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전봉석 2024. 7. 15. 03:51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계 16:5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일곱 개의 대접이 연이어 열리면서 재앙이 쏟아진다. 출애굽 때 애굽에서 펼쳐졌던 재앙과 흡사하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계 16:1).” 이어서 차례로 부어지는 재앙은 명령에 따른 것이다.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2).” ….

 

그런 가운데서도 신음하며 회개하지 않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9).” 스스로의 의지나 욕망에 붙들려 악착같이 집착하는 영적현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이에 성도와 천사들은 돌이켜 주께 영광을 올리며 찬양한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5, 7).”

 

우리는 이와 같은 심판을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비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아직 때가 이르기 전에 혹여 돌이켜 주를 바라며 회개할 기회는 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하여,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시 10:5-6).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주를 바라며 더욱 주께로 향하는데 누구는 그것으로 주를 더욱 멀리하고 외면한다. 지금은 같이 주를 바라며 성경공부도 하고 있지만 앞서 친구는 이런저런 육신의 질병으로 큰 수술을 몇 차례 받았다. 그때 나는 곁에서 저를 보면서 겁을 먹기도 하고 두려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는 그때 이를 원망하며 투덜거리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사 46:13).”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못하든지 하나님의 공의는 실현될 것이다. 이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더러는 그 때가 너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돌이키지 못한 자에게는 돌이킬 수 있는 시간과 돌이킨 자들로서는 더욱 주를 바라며 자신을 온전히 주께로 향할 수 있는 시간을 더해준다.

 

흔히 요즘 ‘영혼을 팔아서라도’ 하며 이 땅에서의 추구하는 바를 이루려하는데 이는 농담으로라도 두려운 거였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멘피스토 펠레스’라는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고 대부호가 되어 자신이 누리고자 하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이후 다시 그 영혼을 찾으려하나 찾을 수 없어 절규한다. 이를 지혜자는 일찍이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 8:35-36).”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젊은 날, 나의 어리석었던 시절에 나도 그러했다. 사랑을 찾아 혹은 글을 쓰는 데 있어 ‘영혼을 팔아서라도’ 얻고자 하는 영광이 있었다. 그땐 그게 뭔지도 모르고 우리 영혼의 영원한 시간을 깨닫지 못하던 때의 일이다. 그렇듯 오늘 날 우리 자연이 망가지고 같이 고통당하는 것도 인간이 팔아먹은 영혼의 값어치만큼 점점 더 극심해진다. 이상 기온으로 계절이 흔들리고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린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 아,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8).”

 

이에,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 24:5-6).”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신뢰할 때 마지막 날이 더해지는 동안 고통당하는 날 또한 길어진다. 그럼에도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이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복이 있다. 그러므로 우린 오늘 의에 주리고 목 마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그러므로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것을 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3-34).”

 

솔직히 오늘의 평안을 잃고 사는 것은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이 아니던가?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일 뿐인데 육신의 생각이 언제나 영혼을 앞서며 우리를 흔들고 있으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이 놀라운 진리를 바울은 주후 35년에 회심하고 22년이 지나 57년에 깨달으며 이와 같은 성령의 감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5-6).”

 

이 단순명료한 진리 앞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7-8).”

 

오늘 나는 육신을 입고 살면서 얼마나 수긍하고 돌이켜 주 앞에 애통해하며 도우심을 바라고 있는지… 보면 그게 안 보일 때가 있다. 자신들의 판단과 기준으로 그것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다. 그것이 육신의 생각인지 영의 생각인지, 우린 이 땅을 사는 동안 매순간 다시 돌이켜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앞서 믿음의 선친들도 그러하여 노아는 무던하였고 아브라함은 진득하여서, 저들의 그러한 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모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었다. 우린 이를 성경에서 보고 듣고 또한 오늘을 살면서 이 악한 세대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저들로서도 그 죄의 무게를 주체할 수 없는 것이겠다. 그야말로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 같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오늘 우리의 모습이지 않나? 내 곁의 흔한 일들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 2: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21).” 이 놀라우신 주의 긍휼하심 앞에서도…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 16:10-11).” 그러므로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5).”

 

주가 내게 덧입혀 주신 ‘아름다운 옷’ 보혈의 흰 옷을 덧입음으로,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슥 3:3-5).” 오히려 우리의 더러운 죄의 옷을 벗기시고 이를 정죄하던 사탄을 꾸짖으신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2).”

 

우릴 언제나 정죄하려 하는 사탄을 막으시고 대적하시는 주께서 오늘도 우리를 돌아보신다.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습 3:5).” 오늘 이 시대는 엄혹하여 다들 서로를 물어뜯으려 하나,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야곱의 대적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결한 자가 되었도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애 1:17-18).”

 

하여 주를 바라는 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9-12).” 아무리 현실이 어떠하고 세상이 어쩐다 해도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 그러므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우리의 억울함과 애통함을 주가 아시나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하여,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그야말로 요즘은 같이 성경을 같이 나누거나 하나님을 더욱 알고자 하여 자신의 삶을 서로 이야기 할 때가 즐겁다. 예전에 알던 관심과 사랑이 아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2).

 

우린 이제 더는 예전의 서로가 아니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6-7).

 

이에,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8-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