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전봉석 2024. 7. 18. 03:24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7-8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 125:1

 

 

예수 재림의 때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천국의 개시와 영원한 나라의 도래를 의미한다. 우리의 구원이 영구히 실현되는 것을 알린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에 대하여(19:1-20:15), 새로운 천지의 도래와 그 묵시에 대하여(21:1-22:5) 알게 한다. 바벨론의 멸망과 구원 받은 성도들의 찬양을 그려주고, 허다한 무리가 예수의 재림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간다. 결국 우리의 끝은 ‘할렐루야’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 19:1).”

 

할렐루야는 주를 찬송한다는 것으로,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시 111:1-4).

 

이는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삶으로 살면서 익혀가는 성도의 자세다.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며 그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 차지할 영광의 노래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오늘 우리의 호흡이며 매순간 주를 인정하는 일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2:23-24).

 

그러므로 우린 두렵고 떨리지만 또한 기대와 벅찬 간격으로 심판을 기다린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계 19:2).” 오늘 말씀은 그의 심판의 때에 우리가 겪은 이 모든 아픔의 시간을 갚아주실 것이다.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 8:16).”

 

그러므로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 2:2).”

 

앎으로 우린 주를 찬송한다. 우리로 이를 알게 하시려고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리며 누리는 만큼 주를 찬송하게 된다. 전에는 눈이 가려져 이를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음으로 들으려 하지 않았으나,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 분명한 사실 앞에 더는 다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고 보면 참 애쓰며 살았다. 다들 보면 참 사느라 사는 일에 애쓴다. 그러나 우리의 수고와 애씀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려 하심이었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오늘의 이런저런 일들로 혹은 힘들고 답답함으로 주 앞에 선다. 그런 가운데 주의 통치를 구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03:19, 145:13).

 

우리 인생은 마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기어이 우린 그의 신부였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7-8).” 때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우린 이를 바라면서 주의 날을 기다린다.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 24:15-16).”

 

하여,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3-14).”

 

그러므로 우리의 예복은 준비되었다. 이 옷은 우리의 ‘옳은 행실’이다. 곧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5-26).” 결국 우리로 의롭게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이를 이루신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육체의 연약함으로 때론 두렵고 때론 외로우나 이 또한 어느 순간에 이르러는 이 모든 게 주의 은혜였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곧 오늘 우리가 견디며 수고하는 이 모든 일은 혼인잔치에서 누릴 영원한 즐거움과 비례한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계 19:9-10).”

 

오늘 말씀은 내 안에 소망을 두신다. 이를 가지고 참고 견딤으로 이렇듯 주의 이름을 부르는 데서 영광을 찬송하게 하신다. 즉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러므로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5-26).”

 

그런 가운데 은혜를 입으면서도 악을 행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약함이어서 그런 가운데도 믿음으로 산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우리의 모든 결국은 선을 이룰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곧 때가 어떠한지, 그들 속에서 우리가 살며 자칫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로 그릇 행하여 갈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하여 오늘도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 앞에 선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0-11).”

 

나는 이렇게 말씀을 찾아가고 그때마다 마주하는 말씀 가운데서 내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장차 얻을 면류관을 생각한다. 때로는 오늘의 가시관을 부담스러워 할 때도 있지만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1-13).”

 

그러므로 오늘도 말씀의 옷을 입는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4).”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겪는 이 모든 일은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6-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로 영광을 받기 위해 또한 고난도 받는다. 누가 날 위해 기도할 때면 ‘교회를 지키는 자’로 일컫는다. 그때마다 나는 이 표현이 과분하면서도 좋다. 그야말로 교회를 지키는 자로 나의 하루는 채워진다.

 

이에 매순간이 전쟁이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4-17).” 가장 강력한 적은 내 안의 여러 생각이다. 더러는 회의와 갈등이, 더러는 마음이 약해져서 나의 육신으로도 감당이 안 되고, 더러는 답답하여 밀려두는 마음의 짐이 무거울 때도 있지만… 그러므로 더욱 주를 바란다.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6).” 그러므로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17).” 주 앞에 선다.

 

말씀으로다. 늘 보면 다시 또 말씀으로밖에 달리 이 길을 걸어갈 수도 앞으로도 나아갈 수도 없다. 하여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우린 곧 볼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모든 상황들이 가까운 훗날에 찬송이 될 것을. 그러므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그리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125:1).

 

같이 휘둘리며 금방이라도 꺼질듯 사라질듯 저들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가도,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1:3-4).

 

그렇게,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125: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