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34, 42, 44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 49:20
말씀에 밑줄을 긋고 그 의미를 되새기듯 자주 멈추어 생각한다. 문득 드는 생각이 이 시간을 사랑한다. 누가 교회 주일학교 아이를 두고 그 마음이 어려웠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기에는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부분과 아이와 그 가정을 염려하는 마음이 동시에 흔들고 있었다. 나는 저에게 ‘너니까, 주께서 맡기신 영혼이려니…’ 하고 권면하였다. 오늘 이 시간, 또한 나의 연약한 육신을 주께서 ‘나니까’ 그리 맡기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주 앞에 엎드리게 하시려고, 하여 주님은 나와 내밀한 관계를 사랑하신다.
어제 같으면 못 나올 줄 알았다. 오전에 갑자기 옆구리에 담이 결려 딛지도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병원에 들러 엑스레이를 찍고 주사를 맞고 간신히 집으로 가서 종일 앓았다. 이젠 뭘 하나 해도 몸이 그 여파를 견디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누구에게 권면하고, 이처럼 또 이른 새벽에 교회로 나와 말씀 앞에 앉게 하심이 귀하다. 주 없는 나의 삶은 이미 파멸이겠다. 그렇듯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마치 모든 것을 다 사용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1).” 이를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자주 언급하시는데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6-17).” 하여 오늘 시편은,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시 49:16-17).
그런 걸 그리도 악착같이 모으고 더 가지려 아등바등하며 사는 데서 우리의 비극은 끝이 없는가!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신앙으로 영적감각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였다. 우린 시대를 보고 사람을 대하며 느껴야 한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렘 4:19).” 그러할 때 주를 바라고 의뢰하는 정도가 다르다. 가령 누가 주일학교 아이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심지어 그 부모가 어찌 아이 교육을 시키는가, 하고 투정을 부릴 때 나는 주의 사랑으로 저를 대할 수 있기를. 물론 이게 그렇듯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까 주께 또 엎드리고 의지하는 것일 텐데.
요즘은 뭐라 이르면 듣기 싫어하는 티가 난다. 가까운 사이라도 뭐라 이르기가 어렵고, 그것으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뿐이다. 같은 일에 누구는 미혹을 당하고, 누구는 징조를 살핀다. 오늘 4-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그야말로 넘쳐나는 게 교회고 조금 된다 싶은 교회는 수 백 억을 들여 건물을 올리고 화려하다. 교회 안에 무슨 문화공간과 각종 편의시설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막내가 이번에 새로 부임하는 교회는 그렇게 건물을 올리고 수 십 억의 빚을 지고 그것으로 힘에 부쳐 교역자의 사례를 인색하게 처리한다. 모르겠다, 돈이 있고 사람이 많으면 나도 그럴 테지? 늘 이맘때면 동기 목회자들도 그렇고 사역지를 옮기는데 그야말로 박봉이다.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면서 대체 언제부터 교회가 그렇게 부동산에 무리하여 투자하는 게 부흥이라 여기는지 듣다보면 마음만 어렵다. 오늘 시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5-8).
그러니 점점 건물은 웅장하고 그런 곳을 사람들은 선호한다 하여 교회 안에 문화공간(?) 하나쯤은 마련하는 모양인데,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9-10).
우리는 무엇을 한 영혼을 주 앞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1:13-14).” 곧 오늘 주님도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 어쩌면 유행처럼 혹은 교회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는 일과 같이 돈이 돈을, 사람이 사람을 모아들이는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어려운데, 동생의 이런저런 소식과 어느 교회로 부임하게 된 사정을 들으면서 나는 이 모든 세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 동안에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도, 내게 두시는 한 영혼으로 씨름하는 일도 힘에 겨워 쩔쩔매는 사람이라… 나는 누구에게도 뭐라 할 말이 없으나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점점 더함으로 때가 가까운 것을 알겠다.
거기엔 많은 거짓 목회가 판친다. 그만큼 진리와 비진리가 혼용되어 분별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도 이르길, 그 아이로 힘들어하는 것이 부디 그 한 영혼을 사랑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기를 바랐다. 이미 우린 우리 스스로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7-8).” 그렇다면 오늘 이 재난의 시작과 끝을 구분해야 할 텐데 덩달아서 교회 역시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려운 살림의 부교역자 사례비는 절감하면서 얼마나 기가 막힌 문화공간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는 것인지? 거기에 또 사상검증도 아니고 진영논리를 따져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는 왜 따져 묻는 것일까?
나는 가끔 내가 이상한가? 하는 엉뚱한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2).” 사람 사는 거, 그들이 모여 추구하는 것이란 게 자칫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누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게 점점 힘들다고 푸념할 때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말해주었다. 교회만 아니면, 목사만 아니면, 굳이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두고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그러니 교회를 위하고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일에 있어 복을 운운하며 승승장구하는 꼴이란 오히려 그 신앙의 적신호라 할 수 있겠다. 누구 엄마가 요즘 계속 안 좋다고, 몸도 마음도 어려워서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데… 저로서는 아픈 아이만 아니면 훌훌 털고 보람 있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아이로 인해 본인이 살고 그 영혼이 그나마 어떤 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하는 것인지. 정작 두려운 일은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9).”
오늘 우리가 신앙이 있어 겪는 어려움을 두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17-18).” 엉뚱한 것으로 그 마음을 빼앗길 때가 아니다. 자칫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34).” 설마, 하고 있을 때 홀연히 주가 임하심 같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40-41).” 정작 나는 어느 쪽인가? 하는 문제로 심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를 위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 44).”
이를 우린 얼마나 여실히 느끼며 살고 있는지.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자주 느끼지만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은 가족도 교회도 사랑하는 아무개와도 상관없이 오롯이 나와 하나님과의 일이다. 하여 어제는 어제의 고통으로 족하였고, 오늘은 이처럼 다시 새벽 일찍 주 앞에 나아와 말씀 앞에 앉은 것으로 복이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그렇다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하고 오늘 말씀이 물으신다.
이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46-47).”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형통함을 바라서가 아니라는 사실,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49:9).
오늘 시편은 직설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1).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 하나,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가 영원할 리 없고, 이 땅에서 소유하는 무엇으로도 그 영혼을 살 수는 없는 것이어서…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2).
이를 인정할 때, 주신 한 날의 수고로 감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5).
그래서도 상대적인 것인데,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세상은 점점 복잡하여서 거짓과 참이 뒤섞여 자기 좋을 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 같지만,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3-15).” 하여 나는 그 무엇보다 이 시간을 사랑하는 것이고, 말씀으로 나를 붙들어 내게 맡기신 연약한 육체로부터 상한 영혼을 한 사람을 두고 고되게 씨름한다. 누구와 견줄 것도 안 되지만 나에게 이는 온 천하를 맡기심이다. 하여,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20).
나는 말씀 앞에서 등골이 오싹해진다. 과연 나는 깨닫고 있나? 그렇다면,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26:4-5, 10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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