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주하면서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에스겔 27:3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시편 83:1
앞서 26장에서 두로의 멸망 알리고, 오늘은 두로의 멸망을 두고 애가를 부른다. 에스겔은 여기서 두로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강한 군사력을 주목하고 저들의 몰락을 애도한다. 이는 연민이 아니라 멸망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을 멸시할 때는 멸망이 사실이 된다는 것을 알린다.
두로의 영광과 그들이 누렸던 힘을 격찬하고(1-11), 국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실을 설명하고(12-25절), 자신들의 영광에 도취되었다 멸망하는 두로의 모습을 보여준다(26-36절). 문장은 시와 산문이 섞였다. 아름다운 배를 비유로 하여 두로의 영화를 묘사하는 시적 부분이 있고(3b-9절), 많은 무역 상대를 열거하는 산문도 있다(10-25a절). 두로를 가라앉은 배로 비유하면서 애곡하는 부분은 매우 시적이다(25b-36절).
두로의 외적 풍요는 결국 하나님을 멀리하고 저의 백성을 멸시하게 하였다. 심판의 필연적 근거다. 경제적 번영과 수려한 자연 경관에 도취되어 교만은 처참한 지경에까지 다다랐다(34-36절).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는 두로의 몰락에 근간이다. 그럼에도 두로의 파멸을 주위 국가들은 애도하고 당혹스러워한다(35). 이 땅에서의 번영과 형통함은 결코 부러워할 부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시 37:16, 35-36).
이처럼 긴 지면을 사용하여 두로를 향한 애가를 지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두로를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으라(1-2).” 두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배의 건조 과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며 두로의 아름다움을 의도적으로 표출한다.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하는 부분에서 저들은 자신들의 영광에 도취되었음을 알려준다.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삶, 그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 하나님을 바라고 믿는 자녀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올 때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되는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두로의 자기만족은 하나님이 주신 영광과 번영을 역리로 취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물질적 풍요에 함몰되어 열국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겔 27:36절). 이를 성경은 여러 번 주의하게 하신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3, 6).”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9-11).”
오늘 지면은 두로의 번영과 그들의 결국을 애도하면서 우리로 오늘 우리가 추구하고 사는 것에 대해 점검하도록 한다. 고대 근동 무역의 중심지로 두로는 천혜의 요새였다.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주하면서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겔 27:3).” 곧 하나님이 부여하신 건강과 부요함이 오히려 우리로 주를 멀리하게 하는 경우는 흔하다. 교회를 볼 때 실제 교회를 지탱하는 기도의 원천은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유지된다. 저들은 마치 배의 균형을 맞추는 평형수와 같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낮추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하여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21:4).” 무엇이 죄인지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고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누리고 추구하는 모든 것에는 경고등이 켜진다.
다소 장황하게 두로와 교역 대상국이었던 곳과 그 상품들을 열거하고 있는데(26-36절), 두로는 서쪽으로는 다시스, 헬라 등과 동쪽으로는 에돔, 다메섹,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등 활발한 무역을 펼쳤다. 또한 품목에 있어서도 각 지역의 모든 특산물을 포함한다. 이를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구상하고 그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안 믿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데 따른 위험성’을 알린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오늘 날 이와 같은 말씀을 적용하면 모두가 뒷걸음친다. 어떻게 먹고 사냐는 문제로 접근하여 교회 안에서도 은연중에 ‘새신자전도’를 위한 것이라 하여 거부감이 덜하도록 찬양도 콘서트 같이 율동도 여느 댄서들 무대 같이 화려하다. 볼거리가 있는 교회, 각종 편의시절을 갖춘 교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활발한 교회 들이 요즘은 사람들을 끌어간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뭐라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취지가 선하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거면 사탄도 광명한 천사 같고, 그의 마귀들도 선을 구가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 11:13).” 교회에 이러한 문화가 팽배한 가운데 우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14-15).”
어느 교회가 어딜 후원하며 생필품을 전달하였다. 이를 기념한다는 이유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뒤에 세우고 앞에서 목사는 거기 대표와 악수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인천의 모 특수학교이며 고아원이었던 곳을 토요일마다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이런 광경을 자주 경험하였는데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앞다투어왔고, 부활절이나 성탄절이면 교회마다 생색을 내듯 다녀갔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그때마다 뒤에서 시무룩해했고 수치심을 느꼈다. 한 번은 어느 교회 목사였는데 저는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선물꾸러미를 주었고, 아이들은 얼결에 내가 그러는 모습에 낄낄거리고 웃었다. 이를 또 사람들은 ‘좋은 그림’으로 여겨 사진을 몇 장 더 찍겠다고 설쳤고 아이들은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처럼 둘러서서 하하 웃었다. 그때 나는 이상하고 기분이 이상한,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4-25).” 이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
어쩌면 어느 교회 역력에 혹은 그들 액자걸이 어디에 내가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활짝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선물을 받고 있는 장면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들에 대해 나는 나서서 반대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을 꽉 채울 동안 아이들을 보러 주말마다 갔으니까, 어느 정도 그곳 사정을 좀 안다. 행정적인 부분에서 저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보이는 풍경이 돼야 한다. 그들이 다녀가면 얼마의 돈과 함께 쌀이며 생필품이 보급된다.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아이들을 건사할 수 없다. 친하게 지내던 보모선생은 씁쓸하게 그리 설명하였다.
웃기는 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던 큰 교회가 건축을 마치고 한두 번 요란하게 다녀가고는 이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너무 지척이라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러면서 때마다 관광버스를 줄지어 세우고 청년부니 장년부니 하며, 무슨 봉사나 나눔을 알리는 전단을 차에 붙이고 여수나 광주 저 먼 곳으로 '봉사관광'을 갔다. 유행처럼 교회마다 해외로 '선교여행'을 간다. 오늘 두로의 멸망에 대한 애가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풍요로 인한 죄의 문제’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돈은 우리 성도의 경건한 생활과 양립할 수 없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또한 우리가 세상에서 얻는 영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는 마치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나는 이 말씀이 참 무섭다.
두로는 익숙했던 바다가 파멸의 장소가 되었다(겔 27:26-27). 두로의 풍요로움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원인이 되었다(36). 두로의 유능한 사공과 선장, 기술자와 용병 들이 심판을 끌어들인 셈이다(26-28). 하나님은 홀로 세계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신다. “내가 너를 패망하게 하여 다시 있지 못하게 하리니 사람이 비록 너를 찾으나 다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6:21).” 이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7:11, 18:47).
하나님은 세속적 성공과 자만을 보응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없는 영광을 허망한 것으로 만드신다. 성도가 자기 욕심을 따를 때 저를 징계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산다는 것,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장황한 설명과 구체적인 묘사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시는 말씀을 되새기게 한다(고전 10:31).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83:1).
오늘 시편으로 나를 비추어 본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또는 내 안의 어떤 만족을 추구하려고 하는 모든 일에 있어, 설마!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계속 퍼주고 구제하는 일보다, 일석이조로 봉사도 가고 놀이도 하고, 관광도 하고 선교도 체험하고, 이 무슨 패키지상품처럼 교회마다 난리다. 이를 기념하고 전도용 화보(?)로 사용하거나 어떤 실적으로 삼으려는 데서 나는 오늘 본문의 ‘두로의 애가’를 생각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
삼림을 사르는 불과 산에 붙는 불길 같이
주의 광풍으로 그들을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두렵게 하소서
(13-15).
그리하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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