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 13:9-10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시 119:175
사탄은 최후 수단으로 우리 믿는 자 개개인을 공격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계 12:17).” 곧 저 짐승이 적그리스도로 지배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다. 이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13:8).”
곧,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때면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하여 모든 문화가 잠식당한지 오래다. 대중문화는 은연중에 선정적이고 악마를 숭배한다. 욕설이 난무하고 감성을 흔들어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하나님의 질서와 그 창조하신 목적을 떠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삼라만상은 신이 된다. 곁들여 사물마다 영혼이 깃들어 사람들을 어지럽힌다. 뛰고 소리 지르며 열광하는 사이 자신들이 무얼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흥에 겨워한다. 현란한 조명과 술과 약에 취한 육신들이 뒤엉겨 짐승과 같이 본능을 따를 뿐이다.
적그리스도란 우리의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개인의 인격을 파괴한다. 마치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 같다. 가령 오늘의 이 정권이 그렇다. 코끼리가 악의적이고 나빠서가 아니라, 저는 그저 주체할 수 없는 권력으로 움직일 때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끼리는 다만 문이 열린 탓에 도자기 박물관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독일의 한 작품으로 ‘결국 코끼리가 그 곳에 들어가는 상황을 만든 사람들’의 잘못이다. 우리 심령의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어서 오만 사람이 드나들게 할 때 그 마음 밭은 어느새 길가 같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과 같다. 코끼리가 움직일 때마다 소중히 간직하던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난다.
우리 곁의 적그리스도의 출몰도 그와 같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미혹이란 <홀림과 끌림>으로 자신이 그러는 줄도 모르고 그러는 것이다. 정신이 헷갈려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4).” 정녕 우리는 이러한 문제 또한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수가 점점 더 아무렇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성경은 엄히 말씀하시길,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이와 같은 적그리스도가 우리를 지배하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면서 그 영역을 확장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 13:1-2).”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로 서로를 위로한다. 죄가 아니라 아픈 것이라 하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어깨를 다독인다. 서로의 거짓 위로에 감동하여 죄를 짓는 일에 더욱 용감해진다.
믿음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도 교회 안에 버젓이 세상 문화를 포용한다. 거기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하면서 서로는 용인하고 묵인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바로 가져야 한다. 아니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러니 답답한 게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5).” 하여,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곧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 2:11).”
애매하다 모하하고 방심하다 어느새 나도 그 앞에 절하고 있다.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있다. 그렇게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9-10).” 그러므로 우리가 깨어있어 마음을 단속하고 사람을 경계하며 이 땅의 문화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4-6).”
곧 끝날 게 아니다. 가령 무슨 청문회를 볼 때도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데 있어 ‘살아있는 권력’이란 얼마나 무모할 정도로 힘이 센가를 알 것 같다. 고작 그 임기가 4, 5년짜리에 불과한 고위직이라 해도 그 시간이 하염없는 것은 이어지며 서로가 또 같이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거기에 한술 더 떠 거짓으로 거짓을 덮고 새로운 거짓을 진실인 듯 호도하는 가짜들이 난무한데, 저마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그러니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수밖에. 재림의 때 곧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은,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그럼에 오늘의 여러 상황들이 아우성치듯 우리를 흔들어 일으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그러할 때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3-4).”
어떤 어려움, 그 환난 가운데서 우린 소망을 본다. 그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이를 쓰는 바울은 주후 35년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주를 만난 뒤 22년이 지나는 동안 주후 57년에 비로소 이 놀라운 진리 앞에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이 놀라운 한 구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이를 외치기까지 사울이었던 바울이 자신의 ‘사울’을 개탄스러워하며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2-24).”
곧 오늘 우리가 애통해하는 심정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이 놀라운 은총으로 주 앞에 서서,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 7:51).” 스스로 괜찮다고 위로하는 자기연민이 우리 영혼을 마비시킨다. 이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1:4, 7-8).”
세상이 어지럽고 우리의 판단이 흐려질 때 우리가 알 것은 때가 가까움이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이에 오늘 말씀은 두렵고 떨리면서 동시에 주의 날을 더욱 기다리게 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하나님 없이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는 듯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그러니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가야 한다고,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38-39).” 어쩌겠나?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만을 구하며 주의 긍휼하심 앞에 바라는 것,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 119:151).
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 13:1-3).”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6-157).
이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5).
곧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67, 17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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