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전봉석 2024. 8. 9. 03:08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창 19:29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시 148:13

 

 

멸망의 성 소돔은 심판을 견디지 못할 세상을 예표한다. 소돔은 늘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신 29:23).” 또한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6-7).”

 

하여,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계 11:8).”

 

장차 죄악으로 멸망하게 될 세상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한 것 같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으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렘 49:18).” 그런 가운데 롯을 의인이라 칭하심이 희한한 정도이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벧후 2:6-7).” 이를 두고,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8).”

 

내가 감히 롯을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저를 두고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이라 칭하는 이 말씀이 없었다면 누군들 롯을 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저를 강권하여 이끌어내심도, 저가 도망하는 중에도 저의 소원을 들으시는 것이나 그럼에도 ‘롯의 처’의 결국과 롯이 그 두 딸들과 있은 일에 대하여 의아할 따름이다. 예수님은 이를 두고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하셨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과 그 결과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이 든다.

 

오늘을 돌아보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8-30).” 정말이지 모든 게 다 아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 듯 성의 구분도 없고 모두가 자기 좋을 대로 서로를 취하거나 범하여 버린다. 뿐만 아니라 소유에 대한 것도 필요에 따른 것이기 보다 마치 가진 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비하는 듯 아무 것이나 그 의미를 더하여 섬기듯 애지중지하다 버린다.

 

곧,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그러한 삶을 부러워하며 추구하다 세상을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곧 우리가 죄의 자리에 머무는 동안 그 고통은 이중적이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 이를 알면서도 롯은 그곳을 선택하였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12).” 그곳에 머물며 당한 수치와 고통이 어떠하였을지는 오늘 본문의 정황으로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일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도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19:18).” 하는 데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결국,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스스로를 옳다 여기는 데는 별 수 없다. 살면서 사는 동안에 이를 깨닫는 수밖에. 기어이 주의 천사들이 강권하여 저들을 끌어냈으나, 그런 와중에도 두 사위는 이를 농담으로나 들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9:14).” 롯의 신앙과 그 권위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18).”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시 107:17-18).

 

그러니,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53:3).

 

누굴 뭐라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이를 돌아보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성경은 이에 따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것을 명하신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왜냐하면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일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12).” 그러므로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

 

이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14-19).”

 

앞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패, 화평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는 방어를 위한 무기다. 이어지는 성령의 칼 곧 말씀과 기도와 간구는 공격과 방어를 위한 무기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진리의 허리띠이다. 당시 갑옷을 입을 때 철갑치마를 두르고 이를 단단히 묶는 허리띠가 중요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의 의는 성결이고 복음은 진리이다. 이와 같은 세상에 우리를 두신 것은 저들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이 단련되어 더욱 주를 바람으로 감사와 찬송을 올리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하나님의 신비로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바울은 이 말씀을 깨닫기까지 사울에서 바울되고 22년이 걸렸다. 저가 처음 로마서를 쓸 때가 주후 55년으로 68년까지 13년동안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말씀으로 가르치는 데 있어 주의 십자가의 비밀이 창세전에 이미 계획하시고 예정된 것임을 가르쳤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그에 앞서 그는 한 사람의 죄로 사망이 이르렀고, 한 사람의 죽으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가르쳤다. 곧 아담의 타락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그 인과관계가 확실하지만 이 모든 일이 창세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데 따른 결과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오늘에 이르러 세상을 보면 그 증거는 점점 뚜렷하여서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3-25).” 가시적으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란은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뿐인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5-6).” 가짜 복음이 판을 치고 사람들은 마치 안개와 같이 쓸려 다니느라 정처 없다. 교회가 교회를 위협하고 복음이 복음을 망각하게 하며, 진리가 진리를 덮어쓰듯 섞이고 뒤엉겨 구분이 어렵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한 곳으로 쏠리고 노인들은 무기력하게 안이하다. 반대 위치에 있는 게 무엇인지 구별이 어렵고, 진리를 대체하려는 게 선을 이루는 것 같아서 반박할 수가 없다.

 

죄는 질서를 파괴한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외치기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2-24).” 성경이 뒤로 갈수록 우리로 주목하게 하는 것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3, 5).”

 

이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7-8).”

 

그러므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하여,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누가 물어 말씀으로 이를 말하면 저는 고리타분하다고 나를 타박한다. 심지어는 광신도로 몰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얼간이로 판단한다. 때가 어느 땐데, 하는 소리와 요즘 시대에는, 하는 소릴 자주 듣는다. 그러면서 교회가 부흥하려면, 성도를 모으려면, 하는 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우린 외형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은혜라 하고 있다. 저마다의 복을 빌어주고 더 나은 사회와 그 사회에서 성공하는 삶으로 복음의 질을 저하시킨다. 값싼 은혜로 전락하여 구원은 믿고 천국 가는 것으로 만족스럽다.

 

그렇듯 소돔을 빠져나오다 그나마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다. 롯은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영광을 올린 것을 볼 수 없다. 그 결과 술에 취했을 때, 롯의 두 딸은 자신들의 꾀로 근친상간을 벌여 두고두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압’과 ‘암몬’을 낳았다. 죄의 결과는 이처럼 참담하게 모든 질서를 파괴한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심지어 사람이 짐승을, 아이를…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겔 16:50).”

 

하여 우리에게 외쳐 붙드시는 말씀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4).” 그리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 고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부디,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148: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