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 100:4
왈가왈부 말이 많을 수 있다. 바로 알고자 하나 이를 알지 못할 때 자신이 아는 것으로 떠들기 마련이어서 입이 늘 고생이다. 그러나 말 속에 길이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예수를 두고 서로 말한다. 그 가운데 감정이나 성품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하며 답답해한다(3). 이어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4).” 저들의 이런 것을 두고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5).”
곧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우리의 이해와 상식이 우리를 주관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37-39).” 하는 부분에 대하여 나는 요즘 실감한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친구는 전화를 한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있으면서 그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성경을 열고 이를 듣고자 한다. 저의 영혼은 목마른 것이다.
이러할 때 우리는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야 한다. 논쟁은 삼가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린 어느 시대보다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성경이 완성된 시대이고, 논쟁의 시대를 지나 교리가 완성된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하다. 이를 받거나 물리거나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듣지 않거든 그 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고 떠날 뿐이다. 우리가 사람을 돌이켜 변화시킬 수 없다. 고로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 20:3).”
어떤 일로 나는 마음이 어렵다. 저들이 그 일을 두고 교회의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 알지 못하여 그러는 것이라 여겨 오히려 긍휼히 주께 구한다. 그런 거 보면 있는 자는 있는 것으로 눌려 죽을 지경이다. 우리의 자유함은 없는 데서 있고 가난한 데서 부요함이다. 그러므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세상에 살면서 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보면 세상은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편리해지고 간편하여서 모든 게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일러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누구의 어떤 점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그의 관심과 노력이 아쉽다. 늘 어디 부동산을 운운하고 어떻게든지 돈을 불려 더 나은 세상에 편승하고 싶은 것이야 인지상정이겠으나…
친구는 문득 말하길 ‘책 읽기 훈련이 안 돼 있다는 게 이렇게 답답하군.’ 하면서 성경 읽기에 따른 이해와 상식을 탓하였다. 나는 저의 그러한 마음을 사랑한다. 그리고 저의 탄식을 지지한다. 하여 제자훈련에 따른 성경읽기 외에 열 권을 책을 읽어야 한다며 그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런 소리하면 누구에게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을 알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모두가 글쓰기와 책 읽기를 습관화했으면 한다. 할 수만 있으면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에서도 가르치는 자로 그 배움을 마다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전적으로 내 개인의 의견으로 자신을 위해 하는 말이다. 성경은 글로 되었고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력은 손에 익는 연마의 단련에서 온다. 이론이 아니라는 소리다. 흔히 우리가 음식을 말하면서 손맛을 운운하는 까닭은 정확한 재량도 필요하지만 그때마다의 느낌, 손이 아는 어떤 감각으로 맛이 난다. 이는 성경 읽기나 묵상은 의도하여 되는 게 아니고 어떤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신도 신앙의 한 단면이랄까? 믿음과 아주 상관이 없는 자는 굳이 불신도 할 줄 모른다. 회의와 갈등은 그에 따라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와 같이 불신함은 아직 알지 못하여서이다. 곧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친구의 탄식이나 어떤 조급함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그런 필요와 답답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이 명료한 사실을 누가 말로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겠나?
저들이 알지 못하여 어떤 것은 주의 것임을, 교회 것임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그러는 것이다. 나는 그리 아내에게 일렀고 아내의 어떤 볼멘소리에 자중하기를 바랐다. 때론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리하여 믿음이 약한 또는 아직 어린 형제를 돌보고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는 것을 두고,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스데반 집사는 기도하였다. 우리가 주를 믿는 일은 실전이다. 나중에 어느 때가 되면 써먹을 실력을 쌓는 게 아니다. 매순간 어떤 일에서 순간 일어나는 감정에서부터 어떤 여러 판단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우선하여 의식하며 산다는 일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갈 1:10-11).”
가까운 가족에게서부터 멀리 있는 아무개에게까지 우리의 판단은 수시로 우리에게 함정이 되기도 하고 기도할 수 있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어떤 서운함 혹은 실망함에 대하여는 ‘긍휼히 여기는 자’로 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고로 우리 영혼이 항상 주를 향해 갈급할 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 하여 나는 요즘 나의 친구들에게서 받는 은혜가 크다. 저들을 보며 주가 일하심을 알겠다.
어떤 이의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기고집에 대하여는 안타까울 뿐이지만. 온통 저의 관심은 세상에 있어서 가끔은 거실에 있는 칠판의 메모를 보고 어떤 말을 하다 갔는가를 알겠다. 누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저의 관심이 그러하구나 하는 데서 경계를 하기도 한다. 세상에 안 믿는 자를 두고는 뭐라 할 게 없다. 저가 믿지 않음으로 그러는 것이니 오히려 긍휼히 여길 뿐. 한데 믿는다고 하면서 주의 교회를 가벼이 여기는 이에 대하여는 안타까움이 먼저 인다. 모르면 몰라서 그러려니 하겠는데, 알면서도 안다고 하는 자가 그러한 것은 엄연한 죄 곧 성령을 거스르는, 훼방하는 죄가 된다. 차라리 믿는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 것을.
이를 보면서 서로는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이 또한 겪어야 할 일임은 알겠으나 오히려 이 일로 저들이 그래도 되는 것처럼 여겨 교회를 가벼이 여길까 하여, 입을 다물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 56:10-12).”
어떤 일에서 나는 나를 돌아보면서 되레 주의하고 근신한다. 변화 받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내가 주의하는 것은 저들이 나로 친구 이 이상의 주의 종으로 여겨 기도를 부탁하고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데 따른 나의 자세를 돌아본다. 흔히 아주 오랜만에 누구와 연락이 되어 근황을 묻다, 목사가 되었다는 소리에 불쑥, 그럴 줄 알았다! 하고 말하면 나는 의아해한다. 같이 함부로 굴며 살았던 시절이었을 텐데,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 나의 안부를 묻고 그리 말할 때면 뭐지? 하는 나의 구별됨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즉,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행여 나의 어리석음이 또는 어떤 행위가 이와 같지는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문제는 서로가 나누며 서로의 거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 12:1-2).”
곧 오늘 내게 맡기신 말씀의 권세는 사람의 학식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오늘 15절,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이는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그러하여서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행 4:13-14).” 그러므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3-5).” 어떤 두려움과 주의할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성경을 풀어 설명할 때에 속으로 계속 되뇌는 기도는 나의 입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내가 나의 지식으로 성경을 말하는 게 아니어서, 오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16).” 곧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을 가지고 설명할 때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7).” 하는 오늘 말씀이 뜨겁다. 부디 나로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18).”
고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시 119:13-14).
하여 나는 요즘 존 번연의 <영적전쟁>과 <천로역정 2부>를 읽는다. 성경 읽기는 묵상함으로 더하여 누구보다 성경에 붙들려 살았던 위대한 신앙의 선친들을 붙들기도 한다. 이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하여 허튼 소리로 행여 성경을 그릇되이 설명하거나 가르치거나 이를 준행한다고 하지는 않을까 하여 항상 깨어있기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1-2).” 바울의 이와 같은 심정을 알겠다.
오늘 주님이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24).” 하심도… 이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37-39).”
성령을 받아야 한다. 구하면 주실 것이다. 친구에게 그리 권하였고 나는 매순간을 그리 간구한다. 할 때 온갖 오물과 같은 죄악이 가득하였을 나의 배에서 생수의 갈이 흘러나올 것을 믿는다. 존 번연의 배에서 그러하고, 존 뉴턴이나 윌리엄 쿠퍼의 베에서도 그러하였듯이….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100: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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