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시 38:22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 천국이 우선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다. 오늘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일곱 가지 말씀을 하신다. 먼저는 밭을 비유로 씨 뿌리는 자의 예를 드신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4-8).”
농부는 하나님의 섭리와 닮은 직업이다. 심고, 가꾸고, 거두는 원리로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와 사역을 닮았다. 농부는 성실하다. 때를 따라 어김없이 일한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일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4:35).”
우리는 영적으로 이 땅의 결실을 바라고 일하지 않는다. 이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가령 누구 또는 어떤 일이 내 앞에 놓일 때 나는 이를 천국에서 거둘 생각으로 수고한다. 저를 위해 기도하고 같이 느끼고 마음에 두어 씨름하는 것도 그 영혼을 위해서이다. 누가 나더러 과잉 감정이입으로 힘들다고 하는데, 실제 우리가 그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한다는 일은 같이 느끼고 같이 애통해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농부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농부는 가장 땅을 닮았고 하나님은 그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딤후 2:6).”
땅은 뿌려진 씨를 받아 농작물을 낸다. 그런데 길가밭이 있고, 돌밭이 있고, 가시떨기밭이 있고, 옥토가 있다. 길은 아무나 딛고 지나가 단단하여졌다. 돌이 묻힌 땅에는 씨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가시떨기가 그 위에 엉기어 있는 곳은 새순이 자라지 못한다. 옥토는 굳은 땅을 뒤집고 개간하여 돌을 고르고 가시떨기를 거둬내어 흙이 부드럽다. 이를 우리 마음으로 하여 주님은 말씀하시길, 세상 염려와 근심으로 돌이 박히고 가시떨기가 무성한 것 같이 씨 곧 말씀을 받아내지 못한다. 심지어 그 마음에 아무나 드나들어, 이는 마치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길가와 같이 그 마음은 아무거나 드나들어 자기 아집과 완고함으로 굳어졌다. 이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하고 경계를 더한다. 자기감정에 겨워 신앙의 근거를 두는 ‘돌밭’이나 ‘가시떨기밭’도 다를 게 없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15).” 이에 시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5).
하고 자신에게 선포한다. C. S. 루이스의 지적처럼 자신에게 말씀으로 선포하지 않으면 자신은 끊임없이 칭얼거리듯 염려와 근심을 토로한다. 사람으로 사는 동안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천하의 다윗도 성적충동으로 한 순간에 무너졌고,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하고 실토하였다. 결국 우리는 주어진 상황으로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 13:9).” 하심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의도와 같아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한되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하고 말씀하시며,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1-12).”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말씀의 씨앗을 받아낼 것인지, 길가밭과 같이 헛되이 잃거나 돌밭 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거나 가시떨기 같이 염려와 근심으로 자라지를 못할 것인지….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6).” 하시는 말씀 앞에서 마음은 조바심치며 간절하여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버려진 맹지와 같아서 쓸모없다. 나는 이번에 집을 이사하고 그 근처로 예배처소도 옮길까 하여 수십 곳을 둘러본 것 같다. 글방으로만 생각하면 나름 여러 곳이 적합하기도 하였으나 예배처소로 같이 찾으려니까 결국은 포기했다. 그러니 가만 있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주께서 어떤 마음을 강하게 더하셨고, 우리 형편에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곳으로 예비하셨다. 이번에 참 많은 것을 느꼈다. 교회도 많고 이단도 많았다. 돈이 없으니 제한이 따랐지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는 유익도 있었다. 하나님의 일은 농부의 일과 같아서 때를 따라 행하신다. 농부는 그 때를 기다릴 줄 알고 때가 이르렀을 때 부지런해야 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17).”
하시는 말씀이 우리에게 보이시는, 함께 일하시는 예수를 보게 한다. 또한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24-25).” 주인은 농부에게 가라지를 그냥 두게 하셨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29).” 결국 그것은 같이 자라서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29).” 이 또한 다 때가 있음이다.
또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31-32).” 고로 우리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내 안의 믿음은 한 번 그 뿌리를 내리면 크게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하여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33).” 점점 내 안에 커져가는 천국을 소유한다. 가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내세울 것 없고 오히려 궁색할 따름이나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교회는 예배처소로 족하다. 또한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한 영혼을 만나고 그 한 영혼으로 같이 씨름하고 애통해할 때 하늘의 위로가 있다. 천국이 우리의 것이다. 이를 알면서 더는 나의 모든 게 ‘배설물’과 같고 이 땅에서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을 해로 여길 뿐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나의 오늘이 그러하기를. 지금 내 안에 두시는 마음이 이와 같기를. 하여 나의 건강도 물질도 이 땅에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의 기준도 천국을 바라는 것이었으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전부를 잃는다 해도 그 하나로 족한 것,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45-46).”
그뿐인가? 예수님은 몰아붙이듯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47-48).” 오늘 내게 ‘좋은 것’과 ‘못된 것’ 곧 천국을 향해 가는 동안 저 천국에서 바라고 귀한 것으로 행여 이를 소홀히 여겨 눈길을 사로잡는 세상 근심과 염려, 시기와 악의 들을 가차 없이 내버리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어느 훗날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49-50).”
예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나 실은 이보다 더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사실은 없다. 주가 물으신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51).” 그러면서도 나의 마음은 수시로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일쑤여서, 그럴 때면 모세의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 앞에 나를 불러 세워 ‘네 발에 신을 벗으라’ 하시기도 하고,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2, 5).”
또는 엘리야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실의에 빠진 것 같이,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 19:4).” 할 때에,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5).” 하심을 경험한다.
때론 좀 의연하고 의젓하여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천성을 향해 가고 싶은데 그게 나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렘 17:5-6).” 그저 나는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속히 주의 도우심을 바란다.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38:22).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의 형편과 사정에서 주님만 바라게 하시려고 더러는 침묵하시듯 나 혼자 발을 동동거리게 하시는가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 17).” 이를 알기까지, 농작물은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과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견디면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농부의 발길을 듣고 자란다. 어렵고 힘에 겨울수록 주의 발걸음은 선명하였고, 그의 손길은 적절하셨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나는 다음 이야기를 모른다. 물꼬를 따라 흐르듯 나는 다만 말씀 앞에 나를 앉힐 뿐이다. 그리하여 다음은 어찌될지, 나의 남은 날 동안 어떤 사역으로 감당하게 하실는지 알 수 없으나 농부의 발길과 손길에 따라 수확의 때가 이르는 것처럼 주가 이루실 것을 ‘죽기까지’ 확신한다. 이에,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38:6, 8).
그래서 더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이지만,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5).
나로 주를 바라게 하는 어려움을 통하여,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4-5).” 우리가 천국을 향해 가는 동안 신앙의 반전이 없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할 텐데,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그럼 나는 무엇을 얼마나 심고 있는지?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16, 21-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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