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31 주일
아가서 5장
사랑의 갈등
들어가는 말
사랑에는 갈등이 포함 된다. 뜨거운 사랑과 함께 이어지는 갈등은 자연스럽다. 신혼 초 부부의 갈등의 시기와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성장통을 겪는 것과 같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에 열심일 때 영적침체도 온다. 여기서 묻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목적과 수단’ 중에 어느 쪽인지….
본문은 사랑의 갈등이다. 필연적일 수 있고 필수적이기도 하다. 갈등 후에 참 사랑을 경험한다. 혹은 절망적인 자신을 마주한다. 앞서 솔로몬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전 7:16-17).” 하면서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하고 답을 제시하였다.
우리의 정답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과 나의 사랑 이야기다. 우리의 갈등은 우리 안의 절망적인 죄를 직면하게 한다.
1. 사랑의 시간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아 5:1).”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데, 사랑에 빠진 채로는 살 수 없다. 사랑은 의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명제가 사랑의 증표다(엡 1:7).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 사랑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
오늘 본문 첫 구절에서 인칭대명사 ‘나’, ‘내’가 열 번이나 나온다.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하고 그와 같은 사랑의 잔치에 참여한 우리들을 구별한다.
2. 사랑의 갈등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소원해진다. 묵상은 더디고, 주일은 자주 빼먹고, 기도나 교제는 형식적일 때, 우리 신앙은 안이해져서, ‘잠들었지만 마음이 깨었다.’ 곧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즉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주 안에서의 평안이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아 5:3-5).”
날마다 몸을 씻듯 우리 영혼은 매순간 씻음을 받아야 한다. 이에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우리의 생활이 질서 있고 규모 있는 것이 증명이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아 5:6).”
주가 부르실 때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서로 부대끼고 어그러져도 떨어지면 안 된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3. 사랑의 안일과 나태의 결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 5:7-8).”
성도의 수난은 당연하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를 스스로가 노력하여 해결하려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막연할 뿐이다. 세례요한도 옥에 갇혀 회의하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하고 물었다. 사랑의 갈등은 안일과 나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4. 사랑의 특별함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아 5:9).”
우린 답을 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남들이 사랑하는 것보다 나은 게 무언인가?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이어지는 말씀에서 <사랑의 증표 열세 가지 특징>을 찾아보았다.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아 5:10).”
첫째, 지난날을 씻고 희어진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둘째, 혈색이 붉고 활기차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셋째, 주께 영광을 돌림으로 우리에게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아 5:11).”
넷째, 머리는 순금과 같이 권세가 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9-10).” 다섯째, ‘고불고불 까마귀 같이 검다.’ 곧 우리 안의 주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여서 생동감 있고 활기차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아 5:12).”
여섯째, 우리가 보는 눈은 맑고 순결하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6:22, 13:16).”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아 5:13).”
일곱째, 덕이 되어 남 앞에 푸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시 65:13).” 여덟째, 입술에서는 몰약과 같은 말들이 나온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아 5:14).”
아홉째,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의 규범이 된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열째, 몸가짐이 정결하고 행동거지가 반듯하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생김새는 레바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아 5:15).”
열한째, 가야 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3).” 열두째,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우리의 형상은 레반논의 백향목처럼 보기 좋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9-10).”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아 5:16).”
열세째, 우리를 친구로 대하신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나오는 말
주 안에서의 안식과 안일은 다르다.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주를 바람으로 쉼을 얻는 것이 안식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안일은 마치 결혼과 동시에 사랑의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즉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여 나태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이 은혜를 질그릇에 받았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과 어려움으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8).” 또한 고난과 역경에서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9).” 이와 같은 확신과 함께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0).”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깨어 있어야 하다고 하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막 14:38).”
오늘 본문은 우리를 ① 부르시고 회상하게 한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어여쁘고 완전한 자야.” 그리고 ② 신속히 문을 열라고 한다.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이 사랑의 갈등은 회복이 필요하다. 닫힌 문을 열어야 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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