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 147편 /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전봉석 2023. 9. 30. 10:07

231001 주일

 

시 147편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 147: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시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 147: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 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시 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들어가는 말

 

우리의 회복자 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에 대한 찬미 시편이다. 147편의 시는 표현이 아름답고 섬세하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다. 또한 명확하여 세 단락으로 분명히 구분된다. 각 연은 ‘찬양하라’는 명령과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함께 서술되어 있다.

 

첫째 연(1-6)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둘째 연(7-11)은 창조에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의지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찬양한다. 셋째 연(12-20)은 하나님께서 선민을 보존하시고 말씀으로 통치하심을 찬양한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느 12:27-43).”

 

이러한 사실은 오늘 시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2)…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3)” 하는 시적표현으로 나타낸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조국이 재건되고, 안정과 부흥을 누리게 되었다.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느 10:28-29).” 이를 오늘 시편에서는,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12-14)” 하고 표현한다.

 

곧 이러한 사실이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편은 33편, 104편의 시와 연관이 있고, 이사야 40-55장의 시대적 배경으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세 번째 연(12-20)에서는 시온에 집중하고 있는데, 오늘 시편이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에서 애용된 이유다.

 

또한 두 번째 연과 세 번째 연에 표현되는 ‘눈과 비’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건기가 끝나고, 백성들이 바라는 우기에 ‘비’가 내리고 겨울철을 준비하는 9, 10경의 장막절 예배에서 이와 같은 찬송이 불려졌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자연적인 조건과 선택하심에 대한 신뢰를 담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을 주제로 우리의 예배는 드려진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1. 흩어진 자와 상심한 자를 모으시고 치유하시는 하나님(1-6)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2-3).”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선하시다.’는 명제는 우리 믿는 자의 기본적이다. ‘우리 하나님을 노래하라. 그는 사랑이 많은 분이시다.’ 하는 마음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1).” 하나님이 “세우시며” 또한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우리를 오늘 여기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그뿐인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즉 살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으로 마음이 찢어지고 상하였을 우리를 고치셨다. 이는 모든 믿는 자의 한 목소리다.

 

우린 안다. 우리의 영과 육을 온전히 치유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가령, 어느 가정은 아픈 아이로 상심한다. 누군 기대했던 일이 무너져 실의에 빠졌다. 그때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사 19:22).” 삶에 있어 간증은 서로 닮아서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57:18).” 우리는 알기 때문에 아멘,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렘 30:17).”

 

1)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4).” 즉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별의 수효’를 다 셀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수하시고, 지정하셨다. 몇 개인지, 어디에 두셨는지를 다 아신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그저 막연하게 많다가 아니라 다 아시고, 하나하나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오늘 시편은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4b).” 예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심도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 곧 오늘의 나의 모든 것을 주가 돌보신다.

 

2)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5).” 능력에 있어 별의 수효까지 다 아시고 그 하나하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즉 ‘이해하지 못하심이 없다.’ 즉 우리가 어떤 변명을 일삼지 않아도 아신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6).” ‘겸손한 자들’은 ‘고통당하는 자들’로 하나님이 붙드신다. 그러나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우리를 ‘겸손한 자’로 삼으시기까지, 또한 부정한 자들을 ‘악인으로’ 놓기까지 이 모든 일을 집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린 믿는다. 그러므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그 하나님이 우리를 싸매시고 고치신다.

 

2. 모든 일을 손수 행하시는 하나님(7-11).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10-11).”

 

우리가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는 것은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8-9).” 즉 덮으시며, 예비하시며, 자라게 하시며, 우는 까마귀 새끼도 돌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6, 33).”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르셨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에게 주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이 오늘 시편의 찬송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 이와 같이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 앞에서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을 통해,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시 135:6).” 아멘.

 

3. 경외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12-20).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20).”

 

시인은 세 번째 연에서 새로운 차원의 찬양을 시작한다. ‘시온’은 ‘예루살렘’과 평행이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12).” 하고 또한 이르기를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13).” 한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신다’는 것은 완전한 안전을 암시한다. 앞서 ‘시온’은 중의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오늘 성도들을 지칭한다.

 

이 땅에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완전하지 못하며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사 60:17).” 하나님은 ‘시온’을 위하여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국경 안에 다시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부를 것이라(18).”

 

저 천국에서는 또한 오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잃지 않으실 것이다. 한 번 ‘주의 자녀, 시온’은 파멸이 없을 것이고, 저 천국 하나님은 나라는 선민으로 세우심을 받았던 이스라엘과 같은 황폐가 없을 것이다.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와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람, 사람이 못 바꾼다. 오늘 시인은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14-15).”

 

그리하여 곧 이 땅의 모든 것들은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16-17).” 그야말로 설상가상일 때, 우리로는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18).”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오게 하시고,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이는 주께서 오늘도 “그 말씀을 보내사, 바람을 불게 하신즉” 이는 물이 흐른다. 곧 우리의 영원한 ‘호흡’이 흐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