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암 4:12-1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시 130:3-4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는 아모스의 두 번째 경고다. 3장에 이어 오늘도 저들 지도층에 대한 말씀을 전달한다. 오늘 본문에서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는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된다.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6-11).”
가령 누가 어떤 일로 기도를 부탁한다. 나는 저에게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다니라고 권하지만 저의 어떤 사정이 저로 그럴 수 없게 하는 것인지, 저는 늘 같은 자리다. 여러 고충과 어려움을 통해 주께서 부르시는 일인데도 저는 늘 기도만 부탁한다. 어제는 그런 저의 문제에 대해 나는 무엇을 바라는 기도보다 그것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답하였다. 알아들은 것일까? 그럴 때도 저의 답은 늘 고맙다는 것뿐이다. 우리 삶의 어떤 고충은 C. S. 루이스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확성기’와 같다. 큰 소리로 또는 다급하게 부르시는 ‘주의 음성’이다. 그러나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오늘 이 말씀이 우리 몸에 밴 죄의 습성을 뜯어낸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하실 때, 바산은 요단 강 동편 헬몬 산과 길르앗 산지 사이에 위치한 기름진 땅이다. 목축을 하기에 유익한 초장이다. 아름답고 살진 소와 양이 생산되는 곳이다.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신 32:14).”
여기서 ‘바산의 암소’는 비유다. 방종을 일삼는 부유층의 유한(有閑) 부인들을 가리킨다. 또는 이스라엘을 여성성으로 하여 일컫는다. 특별히 암소라 함은 이스라엘이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우상을 염두에 두었다. 저들의 풍족함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한다. 앞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암 2:6-7).”
곧 있는 것으로 없는 이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사는 생활에 대하여, 사치와 방종,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는 데 대한 경고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4:1).” 이에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2).” 거룩함은 ‘세속적이거나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함으로 맹세하셨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확실한 보증이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시 89:35).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함에도 제약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시다. 죄를 용납하거나 심판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사 62:8-9).” 또한 하나님의 맹세는 그의 이름으로 하셨다. “그러므로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 사람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맹세하였은즉 애굽 온 땅에 사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을 부르며 주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자가 없으리라(렘 44:26).” 그리하여 우리의 탐욕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하는 일이다.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10:2-3, 119:36).
탐욕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사슬이다.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정말 그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가족끼리 더하다. 그것으로 이득을 취하는 것 같으나 그것으로 또한 그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저들만 모른다. 자기 자신만 알 수 없는 희한한 죄가 탐욕이다. 스스로는 늘 정당하다고 여길 테니, 곁에서 누가 말해주면 적대감으로 대한다.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암 4:2).” 희한하지만 끌려가면서도 저들은 물고 있는 탐욕을 놓을 수가 없다. ‘갈고리’, ‘낚시’ 이 모두는 ‘가시’와 같이 박혀서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이 물린다.
주의 백성이 처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왕하 19:28).” 결국은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대하 33:11).” 그런 결국이 오기 전까지도 저들은 자신의 탐욕으로 자신이 어떤 지경인지 모른다. 결국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3).” ‘하르몬’은 장차 이스라엘이 잡혀갈 곳이다. 70인역에서는 이것을 ‘로마의 산’이라 번역했다.
어디든지,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내가 누구의 기도부탁을 받을 때면 늘 저의 엇비슷한 상황을 두고 나는 안타까워서 예배가 살아나기를,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교제가 이루어지를, 말씀과 기도로 의지하기를, 부탁하듯 권하여도 저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지… 그저 늘 어떤 문제를 나열하고 기도를 부탁한다. 저에겐 문제만이 문제다. 그러니 더 심각한 문제를 알 수 없다. 능력이 없다. 그저 ‘비나이다’ 하는 무속적인 신앙으로 기도를 부탁하는 것도 같다. 이에 바울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이를 전하고 권하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문제에만 빠진 것도 또 다른 탐욕으로 인함이다. ‘지나친 것’은 모두 해당한다. 그래서 지혜자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전 7:16-17).” 지나치다함은 자신이 어찌하려 물고 있고 손에 쥔 것을 놓지 않는 것이다. ‘갈고리와 낚시’ 같이 물리고 꾄 것으로 끌려가느라,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 하는 것도, ‘지나치게 악인이 되’는 것도 결국은 스스로도 어쩌지를 못하고 끌려감이다. 그러므로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우리가 나을 수 있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뿐이다.
이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결국 진리를 떠난 맹목적인 열심은 모두 죄를 가중시켜 멸망을 초래할 뿐이다. 그저 자기 스스로 기뻐하여,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4:4-5).” 나름 종교적이고 신앙을 가졌다고 하지만 자기열심에 빠진 경우, 이 또한 탐욕으로 ‘그리하여야 주가 복을 더하실까’ 하는 기복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다 덜컥, 무슨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증폭된다.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지?’ 하는 반감과 함께…….
부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오죽하니 오늘 본문에서 ‘그릇된 예배 의식’을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종교적으로 사는 우리의 모습을 빗대고 있다(암 4:4). 이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 1:11).” 자칫 우리의 탐욕은 우리로 ‘지나치게’ 한다. 그리곤 듣질 않는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곧 말씀을 듣지 않으면 기도도 가증하다. 기복적이란 이처럼 ‘갈고리와 낚시’ 같이 우리 영혼을 채간다. 저들은 스스로의 열심으로 그만하면 됐다고 여겨 권면도 듣지 않는다.
아,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2-13).”
이는 어찌 해결이 안 된다. 부디 우리는,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암 4:13).”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멈추어서길. 자신을 내려놓고 주 앞에 맡겨지길.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130:1-2).
어떤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서’ 홀로 괴로움에 떨고 있을 때 더는 원망과 불안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느 9:27).” 이와 같이 어떤 어려움이 또는 고통이 우리로 주께 향하게 하심을, 그리하면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91:15).
주 앞에 설 때 우린 우리의 죄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하여 주께 고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130:3-4).
그러므로 난 오늘도 주의 말씀을 바람으로,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5-6).
오직,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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