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에스겔 25:3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시편 81:1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의 심판을 동시에 밝힌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에서 보편성과 구속의 특수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것. ‘이방 나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모두 멸하여야 했을 족속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 7:1-4)” 하는 경고가 앞서 있었다.
이는 마치 애굽을 나올 때에 따라 나온 잡족들로 인하여 저들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되어 결국 ‘광야 40년’의 빌미가 되었던 것과 같다. 저들의 역할은 하나님의 일에 사사건건 불평과 불만을 일으킨다. 우리 안의 ‘잡족’ 곧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며 모두 청산하여야 할 성향과 기질이 남아서 사는 날 동안 우리 신앙을 위협하고 조롱하는 것과 같겠다.
오늘 말씀은 먼저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1-7). 암몬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랫동안 적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먼저 암몬의 죄에 대한 내용을 밝히고(1-3),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밝힌다(4-7절). 이스라엘은 암몬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저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 연민을 끊지 못하고 데려나온 조카 롯의 후예다. 저는 훗날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 받은 뒤 두 딸과 동침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창 19:36-38).”
저들은 이스라엘을 학대하였다.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 10:10).” 그때에 사사 입다가 암몬과 싸웠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11:32-33).”
다윗 시대에도 다윗은 암몬과 싸웠다(삼하 10:1-14). “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사람 천 명과 돕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한지라(6).” 또한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을 때에 하나님이 암몬을 동원하여 공격하게도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왕하 24:2).” 그때마다 암몬과 이스라엘은 서로를 공격하고 괴롭혔다(대하 20:1-23).
오늘 본문은 이를 밝힌다. 암몬이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고통을 보고 좋아했다. 비록 이스라엘의 역사가 불순종의 역사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 역사임을 알려준다. 곧 하나님의 백성을 대하여 적대시할 때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저들은 믿는 자의 고통당함을 보고 ‘아하 좋다’ 한다. 뭐라 비판하고 은근히 경멸한다. 엄연히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조롱하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안 믿는 자보다 믿는 자에 대하여 ‘꼴 좋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이를 두고 같은 믿는 사람들까지도 덕을 세우지 못한다느니, 뭔가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벌을 받았다느니 하는 따위로 판단할 때가 있다.
동생이 15년 필리핀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당면한 어처구니 없는 박해를 두고 누군가는 ‘뭔가 잘못했으니까!’ 하며 단정하듯 비판한다. 누가 어떤 주의 일을 하다 오히려 크게 사기를 당하거나 그 일이 틀어졌을 때, 뭐라 말을 얹으며 ‘그러길래…’ 하는 식으로 말하기 좋아한다. 안 믿는 자는 물론 같은 믿는 자로서도 그렇게들 ‘아하, 좋다’ 하는 격이다. 누군 대놓고 내게 ‘그러길래, 잘하지 좀!’ 하는 식으로 어떤 어려움을 두고 평가하기도 했다. 목사가 된다는 것도 못마땅했는데 하는 일까지 별 볼 일 없는 것 같으니까, 우린 무의식으로 ‘아하 좋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의식 중에 가장 죄다운 생각은 ‘믿으면, 만사형통’을 꾀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어떤 모습을 두고 신앙이나 그 믿음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의 숱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실패자다. 아브라함하면 말이 좋아 믿음의 조상이지, 고작 그의 아들 이삭 하나가 고작이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선조라 할 수 있으나 결국은 그의 아들 요셉에 의해 궁극적으로는 애굽의 노예가 되어 420년을 살아야 했다. 다윗은 아들 모두 골칫거리였고 결국 압살롬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가장 큰 지혜와 은총을 입었으나 그의 결국은 분열 왕국의 원흉이 되었다. 이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려 저들은 북이스라엘은 B. 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서로를 적대시하며 전쟁이 끊임없었다.
그러고 보면 가장 실패한 자는 예수시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며 구원과 심판을 외치다 고작 3년 반만에 십자가에 달려 죽는 ‘어느 젊은 몽사가의 일장춘몽’과 같은 생을 살았다. 이후 저의 제자들은 하나 같이 불운의 죽음으로 순교당했다. 표면적인 사실로 놓고 볼 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친들의 생은 모두가 실패자들이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36-37)” 이를 두고 뭐라 평가할지 뻔하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38).” 어떻게 그런 평가를 하시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39-40).”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데도 우린 불현듯 은연중에 믿는 자가 어떤 일을 당하면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어떤 죄 때문이겠거니’ 하면서 함부로 속단한다. 이는 오늘 이어지는 말씀으로 우리 삶을 비춰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전영역에 걸쳐 심각하게 나타나게 된다(4-7). 이때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연속적임을 알 수 있다(8-11). 먼저 그 원인은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모압과 세일이 이르기를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다름이 없다 하도다(8).” 가령 믿는 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 안 믿는 자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더 비극적이다 하고 판단한다. 이에 따른 심판으로 “암몬 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이 다시는 이방 가운데에서 기억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10-11).” 하나님은 이를 반드시 알게 하신다.
또한 에돔에 대하여도(12-14), 그 원인은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하였도다(12).” 에돔은 또 누군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예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36;1)” 이스라엘과는 형제간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저들 땅을 지나려할 때,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민 20:18).” 저들은 두고두고 척을 진다.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사 34:5).” 이외에도 에돔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족속이었다(욜 3:19, 암 1:10-11, 옵 1:11, 말 1:3-5). 에돔에 대한 심판은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궁극적 심판을 예표이다.
다음은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서술하고 있는데(15-17), 저들은 이방국가라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블레셋은 다른 나라와 달리 사사 시대 이후로부터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를 맺었다. 뿐만 아니라 블레셋은 과거에 유다를 자주 침략하여 괴롭혀 왔다. 골리앗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점령하였고, 그로 인해 다윗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이스라엘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침략했으며 우상을 섬기며 살았다(삿 10:6-7, 삼상 4:1-11). 이런 블레셋에 대한 심판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사탄적인 역사가 블레셋의 역사로 설명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 반하나님적인 태도를 예표한다. 교회라면 치를 떨고 무조건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오늘에도 ‘블레셋’으로 우리 곁에 있다. 결국 블레셋은 바벨론이 세계를 정복하던 시기에 완전히 패망했다(16-17). ‘그렛 사람’은 블레셋 민족의 한 지파이다. 겨룩 바벨론에 의해 모든 성읍이 탈취당하고 추방되어 버렸다(렘 47:2-7).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도를 박해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뭐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하여, 예수께서 일러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결과적으로 이러한 심판의 목적은 분명히 밝힌다. 오늘 17절, “분노의 책벌로 내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즉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시니라.” 다시 말하지만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결국엔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가로막는 사탄의 세력은 항상 있어왔다. 그러므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우린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고 ‘오늘 주어진 일’에 충성해야 하는 이유다(마 25:14-30).
오늘 본문에서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우린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하신 말씀 앞에 나의 어떤 자랑도 헛됨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산 소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시 81:1).
오늘 우리에겐 이와 같이 말씀이 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2).
나의 일상이 조화로운 것을 발견한다. 때론 어렵고 힘들어서 좌절하고 실패할 때도 있지만, 우리 믿는 자의 삶으로 주가 이뤄 가시는 구원은 감히 상상을 초월한다. 곧 어떤 이의 실패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두고 함부로 판단하고 예단하여 속단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 안에 ‘아하, 좋다’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7).
이를 알고 체험하면서,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9-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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