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겔 2:8-10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시편 59:16-17
하나님의 백성의 죄악으로 심판을 받고 또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에스겔서이다. 선지자로서의 소명과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한다. 주가 주시는 애곡과 애가와 재앙의 말을 ‘먹으라’ 하신다. 우리의 사명은 이 말씀을 먹고 힘써 전해야 한다. 그런 우리는 ‘인자’이다. 이 호칭은 예수께서도 스스로를 지칭하실 때 사용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구약에서 에스겔에서 주로 사용되고 다니엘에서 한 번 사용되었다.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
오늘 본문 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인자란 호칭을 사용하시는 것은 우선 그 한계를 알게 한다. 인자, 사람의 아들. 곧 ‘흙의 아들’이란 의미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자야, 하고 부르시는 것은 그가 누구인지 알게 하심으로 겸손을 요구하신다. 에스겔서에서 무려 93회 사용되는 이 호칭은 상대적으로 교만하여 엎질러진 현재의 상황을 알게 한다. 우리는 결국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이 땅의 흙으로 지음 받은 자들이다. 이를 인정할 때,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 64:8).”
곧 아무리 멸망의 자리라 해도 우리로 구원을 이루신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겔 2:1).” 우리로 서라 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자원하는 심령을 주시기를,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2).
죄를 인정할 때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우린 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그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결코 이를 잃지 않으려 한다. 앞서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겔 1:28).”
우린 주 앞에 그의 준엄하신 영광 앞에 엎드린다. 주는 우리에게 일어서라 하신다. “네 발로 일어서라.” 하고 듣게 하신다. “내가 네게 말하리라(2:1).” 우리가 두려워 엎드릴 때,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마 17:6-7).” 그러므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우리로 주의 길을 가는 데 있어 ‘일어나라.’ 하신다. 그럴 수 있도록 새 힘을 더하신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결국 우린 이에 순종하여,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겔 2:2).” 보면 우린 다만 의지다. 결단이 전부다. 하면 주의 영이 임하신다. 주의 영이 임하실 때 우릴 일으켜 우리 발로 서서 듣게 하신다.
결단이 필요하다. 또 다시 무너진다 해도 우린 새로이 의지를 가져야 한다. 결단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 모세가 주의 부르심에 결단하기까지 얼마나 여러 번 하나님 앞에 주저하고 의문을 제기하였는지 잘 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 일어서라 하실 때 서려는 의지가 있어야 주의 영도 우리 안에 임하신다! 은혜도 받을 수 있는 자에게 부어 차고 넘치게 하신다. 종종 그 그릇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를 엎어놓은 자는 그 안에 내용물을 담을 수 없다. 그러할 때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 3:8).”
이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곧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1-12).” 이는 모든 성경의 공식이다. 말씀이 있고 이에 우리는 순종하려 할 때,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가능하여진다. 기도하려는 의지, 말씀 보려는 의지, 우리의 결단이 성령으로 일하게 하신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 저의 어려움이 결단의 문제인 것을 자주 본다. 그래야 하는데, 하고 망설일 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하였을 때 저는 여전히 그 상태다. 어디 부역자로 있으면서 주의 사역에 소극적이다. 개척을 미루거나 심지어 목사안수를 미루다 다른 길로 빠지는 것을 보기도 한다. 누군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사업가가 되었다. 내가 하려고 할 때 그 자리는 답보상태다. 하나님은 우리로 보내신다. 오늘 3, 4절, “인자야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자는 단순한 가족이 아니다. 잘 아는 이웃도 편하고 친한 친구나 동료가 아니다. 저들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들이다. 이를 그저 아내로, 남편으로 대할 때 우린 속수무책 감당이 안 된다. 곧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인간적으로는 부모요, 부부요, 자녀요, 친구이나…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 말씀 앞에 가만히 자신을 놓아두어야 한다. 모세와 같이 자기주장을 하기에 앞서 부디 입을 다무시라. 귀를 여시라. 주의 말씀에 청종하시라.
보면 서로는 자기 말만하려다 골이 깊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나뉨은 산과 산이 갈라지는 것과 같이 그 골이 깊다. 먼저 말하는 사람,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말이 말을 이어가는 사람에게는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저는 듣지 못한다. 자기 말만하다 돌아가기 일쑤다. 그러니 종종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 그러한 것을 알고,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78:38-39).
오늘 우리가 주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의 긍휼하심으로였다. 우리가 사명자로 산다는 일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5절,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분명 우리로 그 앞에 보내시고 세우시는 것은 주의 뜻으로다. 주의 명령이시다. 저들은 가시 같고 찔레 같이 찌른다.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6).” 저들의 반응은 순순히 응할 리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보면 사람 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더욱이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 자리는 고역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은연중에 이를 피하는지 모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볼멘소리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것은 고문 같다. 듣다 저의 말을 끊기도 어렵지만 이를 바른 소리로 일러 꾸짖고 나무랐다가는 졸지에 원수 아닌 원수가 된다. 그러니 마냥 맞장구를 쳐달란 소린데 이와 같은 일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그러니 피하고 가급적이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외면하는데,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6).” 오늘 말씀의 사명이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7).” 주가 주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대하 32:7-8).”
결국 충성된 자의 구할 것은 순종이다.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잠 20:6, 고전 4:2).”
나는 주 앞에 늘 소심하다. 못한다고 아뢴다. 내가 하면 또 안 하니만 못하다는 사실도 고한다. 그리고 주춤거리며 물러서려 한다. 하면 그럴 때마다 주는 응답하신다.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창 24:7).” 이는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 23:20).”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68:7).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사 45:2, 히 6:20).”
보면 항상 그러했다. 하긴 하면서도, 늘 자신감 없고 소극적어어서, 해야 한다니까 마지 못해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나를 내맡겼다. 그렇게 다소 무모할 정도로 목사고시에 응시했고 두 번 떨어졌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안 하겠다고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끝내 밀고 나가셨다. 제일 늦게 시작하여 같이 신대원을 공부한 동기들보다 열다섯 이상 차이가 나면서도 가장 먼저 목사안수를 받았다. 누가 말하길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됐다는 말이 실감났다. 어줍고 민망하고 송구지만, 나는 나의 비전도 없고, 어떤 목회를 하겠다는 각오도 없이 끌려갔다. 마치 길을 가다 얼결에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른 아리마데 요셉과 같다. 돌아보면 생의 굴절마다 하나님이 앞서셨고, 나는 뒤따랐다. 그야말로 늘 떠먹여 주는 밥상을 받는 것 같다. 잘하는 짓인지 어쩐지.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나의 날들은 나로 주의 긍휼하심 앞에 고개를 숙이게 한다.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고,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하여,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겔 2:8-10).” 감히 묵상할 때에 이 모든 상황이 나의 모든 날 가운데서 기어이 오늘 이처럼 주 앞에 세우신 것 같아서….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59:9).
내가 믿고 내가 행하는 줄 알았는데,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10).
하여,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6).
이를 인정하기까지,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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