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전봉석 2024. 8. 10. 0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창 20:3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시 149:4

 

 

소돔이 멸망 후 아브라함이 20여 년을 정착하던 헤브론 마므레를 떠나 남방 그랄 땅으로 이주하고 발생한 일이다.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였고, 아비멜렉은 그에 따라 사라를 첩으로 삼으려 했다. 이 일은 24년 전에도 애굽에서 아브라함이 저질렀던 일과 같다. 아브라함의 변명은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창 20:11-12).”

 

더러는 우리의 실수와 그에 따른 잘못에 있어 하나님은 일하신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3).”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의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0).”

 

모든 일 가운데 주의 살아계심과 그의 일하심이 놀랍다. 우리들로 하여금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가 나오게 하신다. 가령 학교 앞 진행차선에 비보호 좌회전 차선이 있다. 언제부턴가 그 차선을 진행금지차선으로 하였는데 나는 늘 개의치 않고 그 차선에서 직진을 하곤 했다. 우측 뒤편 차선에서 누가 그런 나를 블랙박스에 찍힌 것을 신고했다. 무려 과태료 13만원 고지서가 날아와서 알았다.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이를 자진신고 하였더니 얼마가 경감된 과태료만 냈다. 늘 그때마다 주의 손길이 함께 하신다. 일처리를 하는 경찰이 주소지 관할 경찰서로 문의하고 새로 무슨 고지서를 받아 내 일처럼 일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과태료를 납부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져서 나왔다.

 

앞서 사고 당시 상대 운전자나 보험사 직원이나 출동했던 경찰이나 자동차 수리가 다 끝나고 난 정비소 직원이나… 가만히 생각하면 그때마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다는 게 느껴진다. 누구도 함부로 나를 대하지 못하도록 더러는 어려움을 겪게 하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이 중간에 개입하시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런 가운데 주의 말씀은 실전에서의 실제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우린 다만 주를 찾을 뿐이다. 아내는 장모를 모시고 아파트 상가에 개원한 통증의학정형외과를 다닌다. 평소 영양제를 좀 놔드리고 싶은데 가격이 비싸고 비급여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엊그제 아내는 발바닥통증으로 무슨 주사치료를 받는데 주사를 맞으면서 통증에 따라서 주여, 주여, 하며 본인 말로는 호들갑을 떨었던가보다. 의사는 교회 다니시냐? 물었고, 아내는 그 와중에 요즘 물리치료 오는 이가 목사인데 내 남편이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젊은 의사는 자신도 모태신앙이라며 아내와 장모님과 어제는 뜬금없이 나에게까지 무슨 비타민 영양제를 놓아준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저절로 기도를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주의 손길이 우리로 감사와 찬송이 되게 한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22:5).

 

우리 삶의 사소함 속에 하나님의 내주하심이 실질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나는 하는 게 없고 일한 것이 없어 늘 송구할 따름인데 그리하여 참음으로 주어진 생을 이루어간다. 교회가 교회로 건재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주의 손길을 보이신다. 오히려 나는 늘 주 앞에 징징거리듯 주의 이름을 부를 따름인데 주가 이루신다.

 

오늘 아브라함은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나 하나님은 저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그저 우리는 말씀으로 의지하고 주어진 사명을 다할 뿐인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때로는 그것이 약한 몸을 건사하며 묵묵히 주어진 하루를 다하는 것일 뿐이라 해도, 그런 가운데서도 할 수 있는 기력을 다해 해야 하는 일을 두고 맡기신 이를 생각하는 것이었으니… 더러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9-20).” 맡기신 일을 준행하는 데 있어 나의 약함이 나의 감사를 가로 막을 때,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6-27).”

 

오직 주만 바란다는 것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내가 하는 일이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주가 그리 행하게 하심을 따를 뿐이다. 친구가 오는 주일 저녁 비행기로 라오스 선교를 떠난다. 어제는 전날에 앞서 기도하자고 하였더니 따로 회의실에 들어가서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는 저의 선교와 그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체험하고 놀라운 감사와 찬송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위해 기도하였다.

 

기도하자고 기도할 시간을 위해 회의실에 들어가 전화를 한 친구에게서 새삼 귀한 마음을 느꼈다. 우리로 이와 같은 시간과 말씀으로 찾아오실 때,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요일 2:20-21).” 하여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 4:25).” 이와 같은 진리 앞에서 우리의 아는 것이 복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눅 8:18).”

 

있음으로 더 받고, 앎으로 더 아는 사실 앞에서….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3, 5-6).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7-8).

 

이와 같은 말씀으로 산다. 말씀은 실제의 삶 가운데서 실행된다. 그렇듯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왔다 가는 게 없다. 더러는 원치 않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직접 개입하심이 생생하다. 이에,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117:1-2).

 

그때마다 감사와 찬송은 주께 나의 허물과 죄를 고하게 된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32:5).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시다. 나의 실수와 허물을 고하며 그것도 여전히 반복되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는데, 그럴 때면 오히려 유쾌한 날이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19-21).” 이는 새로운 날이 되고, 회복될 때까지 우리로 예수 이름을 간직하게 하신다.

 

일련의 크고 작은 일들이 더러는 슬프고 괴로움뿐인 것 같을 때도 비로소 그 일들을 통하여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무던히 참고 또 하루를 견디는 것 같으나 우리는 전의 우리가 아니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말씀으로 새로운 날들은 소소한 일들 가운데서 주가 함께 하심으로 놀라워서 기뻐한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에 9:22).”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30:11).

 

삶의 한 가운데서 이와 같은 순간을 자주 접하면서 오히려 감사가 되고 찬송이 되는 날들을 산다. 그러할 때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 이제도 주신 날을 다하는 동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3).” 주가 알아주시는 날들이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창 20:17-18).”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기도가 능력이 되게 하신다. 나는 다만 기도할 뿐….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149:4).

 

그러므로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