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 40:8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
요셉이 형들의 미움으로 애굽에 팔리게 된 것도 꿈 때문이다(37:5-11). 그리고 오늘 옥에 갇힌 요셉은 감옥에 갇힌 바로의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다. 감옥에서 요셉은 저 둘을 시중들고, 저들이 꾼 꿈을 해몽하여 그 꿈대로 성취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가까운 훗날에 바로 왕의 꿈(41:9-14)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을 드러낸다.
일련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더러는 그 순간이 억울하고 침통하나 그것까지도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심을 알 때, 오늘 우리가 사는 동안 여러 현상과 일들이 주의 권세 아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곧 있을 제 4회 로잔대회를 앞두고 새삼 교회 연합이나 종교 화합을 운운하는 이들의 이면을 조명하게 된다.
주후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 로마가톨릭의 행위로 구원 받는 데 따른 주장과 성경독점이 무너지면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과 함께 성경이 온 세계의 언어로 전해지면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것을 잘 안다. 이후 반종교개혁 세력으로 예수회가 일어나고 저들의 물밑 작업은 로마가톨릭으로의 단일교회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다 뉴에이지가 온 세계를 뒤덮으며 ‘모든 게 신이다’ 하는 운동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모두 하나로 보는 다원주의가 팽배하여졌다.
암암리에 교회 안에 뉴에이지 사상이 스며들었다. 저마다 산을 오르는 길이 다를 수 있다는 테레사 식 주장으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각 나라의 토속신앙에도 구원이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초대 기독교 대학으로 유명한 곳의 아무개 교수이며 목사는 토착화신앙을 인정하고, 모 교단의 신학교 학장은 <부타와 그리스도>를 하나로 보았다. 그 주장으로 목사직을 박탈당한 뒤에도 그의 사상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작년에 어디 출판사에서 <그때도 지금도 그가 옳다>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첫 발제자가 대한성서공회의 아무개 대표다.
저들이 교회를 배타주의로 배척하는 데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다. 이에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오늘 날 많은 교회와 신학교가 앞서 그러한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요셉의 꿈 해석과 그 일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에 여러 현상을 보면서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잠 29:25-26).” 하신 말씀 앞에서 묵상한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
하여,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하신 데 따라 일련의 사회 현상과 교회들의 그릇됨을 볼수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 앞에 나온다. 저들이 외치는 포괄주의 신앙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 기다리게 된다. 마치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의뢰하였던 요셉과 같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오직 내게 더하신 이 은혜와 말씀을 굳건히 참고 기다리기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하여 오늘도 주신 삶의 현장을 묵묵히 지킬 따름이다.
얼결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교회로 나왔는데 아직 자정이 되지 않았다. 잠결에 시간을 확인한 게 새벽 1시를 넘긴 줄 알았는데, 나의 하루는 눈을 뜨면서 교회로 나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운전을 하고 오면서도 유난히 차들이 많다는 생각은 하였다. 어찌됐든 나의 하루는 주가 열어주시는 한 날의 수고로 족하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이를 위하여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이에 요셉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디에 있든지 어떤 이를 대하든지 저를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였다.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도, 끌려간 옥중에서도 또한 그곳에서 만난 두 관원을 섬김으로 주를 대하듯이 하였다. 이는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주와 같이 행하는 일로,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우리가 주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삶이란,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0-11).”
그러므로 일련의 사태와 사람들의 주장과 허무맹랑한 소리들 앞에 나는 무엇으로 그 기준을 삼고 중심을 잡을 것인지! 다시 한 번 읽어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하신 말씀으로 푯대를 삼는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느니, 모든 게 신이라느니 하는 따위의 허황된 소리에 온 교회가 들썩이고 종교계가 뒤섞여 비화밀교를 드러내는 듯한 이때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19:7-8).
하는 오늘 시편을 다시금 되새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9, 11).
새삼 더욱 부여잡게 되는 것은 성경뿐이다. 말씀으로밖에는 달리 나의 인내로 온전하게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므로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벧후 1:19).” 그러므로 앞으로 점점 더 혼란스럽고 혼탁하여 이리 쓸리고 저리 쓰리기를 숱하게 많은 영혼들이 휩쓸릴 텐데,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말씀으로만이 주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주장과 그 문화로는 서로가 옳다하는 것이어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어쩌면 오늘의 이와 같은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주를 경외함으로 두려워할 줄 아는 일일 텐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주께 아뢰어 기도할 수밖에.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8).”
아닌 건 아닌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다른 것은 인정해야 하나 아닌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겠지만 내어주면 되찾을 길이 없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혼탁한 주장과 자기 논리에 함몰되어버린 현상들을 보면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4-5).” 이것이 오늘의 교회 현실이고, 또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이것이 오늘의 사회현상이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이것이 오늘 앞에 놓인 미래인 것을 안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내가 누구이고 어떤 자이기에 주가 이처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가를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굽혀지지 않을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면 오늘의 이 모든 일들을 보면서,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111:7-8).
그러므로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46:10, 55:11).”
오늘의 모든 현상과 그 위력을 보면서 우리가 주눅 들거나 위축될 일이 아니다. 이는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렘 33:2).” 곧 이 모든 것을 주가 다 아신다. 그에 따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4-25).”
이에,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47:2).
이 또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0, 32-33).” 오늘도 요셉을 앞에 두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곧이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19:1).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9-10).
이에,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1, 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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