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3 주일
아가서 2장
즐거운 초대
아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아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들아가는 말
성경은 약속이고 고백이다. 예수님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하시며 반문하시기도 했다(요 10:35-36). 이에 바울은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이 성경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이해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말씀의 기근이 온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오늘 우리가 아가서를 나누면서 이를 ‘나의 사랑이야기’로 듣지 못한다면 ‘말씀의 기갈’은 그 삶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것이고, ‘밀 까부르듯’ 사탄은 우리 심령을 쥐고 흔들어댈 것이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사랑의 노래>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아 1:13-15).” 하는 아름다운 고백을 들었다. 이에 우리는 주를 사랑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그러므로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6-7).” 하여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1-12).” 산다.
오늘 본문은 잔치로 초대하는 것이다. 글의 구성으로 첫 단락(1-7)은 ‘즐거운 잔치에 초대’된 것으로, 두 번째 단락(8-14)에서는 ‘함께 가자’ 하고, 세 번째(15-17)로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하는 내용으로 정리하였다.
1. 즐거운 초대(1-7)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1-2).”
우리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다. 사론은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초지역이다. 사론의 수선화는 들판에 핀 꽃이다. ‘골짜기’ 눈물과 고난의 세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의 신부로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눈물과 고난으로 피어나는 백합화와 같다.’ 이를 신랑은 아신다. 우리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시나무는 늘 우리를 괴롭게 하여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는 충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장미의 향기가 널리 퍼지는 것은 서로의 가시에 찔린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3).”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신 10:17),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다(딤전 6:15).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다(계 17:14). 우리는 ‘사과나무 같은 신랑의 그늘에 앉아서 기뻐한다.’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신 말씀으로 우리는 안정을 얻는다(요 14:27).
이때 사과는 달고 몸에 좋다. 그의 피로 구속하심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이는 사과처럼 달고 유익하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4).”
잔칫집은 풍성하고 기쁜 교제가 있다. 말씀이 풍성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다. 죄로 주린 우리 영혼에는 쓴 것도 달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 27:7).”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과 비례하여 은혜의 기쁨도 크다. 이에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달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10).” 성도는 교제가 있고,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서로 권면하며 모이기를 힘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잔치에 들어간 자들이다.
깃발은 사랑의 확증이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화목의 제물이며,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새 계명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5).”
하실 때, 사랑의 열병으로 ‘건포도’가 필요하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 6:18-19).” 이에 새 힘을 얻고, 사과로 시원함을 느낀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기도 응답’과 그에 따른 연합과 교제가 필요하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1).” 이에 말씀을 사모함으로 마음이 상할 정도이다.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119:20).” 하여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6).”
여기서 ‘손’은 주의 사랑과 보호를 가리킨다. 주께서는 교회를 사랑하고 보호하신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신 33:27).” 그때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에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7).”
‘노루와 들사슴’은 신랑을 묘사한다. 이는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는 하나님을 연상하게 한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신 5:11).” 곧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또한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마라” 하심은 주의 품에 편히 쉬고 잠들어 있는 사랑스러운 우리 성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되도록 조심하라는 당부이다.
2. 함께 가자(8-14).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8-9).”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것은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것 같다.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 하나님은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신다. 곧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 노루와 사슴은 민첩하다. 여러 장애물을 뛰어넘어 우리를 도우러 오신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0-13).”
반복하여 ‘함께 가자’ 하시며, 그 이유로를 설명한다. 비가 많고 추운 겨울은 환난으로 힘에 겹고, 죄책과 두려움으로 고달프다. 그러나 이제 봄이 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과 의롭다하심을 입었다. ‘비둘기의 소리’ 곧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감동을 더하신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고 우리를 일깨우신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14).”
비둘기는 순결하고 온유하며 연약하다. 우리 성도의 모습도 그러하다. 예수님은 우리로 세상에 보내시며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우리는 연약하여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살고 있는 비둘기 같다. 즉 말씀과 기도로 주의 품에 거한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하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다(살전 5:16-17).”
3. 작은 여우를 잡으라(15-17).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15).”
‘포도원’은 우리의 신앙이면서도 동시에 섬기는 교회이다. 이를 허는 ‘작은 여우’는 사탄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인격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려할 때, 우리의 약한 심령을 휘젓는 ‘작은 여우’ 같은 염려와 근심이 있다. 또한 교회를 파헤치고 다니는 ‘작은 여우’ 같은 이기적인 자들이 있다. 악한 목자를 일컬어 여우라 하셨다.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겔 13:4).”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16).”
이때 우린 하나님과의 일체감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다. 우리는 연합되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러므로 우린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이에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17).”
어둔 밤이 지나면 새 날이 온다. 성경에서 밤은 늘 죄와 슬픈 일로 연결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2:13).” 하여 우리 신랑 되신 주님은 베데르 산으로 노루와 어린 사슴같이 돌아오기를 소원한다. ‘베데르 산’은 ‘갈라진 산들’로 고난의 시간을 가리킨다. 이 산은 “몰약산, 유향의 산”으로 불렸고(4:6), “향기로운 산”으로도 알려진다(8:14). 곧 주님의 고난은 슬픔과 애통한 일이나 영광과 기쁨의 즐거운 소식이기도 하다.
나오는 말
주께서는 우리가 힘들 때 신속하게 달려오신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하시다. 세상에 얽매인 것들을 물리치시고 죄책과 두려움에서 우릴 벗어나게 하신다. 우리로 환난을 피해 주의 품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앞에 나오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신다. 이때 우리를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적은 누룩과 같이 삽시간에 우리를 물들일 수 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갈 5:9).”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주와 연합함으로 백합화와 같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의 향기를 발할 수 있다. 죄와 슬픔과 불행에서 놓여나 주를 찬송하며 향기로운 신앙의 인격과 선한 삶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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