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전봉석 2023. 12. 26. 05:50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눅 8:10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시 77:1

 

 

사역에 따른 합력하는 손길이 귀하다. 교회를 교회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주가 함께 하시는 이, 그들의 헌신과 마음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오늘 예수님의 발길에 함께 하는 이들이 있었다. “열두 제자”와 “막달라인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1-3).” 그럴 때마다 항상 사회적으로 비천하고 외면당하던 이들이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 14:3).” 보면 진정한 헌신은 항상 ‘내 코가 석 자’일 때 이루어진다.

 

다들 어려울 때 어려운 가운데서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롬 16:1-2).”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이를 숨기시고 또한 드러내시는 이는 각각 다르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10).” 하시는 오늘 말씀이 두렵고도 감사하다. 이로써 말씀 앞에 앉히시고 주를 사모하게 하시는 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7).” 하심에서 놀랍다.

 

우리가 살면서 주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48).” 그동안 여러 모양의 어려움으로 붙들려 있던 것으로부터 놓여나 ‘평안히 가라’ 하실 때의 저 본향을 향하여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50).”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되었다.

 

이 귀한 믿음을 우린 어쩌면 너무 흔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씀은 늘 항상 있고 은혜는 값없이 주어져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이나 그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게 아니었다. 가령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경우 그 수치와 고통을 누가 알아주었을까? 남모르게 흘린 눈물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저는 절실하였고 그렇듯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인파 속에서 손을 대었다.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열매를 맺는 일은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으시면서 생겨난 어떤 믿음으로 불가항력적인 이끄심이 있다. 그러할 때에,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적당하다, 괜찮다, 하고 여길 때는 소망이 없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의 어떤 고통이 우리로 주를 바라게 할 때가 복이었다. 우리 곁에 상한 심령으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으지 모른다. 아내가 두 아이를 받아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먼저 왔다. 몇 군데 돌다 외면당하고 아이엄마는 마음에 상처를 많았다. 그만큼 드세졌고 하나뿐인 딸애의 앞날을 생각하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두 곳에 다니며 지능향상을 위한 무슨 프로그램을 참여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곧 지능장애 판정을 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중심의 변화,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마음으로가 아니면 감당이 안 된다. 우린 늘 안이하여 늘 편한 것을 구하나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곧 우리 영혼이 새롭게 되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주의 사역에 동참할 수 없다. 예수를 따른다는 일은 그에 따른 자신의 것으로 합력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이에 우리로 풍성한 열매를 얻게 하려 하심인데, 그러기에는 우리 안이 돌밭이고, 우리 위는 가시떨기밭이다. 마음에 담고 사는 저마다의 염려와 근심에서부터 여러 앙금이 원망으로 또는 노여움으로 남아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우릴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말씀을 듣고 이해는 하여 이를 실천하다가도 마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또는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으니…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인정하기란 참으로 더 어렵다. 항상 우리 안에 상반되는 두 마음이 있어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그러니 어떤 문제, 그 너머에 계신 예수를 바랄 수가 없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14:30).” 이는 평소 사는 데 따른 즐거움을 바라고 이에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자 하는 오늘의 세태가 그러하기도 하여서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그러다 아이의 일로, 혹은 자신의 건강이나 어떤 문제로 제동이 걸릴 때에야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6:17-18).”

 

이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내는 아이엄마와 상당하였던 이야기를 식탁에서 하였고, 나는 뭐라 말하기보다 저들을 우리에게 맡기심은 그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우리가 천국의 비밀을 알 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 영광을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저 한 영혼을 보내신 것일 텐데….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5-27).”

 

이 놀라운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산다는 일에서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8-10).” 우리가 주를 따른다는 일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 8:3).” 결국은 어려운 게 자기의 것을 내어놓는 일이다. 그 마음에 한 영혼을 들이는 일이란, 그로 인하여 겪는 어떤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열매는 인내로 수확한다. 오늘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눅 8:8).” 저절로 좋은 땅은 없다. 농부는 놀지 않는다. 늘 밭에 나가 땅을 고르고 흙을 드러내어 묻힌 돌을 파낸다. 흙 위에 거듭해서 나는 잡초를 뽑고 엉겅퀴를 걷어낸다. 나는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며 천막 짓는 일을 병행하여 교회의 부담을 덜었듯이 글방을 알리는 데 있어 스스로 그 마음마다에 있는 어떤 응어리, 이를 들추어 직면하고 소재로 삼아 글쓰기를 하는 것이라고 알리었다. 행여 누가 알까 하여 늦된 아이를 쉬쉬하고 자신이 어찌 하려다 결국 오늘에 이른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거나 드세어 금세라도 달겨들 기세였다.

 

좋은 땅은 쉼 없는 손길로 경작되어진 땅이다. 하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 4:7-9).” 왜 바울이 이처럼 독려하였는지, 곧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왜 성경은 일관되게 우리의 인내를 요구하는 것인지….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그리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하심은 우리로 알게 하셨으니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주의 권능으로 이끄실 것을 안다. 곧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3).”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오늘도 이처럼 말씀 앞에 앉히며 나를 붙들어둔다.

 

크리스마스니 연말연시니 하는 터라, 부산스러운 때에 나의 일상은 늘 같은 패턴으로 이어져서 감사하다. 그렇듯 무던하고 부지런한 농부의 발자국으로 좋은 땅이 일구어지고, 말씀이 뿌려져 그에 따른 농작물을 거둘 수 있을 것이어서….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119:72-73).

 

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어쩌면 우린 이 하나 싸움이다.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하는 일, 그리하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우리가 오늘을 산다는 일은 단순한 일상도 어떤 이벤트의 한 날도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같은 마음으로 주를 섬긴다는 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하여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산다는 일,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77:1).

 

내가, 내 음성으로!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1).

 

그러할 때에,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12).

 

묵상으로 하루를 열고 주어진 날을 사는 일,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13).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16-17, 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