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예레미야 1:7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1-2
유다의 멸망이 급박하게 다가오는 기원전 7세기 말에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6세기 초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앞서 예레미야의 소명을 다루고 있다. 저는 베냐민 아나돗 땅 힐기야의 아들이다. 16대 유다 왕 요시야 때 부르심을 받아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는 시드기야 왕 때까지 약 40년의 선지자 생활을 한다. 예레미야는 유다 멸망 직후에도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나님이 저를 세우신 이유는 10절에 나온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1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여기서 아나돗은 예루살렘 북동쪽 4.5Km 떨어진 아나타로 알려진다. 제사장 아비아달의 고향으로 솔로몬에 반역한 아도니야를 추종하며 솔로몬에 의해 추방당해서 아나돗으로 쫓겨왔었다. 제사장은 그 직분에 의해 거주지를 옮기지 않는 것으로 예레미야는 아비아달의 후손일 것이다. 실패한 제사장의 후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살면서도 저들의 타락을 보며 탄식할 뿐이었다. 솔로몬 이후 저들 가문은 인정받지 못하는 멸문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예루살렘의 타락은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되면서 멸문당한 선지자 가문 예레미야의 탄식과 멸망의 선포를 듣게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룻이 이방여인이나 다윗의 혈통을 잇고 메시아의 계보에 오르는 것처럼, 앞서 라합이 가나안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던 전력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며 배신하였어도 사도의 직분을 다했고, 사울이었던 바울이 사역하였던 것을 보아도 하나님은 과거로 인해 우릴 외면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와 같은 과거가 우리로 주 앞에 겸허하게 한다. 주의 긍휼하심으로 사용하신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곧 돌이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서 이와 같은 말씀은 대할 때마다 감격스럽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몬 1:10-12).” 곧 저의 출신이 종이요, 도망자였으나 이제는 주께 붙들려 주의 일을 하는 자로 바울은 이를 주목하게 한다. 곧 우리의 믿음은 지난날이 어떠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의 지속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알려준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렘 1:2-3).”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우리가 믿음을 지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에 잘 나타내고 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에 대해 그는 알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1:12, 13-14).” 이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한 말도 같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곧 우린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부르신 대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르는 자들이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요 4:28).” 하던 일과 관계와 모든 사연을 버려두고 따르는 것은 우리 믿음의 사역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 103:17-18).
곧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실 때,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3).” 우리로서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5-16).” 이를 개인적으로 그 시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받을 때에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강권하심이 있다.
나는 어려서 목사가 되겠다고 하였다가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교회의 실상과 사람들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꼈다. 앞서 누나와 매형, 두 동생이 주의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완악하여졌다. ‘나까지 뭘…’ 하는 반감도 컸다. 그에 따른 사탄의 예비한 길은 적당하였고 그렇듯 하였다. 이상할 정도로 ‘애매한 신앙인’들이 곁을 포진하였고, 사회적으로도 나름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문학을 하면서 그 세계가 그렇듯 자유분방하였고 억눌렸던 영혼에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진 듯도 하였다. 적당한 사람들과 당위가 분명한 세계에서 나는 나름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게 되었고, ‘죽어도’ 목사는 안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당시 어울리던 이들의 뜻도 그러했다. 어느 작가도 있었고, 기자도 있었고, 의사도 있어 저들은 모든 하는 일에 형통한 듯 보였다. 일일이 그 때의 일을 열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당하였다는 것은 사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나른한 오후 같다. 주를 향한 절박함이 빨려들어갔다.
우리 신앙에 적발함이 없을 때 우린 적당함으로 기운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잠 8:10-11).”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9:9-11).
그러한 내게도 예레미야와 같이 주의 강권하심이 있었다.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의 공통점이면서 더욱이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오늘 본문 5절 이하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5-6).” 그와 같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하였던 것인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7).” 이는 모세도 같은 심정으로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하며 한사코 못하겠다 할 때도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17).” 주의 뜻은 돌이키심이 없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갈 1:15, 롬 9:21).” 곧 우리 생의 절대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시편의 세계는 이를 더욱 확실히 보여준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37:5-6).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39:15-16).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소유권을 결코 양보하실 리 없는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8-9).” 우린 할 수 없으나 우리로 하게 하시는 이는 다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러니까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는 우리 몫이 아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오늘처럼 모든 게 학벌위주에 인맥으로 학연지연을 고려하는 데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현실적으로 그렇다고 하니 아니라 한들 소용없는 말일 테고,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3-4).” 주만 바람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귀하였다. 다만 말씀에 의지하여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그러니 어떤 이를 두고 저의 형편이나 사정을 너무 고려하는 것도 혹은 말씀으로 적용하여 뭐라 강요하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다. 가끔 누구의 어떤 상황을 보고 이러했으면… 하는 생각이나 저러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설 때도 있지만 내가 말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확인할 뿐이다. 다 때가 있으려니,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2-3).” 이를 봐도 주가 행하신다. 주로 행하시게 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렘 1:11-12).” 하나님이 보이시고 이루신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의 뜻이 전하여진다. 때론 아이가 아파서 혹은 본인이 병들어서, 하던 일이 꼬여서, 되는 일이 없어서, 혹은 누구의 말로 또는 어떤 이의 상황으로… 하나님은 직간접적으로 주가 행하실 일을 우리에게 알리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렘 1:13-14).” 이를 듣고 보고 전하여야 하는 자들로 우리를 세우셨다. 모든 믿는 자의 소명이다. 저로 그 가정에 혹은 한 개인에게 주는 주의 뜻을 알리시려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 6:9-10).”
나는 그때 다른 곳으로 달려갔고 다른 이와 어울렸으며 내가 좋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았다. 그때도 매순간 하나님의 뜻은 전하여졌다. 어떤 이의 말로, 느닷없는 사건이나 상황으로, 믿었던 어떤 이의 등 돌린 모습에서… 하나님은 계속 부르셨고 말씀하셨다. 나는 외면하고 한사코 이를 소홀히 여길 때도 주는 그런 중에도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함께 하셨다. 나는 듣지 않고 멀리하는데도 주는 항상 곁에 계셨다. 이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으나 돌아보면 하나님은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셨다. 후에 알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심은 아니었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 3:2).”
이내 엠마로 내려가는 이를 찾아가셔서…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2).” 이는 성령이 우리 안에 행하심이다. 우리가 스스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4-35).” 주가 이루신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나는 나를 돌이켜 기어이 주의 길에 세우신 것을 볼 때면 감회가 새롭고 또한 두렵다. 어떻든지 주를 이길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이에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렘 1:17).” 주가 이루실 때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9-20).” 기어이 한참을 돌아 고생고생 끝에 주를 맞이하는 이도 있을 테니.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1:18-19).” 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이에 오늘 시편은 새롭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1-2).
우리 가는 길이 어떠한가를 알려준다.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눅 6:22).” 그러므로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3-4).
이 확실한 구분을 알 때, 나는 오늘의 이 붙들림이 감사하다. 하여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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