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전봉석 2023. 7. 18. 05:0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32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

시편 74:16-17

 

 

 

각각의 책임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속담을 물리신다.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2-3).” 이는 서로의 유대감과 연계성이 과도하게 부여된 것을 바로 잡는다.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 31:29-30).”

 

‘신 포도’는 죄로 더는 조상의 죄를 이어서 지지 않는다. 우린 더 이상 원죄 곧 아담의 죄로 인한 죄인이 아니다. 이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곧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우리가 예수를 영접함으로 더는 죄와 사망의 벌에 매이지 않는다.

 

이를 오늘 본문에서 연관 지어 되새김은 무리가 있지만 하나님은 엄연히 죄와 죄의 분리를 선언하셨고 각 영혼의 독립성을 확장하셨다. 결국 심판의 개별성으로 아비와 아들의 사례를 설명한다(5-18). 이에 각각 그 행위에 따라 심판하심을 강조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20).

 

이어 악인과 의인이 각각의 변화로 그 결과를 얻는다(21-22). 결국 회개하고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21-23). 최종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성은 개인의 행위에 따른 것으로(25-29),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24).”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23).” 하나님의 바라심은 하나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28).” 주의 최종 심판은 그에 따른 정당성이 부여된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니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30).” 구약의 선민은 그에 따른 죄를 지고 살았고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은혜로 산다. 하여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우리 죄로 죽지 않는다. 다만 그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 죽는다. 구약에서도 이는 적용되었고, 오늘 말씀은 이를 명령하신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31).” 그에 따른 회개가 없다는 것은 주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오늘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곧 선민 가운데도 죄에 그대로 노출되어 사는 ‘율법 아래’의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긍휼하심 앞에 ‘은혜 아래’ 사는 자도 있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9-10).

 

이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를 다시 오늘 주의 음성으로 들으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우리의 죄성, 원죄, 죄의 뿌리, 근본은 멸망을 자처하나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구원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7).” 이를 우린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저들 구약의 선민들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이를 야고보는 하나로 놓고 정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곧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감정이나 의사결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탄도 믿고 떨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 이에 세상 끝날에 믿음을 보시겠나? 예수께서 이르시되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하여 야고보는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약 2:20).”

 

이에 구약과 신약의 구원은 하나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구약의 선민은 말씀을 따름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그럴 수 있는 게 “믿음으로”였다. 히브리서 11장의 선언과 같이 모든 구원 받는 자들은 믿음으로 순종에 이르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러므로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34:21-22).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하여, 나는 나의 죄를 돌아볼 때 받은 바 은혜가 그것과 비례함을 안다. 내 죄가 무겁고 감히 고개를 들어 아뢸 수도 없어 내가 받은 은혜 앞에서도 그러하다. 나는 몰랐는데 후에 누가 목사 안수식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나만 유독 고개를 처박고 있어 안수하시는 원로목사님이 거의 허리를 90도로 꺾고 손을 얹고 있었다. 나의 그 모습과 램브란트의 유화 <돌아온 탕자>가 겹치는 것은 저 또한 아버지 품에 안겨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고, 아버지는 저를 안고 그의 등에 손을 얹고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우리가 값없이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죄 때문이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만 잠시 그 자유를 누렸을까? 모든 것을 받고 또 받는 누림의 세계에서 저들은 결국 말씀을 어김으로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이는 그대로 답습되어 우린 늘 유혹에 약하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그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는 과연 가능했을까?

 

교리적으로 맞는 말인가 모르겠으나 주의 압도적인 사랑이 아니면 나에게는 자유의지조차 죄다. 이를 포기하는 것, 주께 돌려드리며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살길 바라는 자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나는 이제 이 말씀에서 가장 자유롭다.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찬송이 나온다. 주께 아뢰고 용서하심을 받을 것을 안다. 그렇다고 죄를 따르겠나? 오히려 더 민감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쳐서 복종케 하려 한다. 나의 날들은 주의 긍휼하심이 아니면 더는 가치가 없다.

 

한 가정에 ‘아픈 아이’가 있다. 저로 인하여 저들 집사내외는 주께만 엎드린다. 의학적으로 아이의 생명은 길어야 30년이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 나이, 아이는 목에 관을 꽂고 호흡하고 옆구리로 영양을 공급받는다. 이 일로 부친은 모든 꿈을 접고 종일 아이를 돌본다. 감기에라도 걸리면 응급실로 해서 중환자실로 간다. 나는 저들 이야기만 들으면 무너진다.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면서도 저 아이에게서 예수를 본다. 저로 인하여 그 부모는 물론 온 교회가 주의 이름을 부른다. 서로의 처가와 시댁 어른들조차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지만 교회는 이로 하나가 된다. 누구라도 아이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라도 아이를 보고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제도 지난 주간 응급실로 실려가 한바탕 난리도 아니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나는 자꾸 목소리가 갈라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거리며 소식을 들었고, 내내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언제가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나의 특별함 가운데 하나를 자신의 부르심과 연관 지었다. 나의 부친도 서른을 넘겨 결국은 두 손 들고 주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마치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징계처럼 아버지는 번번이 그때마다 다른 궁리를 하며 회피했다. 결국 열 번째, 모든 장자를 치심과 같이 나는 나의 부친에게 더는 외면할 수 없는 항복의 순간이었다. 주의 부르심은 같다. 저를 목사로 교사로 집사로 성도로 부르시는 데 있어 각 직분은 차치하고 이내 두 손 들게 하신다. 그러니까 나는 어제 잠시 아이의 소식을 들으며 그런 일이 또 있었다는 소식에 그 부모를 생각하다, 교회를 생각하다, 더욱이 날 때부터 아이를 받아 세례를 주고 믿음의 아이로 받은 목사의 심정을 생각하였다. 아이는 누구보다 목사님을 좋아해서 저의 품에 안기면 좋아서 난리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8-19).”

 

청맹과니로 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인간에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74:10).

 

곧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이 이상하고 희한하고 놀랍고 기이한 주의 사랑으로 우린 오늘도 하루를 더 산다. 살면서 주를 찬송하게 된다.

 

‘아픈 아이’의 소식을 들은 후 내내 그 부모를 두고 혹은 어린 게 겪을 고통을 생각하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면서…. 우리로 구원의 삶을 견지하게 하는 것은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살만하면 다른 짓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가 가장 보통의 마음은 늪과 같아서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누구보다 주를 세 번씩이나 부정하였던 베드로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4:7).” 이는 자신의 경험으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5:8).” 누구라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악어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으며

바위를 쪼개사 큰 물을 내시며

길이 흐르는 강들을 말리우셨나이다

(74:13-15).

 

마치 내 삶에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행사하셨다. 가끔은 나의 헛되고 어리석음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무능한 자로 감사하다. 주신 바 한 날의 수고로 족한 줄 알고 산다는 일.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

(16-17).

 

오늘의 모든 조화가 주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그리하여.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9:8, 119:137).

 

이를 알고 인정할 때, 오늘의 처한 모든 상황이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들고 뛰면서, 고통 가운데 육신의 질병으로 주를 바랄 때, 하던 일이 어그러져 더는 소망이 끊긴 것 같을 때,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학대 받은 자로

부끄러이 돌아가게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로

주의 이름을 찬송케 하소서

(74:18, 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