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9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 139:5-6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가보다. 죄악으로 심판을 받아 홍수가 있은 뒤 저들은 다시 또 타락하였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3-4).” 곧 스스로들 자신의 생을 구축하여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삶을 지향한 것이다.
곧 우리의 죄성은 깊은 뿌리로 이어져 이 땅에 사는 동안 완전히 해결될 길이 없다. 결국은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9).”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과 역사와 그 삶의 가지가지는 죽음으로 달려간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이에 성경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 5).”
한 싹, 곧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메시아로 오셨다. 그는 ‘이새의 자손’이셨고,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계셨다. 이를 바울은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9).”
이를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 11:2-4).” 하는 예언으로 보다 치밀하고 엄중하게 우리 곁에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오늘 바벨탑의 역사로 인해 사람을 흩으셨고 언어를 갈리게 하심으로 저마다의 삶 가운데서 ‘남은 자’ 곧 하나님의 사람들을 숨겨 주의 뜻을 이어오게 하신 것이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사 11:10-11).” 이는 우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온 세상에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곧 우리 주 메시아께서는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요 5:22-23).” 그러므로 오늘의 나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 이름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심은 그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이 놀라운 역사가 다시금 바벨탑을 기점으로 우리로 알게 하신 바,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0-31).” 그에 따른 우리의 복음 전파는 예수 재림의 날을 가까이 하는 일이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정직과 선을 갈구한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평안의 세계’를 시작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는 이미 신약신대를 살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죄사함을 알고, 평안을 얻었고, 이 평안의 복음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이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하는 말씀과 같이 ‘다윗의 줄기’라 표현하지 않고,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뿌리라 하심은 메시아의 평범함이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알게 한다.
곧 주의 인성과 그 낮아지심은 출생 후 40일이 지나 ‘비둘기 한 쌍’으로 드린 것으로도 알게 된다.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눅 2:24).” 곧 저는 가난하셨다. 가난도 질병도 죽음도 모두 죄의 결과였다면, 우리의 본질인 이 땅의 흙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하심과 같이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2).” 우리도 오늘 이 모든 사태와 상황 속에서 지혜와 총명으로 주를 경외한다.
즉 우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따라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 복되다. ‘메시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성령의 충만한 기름 부음을 가리킨다. 이에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사 11:3).” 하심은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 몸의 띠를 삼으리라.’ 하시는 것이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4-5).”
오늘을 살면서 이와 같은 날을 맛보아 알 수 있을 때,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6-8).” 이 놀라운 사실이 실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가능하다.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평안과 주가 더하시는 충만한 은혜로 산다는 일은 가히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기이함이다.
부산의 어느 장로님 내외가 영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그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다. 저들은 가만히 주의 이름을 되뇌고 있었고, 찬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옆자리에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저들 노부부의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보여서 말을 걸었고, 그와 같은 일로 영국에 가는 길이란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저는 그때 그 일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결국 자신이 전공하던 공부를 접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부산에 사는 그 장로 내외를 찾아가 후에 그 교회 담임목회자가 되었다. 어디서 들은 누구의 간증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하는 놀라움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이고 섭리다. 곧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나는 여태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사고를 당해봤지만, 어제 처음 경찰서로 가서 피해자 진술이란 걸 해봤다. 그때 당시의 상황을 묻고 답하는 식의 절차인데, 상대편 운전자의 처벌을 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기겁을 했다. 저는 적극적으로 나의 안전부터 확인하고 거듭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여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도 저를 옹호하고 행여 나의 진술이 저에게 해가 될 수 있는가? 하고 되물었다.
결국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20, 25).”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혹은 그와 같은 일이 실제 우리 삶 가운데서도 일어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간증을 가슴에 품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산다. 더러는 그런 우리를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로서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감사하고 영광을 올린다. 어쩌자고 노아 홍수 이후 또 다시 사람들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그런 가운데서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사 11:11-12).”
이 놀랍고 기이한 일 앞에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구주로 오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를 알게 되면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린 그 받은 은혜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괴수’ 같은가를 인정하게 된다. 이로써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나는 나의 지난날 죄의 얼룩 같은 친구들이 오늘에 이르러는 하나 둘 우리가 하나 되어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는 것에 감사하고 영광을 올린다. 이제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6).” 하는 고백으로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고 기도할 있다는 게 놀랍고도 신기하다.
어제는 ‘약사 아이’가 전화하여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때마다 절묘하게 채우시고 충분하게 하시는 손길을 한바탕 수다를 떨듯 늘어놓았다. 초등학교 5학년 주일학교 아이로 만나 그땐 나도 갓 대학생이던 주일학교 선생으로 이어져 온 것이 오늘에 이른 게 신기하였다. 한때는 서로 ‘술친구’로 하나님을 뒤로 하고 살던 시절도 있었는데… 가끔은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기이하고 놀라워한다.
결국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이와 같은 말씀을 이루시기까지 우리 주님은 여전히 날 위해 기도하신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그리하여,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하여 우리 모두가 오늘에 이르러는,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
이와 같아서,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 139:1-3, 7).
이 모든 순간이 주의 것이어서,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4).
이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23-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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