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전봉석 2024. 7. 7. 02:31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 8:4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시 119:15-16, 28

 

 

하루라도 말씀과 기도에서 떠난다면 그 떠나게 한 것이 우리 영혼을 붙들게 된다. 더러는 근심과 걱정이 그렇듯 우리 영혼을 짓누른다. 눌림으로 녹을 것 같은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을 사모할 수 있는 것이 복이다.

 

일곱째 인을 떼자 하늘이 반 시간 동안 고요하였다가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은 사실을 알린다. 그런 가운데 한 천사가 성도의 기도를 향연과 함께 담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봉헌한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3).” 우리가 가장 두려울 때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이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1).” 여기서 반 시간은 짧은 기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고, 세상은 이에 더욱 악을 행한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 10:4).

 

하여 우린 삼가 더욱 두려워함으로 때를 준비하며 정신을 차린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3-6).” 세상이 악함으로 우리가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시 50:21).

 

이를 두려워할 줄 알 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마치 세상의 이모저모는 우리 훈계하고 가르치는 훈육 같다. 이에 우리는 더욱 말씀 앞으로 기도하며 나온다.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신 28:59).” 이를 경계함으로 아이의 장래와 그 삶을 두고 기도하며 양육한다. 재앙은 크고 오래고 중할 것이다. 누구도 이를 자체적으로 견딜 수는 없다. 하여 주의 음성을 들을 때,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이 모든 일의 주관자를 경외함으로 고개 숙이고 말씀 앞에 앉는다. 그리고 배운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두려워할 이를 두려워할 때 삶은 바른 길로 간다. 주의 일이란 주의 뜻을 바라고 그 뜻을 따르는 일이다. 우린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이다.

 

이에 우리의 기도가 향연과 함께 주께 상달된다. 이로써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우린 이미 그리 정하여진 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할 때 우리 기도가 헛될 것은 없다. 어느 것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24-25).” 그렇다면 주가 주시는 마음이 있어 내게 설명하고 말하였을 텐데, 전날에 막내 동생이 교회를 개척하는 데 있어 남은 한 해를 다 채우고 그러는 동안 기도로 말씀으로 주 앞에 확신을 얻고 해도 늦지 않다고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주의 일을 두고 이런저런 마음의 씨름은 선하다. 사탄도 이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주께 집중하는 시간은 주의 일을 두고 그 생각과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어떤 일도 사소한 것은 아니어서 주가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한 날을 가지고 씨름하는 것이다. 그럴 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거하실 때는 기도와 말씀으로여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그러므로 우리가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그럴 때 주가 응답하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사 49:8).” 이를 앎으로 우리는 기도할 때 주가 더하시는 확신으로 담대하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말씀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바야흐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더는 무모할 것 같은 시대이다. 기존에 있던 교회들의 성도들도 더 나은 여건과 시설의 큰 교회로 이동하는 게 다반사다. 그야말로 교회 포화상태의 시대를 살면서 새롭게 교회 하나를 더 차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알면서도 그리 행하는 것은 특별히 주가 바라시는 게 있다는 확신, 그 무엇의 이끄심이 나로 꼼짝 못하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견딤과 버팀의 각오가 없으면 이도저도 어렵다고 말하였다. 말해놓고는 행여 그 마음에 좌절을 주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어제는 종일 마음이 어렵기도 하였다. 동생에게도 말했듯 개척은 이제 한 영혼으로 씨름하는 시대다. 근현대의 우리 교회들 시대보다 더욱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의 시대이다.

 

이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욜 2:1-2).”

 

억지로라도 붙들려 있을 때와 달리 개척교회는 스스로 자신과의 외로운 시간이 너무 길다. ‘풍요속의 빈곤’이란 말처럼 오늘 날 교회의 기형적인 부흥이 오히려 우리 영혼의 빈곤을 알게 한다. 나팔이 울리자 ‘피 섞인 우박과 불’로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다.’ 또 나팔을 불자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고,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다.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졌다.’

 

다른 나팔이 불자,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졌다.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다.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렇게 다시 또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져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오늘 날 우리 영혼의 실상은 아닐까? 친구는 근처 어느 교회가 문을 닫자 성도들이 수십 명 유입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들로 인해 서로의 불화가 가중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어떤 일일지 대충 짐작은 갔다. 그때에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외치는 것 같다.

 

오늘 본문의 해석을 찾아 읽다 어떻게 직접적인 해석은 무리가 있어서 생략한다. 다만 오늘 날도 그와 같아서 어떻겠구나! 하는 정도는 짐작이 간다. 정작 교회는 다니면서 안 다니는 사람만 못한 경우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어느 교회는 유난히 설교 때마다 정치적인 선동과 세상 현황을 가지고 말씀을 대신하는 경우를 듣다보면 안타깝다. 누가 부교역자 면접을 보는데 대놓고 첫 물음이 야당대표 아무개를 어찌 생각하는가? 하고 묻더라고 하였다. 나는 듣고도 이해가 안 돼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린 서로 엇나간 것을 모른다. 아니 서로 외면하서나 묵인하거나 동조하거나….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그렇게 삼분의 일이 빛을 잃어가고 ‘쓴 쑥’이라 이름 하는 별이 떨어진다. 산이 바다에 던져지고 삼분의 일의 바다가 피가 된다. 이 끔찍한 현실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이를 위하여 치열하게 개척을 하는 것이라면 나는 지지한다.

 

지역사회의 무슨 활동을 운운하며 내가 속한 지역의 목회자들이 모임을 가진다. 우편으로 온 안내를 읽고는 책 사이에 끼워두고 나는 스스로 소외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 하나님과 나의 관계, 너와 나의 관계… 이와 같은 개별적인 씨름이 소위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 당시의 정세보다 더 열악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소위 ‘귀가 가려운 시대’다. 내 곁의 저마다의 사람들이 나름은 신앙을 가졌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해서 나는 이것을 우려하며 동생에게 단단히 마음먹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이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생전전략을 짜듯 우리가 어찌 하려 할 때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는다. 부교역자 면접에서 담임목사의 첫 물음이 야당대표 아무개를 어떻게 생각하냐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히 12:15).” 자칫 부화뇌동하는 또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될 우려가 높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사두개인들이 그렇듯 집단지성을 고집하였고,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정치에 몰두하여 스스로들 신성모독을 자행하였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10).”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 1: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가만히 말씀을 찾아보면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19:9).

 

이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

 

그리하여,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18, 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