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전봉석 2024. 7. 21. 02:55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22:12-13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1

 

 

계시록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은혜 가운데 모든 게 다 끝이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끝이 있어 새로운 시작으로 주와 함께 가는 영원한 길이 열린다. 이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 하는 오늘 말씀으로 위로를 얻는다.

 

우리가 사는 동안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를 흐르게 하셨다.’ 이는 오늘도 나로 그 앞에 앉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겔 47:1).” 이를 묵상하는 데 있어,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12).”

 

하여,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시 46:4).

 

그러므로 오늘도 말씀 앞에 앉아 ‘그 날의 말씀’으로 흐르게 하시는 생수를 마신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8).” 누가 뭐라 하든지 또는 오늘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하신 말씀으로 주 앞에 선다. 그리하여,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이것으로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은 끝을 맺고 영원한 상속을 누린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말씀으로 말씀에 이르러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이는 내가 주로 삼은 이름이고 오늘도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는 외마디 주의 이름이시다.

 

나의 보장 된 나라에서,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 55:1, 3).”

 

이를 마음에 품고 산다는 일은 말씀으로 거한다는 것으로 나의 전부를 바쳐 사는 일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다른 모든 것은 해로 여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이 놀라운 의를 품고 살 때에 오늘 본문의 진술과 같이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그러므로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3-4).”

 

이처럼 말씀을 따라 흐르듯 나를 그 앞에 앉히고 있을 때 비로소 확신한다. 곧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5).”

 

오늘 말씀은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으로 내 안에 더욱 소망을 두신다. 말씀으로 나를 세우시는 일은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더욱 더 말씀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어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7).”

 

아, 복이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28:1).

 

이를 행함으로 오늘도 같은 동선을 따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이름으로 주를 부를 때,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남보다 약한 육신을 이끌고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을 마주할 때에 더욱 더 새 힘을 얻는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하여 바울도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묵상하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12:9).” 그랬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의 약함으로 우리는 주를 더욱 바란다.

 

엊그제 친구에게 그와 같은 말로 위로하다 내 안의 은혜로 나도 또한 감사하였다. 더는 저주가 없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슥 14:11).” 이 놀라운 은혜의 나라에는 애통함도 아픔도 사망도 없는 것으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1:4, 22:5).”

 

그러므로 오늘도 오늘의 한 날로 족하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습 3:15).” 하신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16-17).”

 

나는 이와 같은 말씀을 찾아 입에 머금고 주를 바란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이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찬송함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나의 곁에 고통 중에 있는 누구를 생각한다. 어떤 이의 말 못할 사정을 두고 마음을 같이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세상을 추구하듯 사느라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는 또 한 사람도 위하여 기도한다. 저의 구구한 사연을 뒤로 하고 부디 그 남은 생은 주만 바라보기를. 이를 위하여,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 22:30).”

 

이 놀라운 영광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다시 밤이 없다.’ ‘등불과 햇빛도 필요가 없다.’ 그 곳에서는 ‘주 하나님이 나를 비취심이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3).” 이에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사 60:19-20).”

 

이를 놓고 또 한 사람을 생각한다. 심각한 의처증으로 시달리다 저를 피해 숨어 사느라 딸아이도 보지 못하고 산다는 누구를 위해, 그렇게 마음을 의지하여 곁을 주었던 이가 또한 심각한 우울증으로 힘에 겨워하는 것이어서… 젊은 날의 자신을 피해 오늘에 이르렀더니 이 또한 어려울 따름이라, 나는 저에게 주를 영접하고 예배로 말씀으로 위로와 새 힘을 얻기를 권하지만 저의 대답은 늘 똑같이 ‘다음에’ 하고 다시 또 뒤로 미룬다. 저의 아픔과 그 숨은 슬픔을 내가 열거할 수도 예단할 수도 없으나 분명한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우리의 쉼은 오직 예수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29-30).”

 

믿는다고 하면서도 멍에는 싫은 것일까? 자신이 지고 사는 멍에를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여러 번 권하고 또 권하다 나는 성령을 구한다. 주가 아니시면 저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어서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사 24:23).”

 

결국은,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12).”

 

이와 같은 두려운 말씀 곁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13-14).” 하여 오늘도 말씀으로 서는 것이다. 나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누구의 어떤 일과 그 사정을 두고 안타까워하다 내게 더하신 그 은혜로 더욱 주를 사랑하는 일이었으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17).”

 

이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1).”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하여,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오직 주를 바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