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를 송축하라

전봉석 2024. 2. 23. 04:52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행 22:8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1

 

 

신앙의 배경은 이 땅의 여러 조건과 무관하다. 바울은 자신을 증언하는 데 있어 훗날 그 자랑할 만한 배경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다. 본인은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6).” 그러한 자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행 22:3).”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나의 자랑 그 자부하였던 모든 것이 주 앞에서는 부질없다는 것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그러니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사는 외에 달리 더 귀한 것은 없다. 결국 말씀 없는 신앙은 헛되고, 예수 없는 믿음은 허사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주께로 돌이키기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어떤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뜻하지 않은 경우를 당했을 때 내 안의 여러 마음이 마치 가라앉았던 부유물처럼 떠오른다. 서로 좋게 또한 주 안에서 저를 사랑하고자 하던 마음이 실망과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가려진다.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다는 일, 이는 참 내 의지로는 어려운 모양이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그 형편이 오죽하니 그럴까 싶어 한숨을 짓고 만다. 설마 했던 일은 역시나 그러하다. 그럴 리 없어, 하고 바라던 마음으로 더욱 속이 아리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0-21).”

 

저로 인해 마음이 어려운 것을 다잡는다. 그런 일로 마음을 빼앗길 게 아니다. 내일이면 상한 영혼의 모녀가 찾아올 것이고, 나는 저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마음을 기울여 주 앞에 내어놓는다. 가끔씩 느끼지만 ‘이런 일을 앞두고 저런 일로 마음을 흔드는 세력’이 있다. 뭐라 말은 못하겠고 속만 끓이다 주께 아뢴다. 저들에게 말을 해봐야 어떠했든지 자신들이 옳다할 것이어서 하나마나 한 소리다. 그러느니 마음을 접자, 하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6-7).”

 

말씀으로 선다는 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어떤 일, 그 되어지는 상황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게 무색할 때가 있다. 다만 교훈을 얻을 뿐, 또한 나를 돌아보아 주를 바라보는 데 있어 나의 날들이 나로 재촉하는 게 있다. 너무 그릇된 길을 멀리 돌아서 왔다. 저들은 알지 못하여 그리한다. 가장 내 안에 어려운 일은 가라앉았던 여러 감정이 부유물처럼 떠올라 여전하다는 것을 마주할 때이다. 누굴 뭐라 할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어려운 것이다.

 

예수가 아니면 나를 붙들 게 없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나는 전의 내가 아닌 것을 증명하듯 살아야 한다. 같이 대대거리며 싸울 수는 없다. 믿음으로 산다는 일은 엄연히 달라진 삶이어서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행 19:18-19).” 예전에 행하던 것들을 불사르듯 없이 한다.

 

이쯤 나이가 들면서 별의 별 사람을 다 겪었지만 늘 또 새롭다. 그러는 중에 내 안의 나 역시 달라진 게 없다는 데서 환멸이 또는 혐오감이 인다. 그럼에도 나를 정죄하지 않을 것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일련을 사건을 두고 혼자 마음 끓이다 접는다. 이는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 9:3).” 하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이것이 우리의 실체이다. 서로에게 있어 뭐 그리 대단한 존재가 될 줄 알고 마음을 빼앗기곤 하는지… 그저 사람을 겪으면 겪을수록 부질없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면서 아가서를 묵상하고 준비하다가 내가 저 보잘것없는 ‘술람미 여인’인 것을. 호세아가 사랑해야 했던 ‘고멜’이었다는 것을.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호 2:2).”

 

우리의 실상은 참으로 부끄러움뿐이니,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아 1:5-6).” 나를 나로 보지 않으시고 솔로몬의 휘장과 같이 귀히 삼으시고,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 하물며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30).”

 

나는 나의 일상에서 나로 돌아보게 하시고 오늘의 내가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1).” 다들 사느라 사는 데 급급하여 그러는 것을. 그러므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주말에 만나야 하는 이들을 두고 집중한다. 주의 뜻을 살펴 그 의미를 바로 알고자 주목한다. 사람이 어지러운 것은,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9-21).” 그러니 정작 자기만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한다. 남들이 뭐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자신은 그러는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그러니 상대할 자가 없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나로 어떠한 일을 겪을 때, 어떤 사람과의 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더욱 주를 바라게 하심은 그러해서이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하여 느끼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통회하고 저를 헤아림으로 내가 헤아림을 받는 일이었으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34:18).

 

이 놀라운 진리 앞에서 나는 더욱 주께로 아뢴다. 사람 붙들고 이야기한들, 저의 동의를 얻고 동조를 구한다 한들 모두가 부질없음을 날마다 겪으면서도 새롭다. 이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더는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것으로 사는 게 나의 남은 생의 일이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5-16).”

 

세상을 보고 나를 보다 주의 뜻을 더욱 구하고 바라게 하심은 환멸을 겪으면서였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 7:51).” 그러니 말씀으로가 아니면 감당이 안 되고, 주의 뜻으로 주의 영이 다스리지 않으시면 모든 게 허사인 것을. 매번 또 당하면서도 당한 뒤에야 안다. 그래서 주님은 그처럼 강조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오늘의 어떤 슬픔이 또는 그 마음의 어려움이 나로 더욱 주를 바라게 하는 길이었으니,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버리고 또 버려도 여전히 쌓여 내 안을 어지럽히는 미련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5-26).”

 

그러므로 오직 성령으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그러므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그러할 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하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새삼 오늘도 바울의 항변과 그의 열심에서 주의 사랑하심을 읽는다. 주를 박해하던 자에서 주를 사랑하고 증거하는 자로 세우시기까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행 22:7-8).” 이로써 저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14-15).”

 

우리 믿는 자의 삶은 밤에 더욱 빛난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134:1).

 

이처럼 주 앞에 세우시고,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2).

 

나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