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전봉석 2024. 7. 14. 03:41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계 15:4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1:5-6

 

 

성도는 환난의 때에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다. 극심한 핍박과 미혹이 있었는데도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서 새 노래로 찬양을 드렸다. 이 구원의 노래는 홍해가 갈라지고 모세가 부른 노래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 15:1).”

 

우린 매순간 그 하루치의 홍해를 건넌다. 그럴 때면,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2).”

 

하고 우리 안의 깊은 데서 주께 향한 노래가 울려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3-5).”

 

날마다 엄습하는 홍해와 뒤 따르는 바로의 용사들을 무찌르신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6).”

 

오늘을 살면서 이와 같은 승리의 노래가 우리의 것이다.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0-11).” 때론 삶이 어려워 어디 도움이 없나? 하고 이곳저곳 산을 기웃거리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우리의 이와 같은 찬송이 어렵고 힘든 재난의 혹한 때에 더욱 청아하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0-13).” 끝까지 견디는 자로 우린 어디서나 회개와 전도로 그 사명을 다한다. 그러는 데 있어 지팡이도, 돈도, 옷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막 6:8).” 말씀으로 나아간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 9:3).”

 

이 무모하고 어려운 여행으로 비유되는 우리의 인생에서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7-8).”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고 간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다. 그때에 사람들은 오히려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각자 가려운 귀를 채우려 하나,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3-5).”

 

이에 우리가 주 앞에 나아가는 것은 보혈의 씻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9-10).”

 

몸이 어려우면 마음도 어렵도 마음이 어려우면 몸도 따라주지 않는 것이어서 당장의 어려움이 우리로 멀리보지 못하게 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2).” 우린 오히려 나중에 있을 영광의 상을 소망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5-6).”

 

이에 우리는 승리할 것이고 두 가지 위대한 승전가를 부를 것이다. 오늘 본문 2-3절,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여기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는 삶의 수모와 박해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만을 의뢰한 자들의 노래다.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삿 5:3).”

 

우린 누구나 어떤 어려움 앞에서 힘겨워하며 낙심할 때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의 이름으로 찬송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7:6).

 

우리의 이 역설적인 찬송의 비결은 두 가지다. 오늘 4절,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께 경배하리이다

 

다른 그 무엇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는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에,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하며,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96:4-5).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각자를 우상으로 섬기며 주를 멀리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우연 뒤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 여러 우연들이 불가결한 원리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때,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전 11:9-10).”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이 모든 게 우리 앞에 놓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어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남들 다 추구하고 부러워하는 생을 두고 우린 귀를 기울이거나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주를 바라는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이를 인정하는 데서 우린 견딜 수 있다. 더욱 더 주를 바랄 수 있다. 그리고 내 곁의 한 영혼을 두고, 저들 아직 주를 영접하지 못한 이를 두고 기도한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18:31-32).”

 

50명에서 10명으로 줄어 그 수가 너무 미약하다 해도, 한 영혼을 두고 주께 아뢸 때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이에,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19-20).”

 

주의 진노를 담은 대접에는 뚜껑이 없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계 15:7).” 언제든 이를 부으실 텐데,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다들 그저 설마, 하고 또 안일하여 남들처럼 살기를 바란다.

 

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우리 곁의 일련의 사태와 상황들이 그리 몰고 간다. 전에 비해 점점 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영방송에서들 점술가나 신접한 자들을 내세워 연애 프로를 만들거나 더러는 신중하게 저들 앞에 앉아 자신들을 내보이는 것을 버젓이 방송으로 내보낸다.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작년 한 해 사람의 아이 분유 값보다 반려동물이라 하는 아이의 사료 값이 더 지출되었다고 하니….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도 아이들을 손잡고 나온 사람들보다 반려견의 목줄을 잡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본다.

 

사람이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동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지각과 판단으로 인격적인 관계보다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역사에 더 끌려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에 우리가 주를 알고 그의 나라를 구하면서는 마치 이 땅에서 소외되기 일쑤이나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10).” 점점 더 모호하고 어려워지는 가치관의 혼란과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희미해질 때,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3).

 

그리하여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5-6).

 

하여 오직 주만 바라면서,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