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암 3:7-8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시 129:2-4
주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에게 보이시고 행하신다. 오늘 날은 더욱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다. ‘사자’와 ‘두려움’에 대한 의미는 4절서부터 이어지는 비유를 들어 앞서 언질을 주셨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하는 이 마땅함에서부터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하는 이와 같은 논리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한다(5). 곧 6절,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그때의 ‘비밀’에 대하여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할 때의 그 상대가 하나님과 나, 주의 일과 나의 행함으로 연관지으면 투명해진다. 미리 알리시는 계획이라니! 하나님과 이런 관계로 산다는 것은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렘 23:18, 22).” 하심이 어떤 의미인지도 가까이 다가온다.
하나님은 늘 먼저, 알리셨다. 노아에게 홍수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창 6:13-21).” 그럴 때 우리가 취할 자세는 ‘명령대로 다 준행’함이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또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먼저 알리셨다. 그때에 성경은 이렇게 운을 떼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마땅히 그러실 리 없다는 듯이 말이다(18:17). 이어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18:20-21).”
그런 가운데 처해 있던 롯에게도 먼저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19:12-13).” 하시는 이 놀라운, 비밀한 계획을, 앞서 알게 하실 뿐 아니라 대비하여 서둘게도 하신다.
오늘 본문도 이를 알게 하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이를 마치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면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며 우리의 준행은 거역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8). ‘사자’ 곧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고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하여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리라(렘 25:30).” 하고 그 의미를 더하였다.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호 11:10-11).”
예배 후 아이와 남아 모처럼 근황을 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직접 와서 대면하여 예배드려야겠다고 하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선포하라고 일렀다. 누구나 자신을 다루기가 제일 어렵다. 말씀으로 선포하지 않으면 자기 안의 여러 근심과 염려가 되레 아우성이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뜻을 정하여’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데 하나는 이른 아침에 나를 먼저 주의 말씀 앞에 앉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본문이라도 ‘새로이’ 말씀을 대하여 설교원고를 작성하는 일이다. 세부적으로는 열 장 내외로 그 길이도 정하였다. 이는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예외를 주고 허용을 더하면 안 된다. 내가 아는 나는 교묘하다. 즉시로 합리화하고 회피한다. 스스로 정당화하고 ‘그럴 수 있는, 그래도 되는’ 것으로 그 범위를 넓힌다.
아이와 같이 한 시간도 10년을 훌쩍 넘겨 15년이 다 돼 간다. 서로가 곁에서 보고 안다. 나는 권할 뿐 강요할 수 없다. 강요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며칠 전에 다녀간 아이도 그만큼의 시간을 같이 했다. 나는 권하지만 아이는 듣지 않는다. 그 애도 안다. 대학을 갈 때도, 대학을 그만둘 때도, 무슨 일을 선택할 때도… 오죽하니 너는 청개구리다, 하고 말하였다. 늘 지나고 난 뒤 후회가 또 실망이 따른다. 아직 서른 전이니까 공부해라, 글 써라, 주일 지켜라… 하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우리의 준행은 말씀하시는 이에 대한 경외함에서 생겨난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먹이를 움켜 가져가 버려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사 5:29).” 다급하게 또는 임박하여 서둘러도 저가 롯과 같이 끌려가기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행여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9:14).” 이렇듯 따르지 않을 때는 별 수 없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 10:14).”
억지로는 강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별 수 없는 일이다.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렘 2:5).” 누구라도 말씀을 깨닫는다면 이를 거역할 수는 없다. 나는 아이에 대해 회의적인 마음이 들어 기도할 때면 부디 주가 붙드시기를 빈다.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저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20).”
같은 말을 해도, 말은 듣는 이의 것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3-34).” 듣게 하신 이가 또한 준행하게 하셔야 한다.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곧 듣는 이가 말씀하시는 이와 가까이 할 때,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오늘도 이처럼 말씀이 나의 하루에 앞서게 할 때, ‘손을 깨끗이’ 할 수 있고, ‘두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을 성결하게’ 할 수 있다. 그리할 수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암 3:1).” 이는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하심인데, ‘이 말씀을 들으라’하심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에 한해 ‘쳐서 이르시는 말씀’이다. 이는 철저한 하나님의 편애다. 오늘 2절,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할 때, “너희만을 알았나니”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다. 누구와의 대화에서 ‘다들 그래요’ 할 때, 나의 관심은 ‘다들’에 있지 않다. 다들 어떻든지, ‘너’ 곧 ‘너와 나’의 이야기로 집약하여 생각하고 판단한다. 즉 하나님의 관심은 ‘나’다.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1-2).
그럴 수 있는 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는 앞서 모든 것이 생겨나기 전에, 창세전에 예정되고 택정하신 사람으로의 ‘너와 나’이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은 앞서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에스라 9:14).” 이를 우리가 알듯 하나님도 아신다. “너희만을 알았나니” 이 특별한 선택적 사실 앞에서,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이와 같은 특별한 소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7-18).”
이 놀라운, 참으로 특별한 소유와 관계에서…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129:2-3).
삶이 그처럼 고단하고 힘에 겨울지라도,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돌아보면 나도 그때 어떻게 그 지경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그때 왜 그와 같은 사람을 내 곁에 보내심으로 나를 돕게 하셨는지, 오히려 거짓말 같은 사실 앞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이 놀라운,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짓말 같은 사실 앞에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이에,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4-6).
예전에는 그처럼 나를 괴롭게 하던 사실이 이제는 대수롭지가 않다. 여전한데도 전혀 그때의 나처럼 쩔쩔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으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 놀라운,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나에게도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더는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7-8).
더는 가소로운,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에 대하여 선포해야 한다. 말씀으로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아이에게 한 말이었고 나에게도 다시 다짐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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