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7 주일
아가서 3장
사랑의 서약
아 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아 3: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아 3:3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아 3: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들어가는 말
모든 문제는 사랑이다. 우리가 이루어가야 하는 성령의 열매에도 사랑이 앞선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에 사랑이 선두를 끌고, 절제가 뒤를 받친다. 완성된 사랑에는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가 담긴다. 이에 모든 열매에 절제가 따라 붙는다. 절제가 없는 사랑은 집착이 되고, 희락은 쾌락주의로 전락한다. 절제가 없는 화평은 타협주의로 변하고, 오래 참음은 무심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절제가 없는 자비는 무관심을, 절제가 없는 양선은 외식하는 자로, 절제가 없는 충성은 맹목적인 복종으로, 절제가 없는 온유는 우유부단함으로 나타난다. 절제 또한 절제가 없으면 금욕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실천으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서로를 받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7).”
본문이해
오늘 본문에서 우린 언제든지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깨닫고, 사랑도 자라가서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에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 사랑의 최고봉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를 위해 오늘도 우릴 조성하신다. 우리는 모두 경계인이다. ‘69와 89 사이에서’ 산다.
1. 잃어버린 사랑을 찾으라(1-5).
1) 나태를 벗어던지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1).” 여기서 ‘침상’은 ‘사랑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쉼과 평안의 공간’이다. 하지만 ‘나태와 게으름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 영혼이 상했을 때, 상한 심령으로는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호 7:14).” 곧 탐욕과 나태와 불의에 젖어,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암 6:4).” 영적 게으름에 빠지기도 한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2).” 우리는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우리의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이를 중요시하여 “회개하여” 주 앞에 아뢰며 “처음 행위를 가지라.” 주를 바라던 처음 마음을 찾아야 한다(계 2:5). 사랑은 쟁취다.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야 한다.
2) 사랑의 빛으로 비추어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3-4).” 사람들 사이를 헤매다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았다.’ 흔히 말하길 사랑은 쟁취라 하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하신 것처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5).” 이것이 오늘의 우리 실정이다. 곧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 그 결과는 끔찍하다.
이에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곧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지나쳐야 한다. 이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 그전까지 우린 미끄러지고 넘어질 뿐이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2-3).” 세상을 부러워하고 남들처럼 사는 것으로 족하다가 우리는 다시 주의 사랑을 잃을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3)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우리에게 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5).” 이는 평안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어떤 어려움이 또는 끔찍한 현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는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복음의 빛이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2. 사랑의 서약(6-11).
1) 기도로 단장하라.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6).”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를 숨길 수 없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곁의 사람들에게 주의 발자취를 보여주어야 한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2) 말씀과 성령으로 지어지는 사랑의 성(成)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7-8).” 주는 우리의 산성이시다.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시 31:3).” 우리가 시편을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144:2).”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잠 10:29).”
이는 주가 우릴 지키신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이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4-17).”
오늘은 영적전쟁의 전쟁터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12).” 이에 말씀으로 굳게 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때에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9-10).” 곧 우리가 천성을 향해 갈 때에 ‘레바논 나무로 만든 자기의 가마’에 우리를 태우셨다. 레바논 나무는 그 무엇보다 단단함을 의미한다. ‘그 기둥은 은이라.’ 할 때 은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22:22).” 오늘의 어려움이 우리를 단련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러므로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11).”
나오는 말
그러므로 바울은 간절하고 절실하게 고백하였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즉 ‘시온의 딸들아’ 하고 우릴 부르신다. 시온은 예루살렘 기드온 골짜기와 티로페온 골짜기 사이의 조그마한 구릉이다. 이는 원래 가나안의 여부스 족속이 거주하였던 천혜의 요새였다. 다윗이 이곳을 점령하여 다윗 성이라 칭하였다(삼하 5:6-10). 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전역을 대표한다. 곧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곳으로,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시 147:12).”
따라서 ‘시온의 딸들’은 우리 성도들이다. 우리는 주를 바란다. “솔로몬 왕을 보라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할 때에 왕관은 영광과 권세다. 곧 우리는 머잖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 되신 구주 옆에 앉을 신부와 같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이에 우리는 사랑을 서약, 곧 말씀을 날마다 덧입고 살면서 공의의 겉옷으로 사랑의 보석으로 단장하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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