 누군가 내게 ‘나의 두려움’이 곧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려울 리도 없다. 안 믿는 자들이 지옥 무서운 걸 믿겠나?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97:10).
나는 나의 믿음 여부도 믿지 않는다. 다만 젖 뗀 아이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품에 안길 뿐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2).
그러하기를. 그러하여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 2:7-8).” 이와 같은 말씀으로 아멘, 할 따름이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4:17).”
더는 예전의 나로 살지 않는다. 그리고 말씀으로 안긴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18-25).”
오늘 말씀은 그 자체로 기쁘고 즐겁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149:1).
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아, 이는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4).
말씀을 가만히 읽고 듣고 보고 있으면 알 것 같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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