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전봉석 2024. 9. 6. 03:06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창 47:9-10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시 26:6

 

 

야곱 일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갔다. 바로 왕 앞에 서서 자신들이 살 땅을 요구한다. 이스라엘이 저를 축복하고 그곳에 머문다. 우리에겐 남들이 알 수 없는 권위와 지혜가 있다. 요셉은 우선 다섯 명의 형제를 택하여 바로 앞에 세웠다.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창 47:2).” 당시 애굽 사람들은 ‘5’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또한 목적하는 바, 자신들이 거처할 고센 땅, 람세스를 요구한다. 요셉의 지혜로 형제들이 거할 땅을 지정하였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 22:3).”

 

우리는 때를 따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이에 우리는 순종함으로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할 줄 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더욱이 이 땅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 아니어서 딱히 세상에 대한 욕심도 그에 따른 소유욕도 없다. 하여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이것은 단순히 누굴 더 사랑하고 누굴 덜 사랑하는 문제로 이해할 수 없다. 곧 그 근본은 주를 따르는 일로 주의 제자로 사는 데 따른,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곧 먼저와 나중의 원리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그야말로 가지각색의 사람들과 나라와 문화와 관습으로 이를 어찌 규합할 수 없다.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단순히 이해와 양보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순간 저이는 아픈 것이다. 그 심령이 상하여 마음이 어려운 것이다. 그냥 싫고, 그냥 좋은 감정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는 것이라 이를 어찌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일로 교회가 떠나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머물러야 하는 것인지, 나는 주 앞에 묻고 또 아뢴다. 누구에게 하소연한들 같이 욕을 하거나 싸우자고 들 수밖에 없다. 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눅 16:10-12).”

 

문득 드는 생각이 겸손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양보하고 손해를 보면서도 참고 인내한다. 그런 가운데 바로를 섬기고 그에게 녹을 먹는 자들을 존중한다. 오늘 야곱을 저를 위해 축복하였다. 요셉은 저의 제사장들의 땅은 몰수하지 않았다. 우리가 저를 높이고 존중하는 일은 주가 세우신 바, 주의 뜻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덩달아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따위의 편가르기에 편승하는 게 아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는 어느 쪽이냐, 하고 물을 때에 우린 항상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이는,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그러할 때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나는 낮아지는 데서 주가 온전하게 세우심을 바란다. 가령 이번 일로 누가 내게 ‘호구’라 하는데, 설령 손해보는 것이라 해도 저를 위함이 아니라 저를 내 곁에 두신 이의 뜻을 헤아려 알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때가 되기까지 더러는 억울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나 내가 분내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주와 함께라면 이 모든 상황에서 견딜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바로에게 일러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9-10).”

 

저의 인생이 험난하기는 하였다.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뒤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 20년의 세월을 살고, 한 여자를 사랑함으로 그녀의 아들을 편애하다 자식들의 불화로 죽은 줄만 알았다가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노년의 때에 다시 저를 만났다. 이것이 누구의 탓인가를 떠나 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바를 바울을 명쾌하게 정의하였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우리의 이 소망은 무엇인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주께서 날 위해 그 사랑을 베푸신 데 따른 위로와 평안으로 오늘을 견딘다. 누구로 인하여 마음이 어렵고 자칫 교회를 옮겨가야 할 처지에 놓이기는 하였으나 이 모든 게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것을 인정한다. 이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곧 하나님은 이상의 현실 넘어 우리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선으로 인도하심을 믿는다. 같이 대대거리며 옳고 그름을 따진들, 상한 영혼의 갈망함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상적이어서 같이 뒹굴 수는 없는 일이다. 순간 더는 어찌 말로다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을 알 때, 저이가 아픈 것이구나! 그 영혼이 상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더는 말을 보태어 그 마음을 어지럽힐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저를 긍휼히 여김으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5-26).”

 

오히려 주가 나를 돌보심을 더욱 확신하였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방향을 알게 하심을 알았다. 내가 용 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 말씀 가운데 거함으로 말씀으로 배우고 익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지금의 문제가 실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 너머의 더 큰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신다. 곧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그러므로 주신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골 3:23-24).”

 

이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시 15:2-4).

 

오직 주만 바라기를. 기근이 심하여 애굽은 물론 온 지경이 다 곤고할 때에 우리는 오히려 영생을 꿈꾸며 소망한다. 그리하여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설령 내가 호구 잡힌 자 같다 해도, 손해를 보며 바보 같다 해도,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이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그러므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이는 다시 ‘먼저와 나중의 원리’를 앎으로 먼저 주의 나라를 구할 때 나중에 모든 것은 주가 이루실 것이다. 아무래도 마음은 심란하고 여러 생각으로 골치가 아프지만 그런 가운데 저들을 이해한다. 주인은 주인대로 세든 자든 세든 자대로 각자의 주장이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내게 와서 부탁을 하는데 나로서야 내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을 벌일 수는 없다. 아, 이 지긋지긋한 에어컨! 이것으로 올 여름 내내 시달리고 물러선다고 섰는데도 결국은 우리더러 새 것을 놓으라고 하면….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더는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차분해진다. 주께 맡김으로 오히려 더 평안하다.

 

“너희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너희의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 11:7-9).”

 

이는,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그러므로 나는 주 앞에 맡긴다. 교회도 나의 모든 사정과 형편도… 그리할 때 진실할 수 있겠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4).” 그리하여 한 세대는 가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창 47:30).” 우리는 주 앞에서 겸허하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26:1-2).

 

이와 같이 아뢸 수 있는 것은,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3-4).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다를 수 있는 것은,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5).

 

그리하여,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8-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