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전봉석 2024. 9. 15. 02:29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출 6:6-7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시 35:13

 

 

우리는 늘 넘실거리는 요단 앞에 서서 건너라, 하시는 말씀 앞에 주저하는 여호수아 같다. 그와 같이 오늘 주의 말씀에도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출 6:12).” 주저하고,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30).” 또 주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심정을 주가 어찌 긍휼히 여겨주시는가 싶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보증을 삼으신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다. 오늘도 본문 가운데서 “여호와”라 강조하시는 부분이 다섯 번이나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2).”

 

그렇게,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하시며 오늘도 참고 또 기다리신다. 곧,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겔 20:14).”

 

이처럼 애굽에 저들을 모으신 것도 이에 다시 그들을 구속하시는 것도 긍극적으로는,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0:44).”

 

그리하여,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하여 오늘의 이런저런 일들이 더러는 나를 괴롭게 하나 그것으로 기도할 때에 시편의 날들은 그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시 35:13).

 

그렇게 하여 삼위 하나님은 그의 이름으로 우리의 보증이 되신다.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1-22).” 이에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그 은혜를 삼게 하려 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그렇게 하여서,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이런저런 일들이 우리로 주 앞에서 복이 되게 하시려고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2).” 그러할 때 기도는 우리의 영적 의지이면서 동시에 무기가 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0:15).

 

그러므로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곧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날의 고난으로 우린 기도한다. 그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경험한다. 늘 채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본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당면한 현실은 사막 같고 광야를 지나는 것 같으나 그 가운데서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울려난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일련의 모든 상황 속에서 여호와의 동산 같은 날을 산다는 일은 기이하면서도 놀랍고 감사하면서도 신비로운 일이다. 이를 내가 몸소 겪고 사는 데서 누구는 우연이라 하고, 누구는 그저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하고 만다 해도 나는 그때마다 주의 손길을 알게 된다. 딱 그만큼, 나로 하여금 감사하는 기도로 주 앞에 설 수 있을 정도로 돕는 손길을 더하시거나 이번에도 임대인이 나서서 교회를 옮기는 것에 반대하며 전기며 에어컨 공사를 다 해주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안다.

 

추석 지나고 그 다음 주 수요일 오전 일찍 자동차 제조사에서 리콜하여, ‘흡기 다기관 교환 및 엔진, 바디 제어장치모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그게 어떤 기능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얼마 전부터 엔진경고등이 들어왔다 얼마쯤 되어 사라지고는 하였는데, 그게 무슨 매연 여과기능에 있어 뭐가 어떻다고 하면서 교체하는데 5년 보증기간이 지나 2백 가까이 들여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었다. 너무 큰 금액이기도 하여 이를 어쩌나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주가 아셨다. 두 주 전에 무슨 문자가 들어오고, 나는 스팸인가 했더니 우편이 오고, 그렇게 정비날짜를 잡아 무료로 교체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어서 실은 지난달에 좀 무리를 해서라도 교체를 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입만 삐쭉 내밀었던 것인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마치 나 여기 있다! 하시면서 내 어깨를 툭, 치시거나 크게 나를 불러 세우시는 것 같다. 주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는 돌이켜 주의 길을 가고 주 앞에 서는 일로 나의 일생이 전환되면서부터 이와 같이 신기하고 놀랍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자주 경험한다.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89:13).

 

그러니 내게 주의 살아계심이란 그저 나의 삶 가운데서 느껴지는 바람결 같고 햇살 같아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는데 어찌 홍시 맛이 나느냐 물으면 내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18:15-16).

 

이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돌이켜 주의 길을 가는 날부터 이를 생생하게 느낀다고 하지만 실은 더 어릴 적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느 단편적인 시간들 곳곳에서 주의 도우심과 인자하심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음을 발견한다. 몇 살 때였을지, 할머니 등에 업혀서 다리 위에서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흙탕물결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의 노모는 어쩔까? 어쩔까? 하고 연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이로써 나의 부친을 강권하여 뒤늦게 신학을 하게 하시고 목사로 삼아 오늘까지 이른 것을 안다.

 

초등학교 시절 잦은 전학과 아이들의 외면과 놀림 가운데서도 외톨이로 혼자 두지 않은 것은 그때마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 더러는 나보다 더 어렵고 힘에 겨워하는 또래이거나(저는 지금 선교사가 되어 어디 동남아 일대에서 인형극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또는 교회 형들이거나(당시 서너 명 이상이었던 형들은 대부분 목사가 되어 누군 어디 신학교 교수로 있고, 누구는 선교사로, 어느 교회 담임 목사로 활동 중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나환자이며 소경 장로로 성경 66권을 모두 암송하며 어린 나의 호기심과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자극하였다. 어느 한 순간도 주가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때로 은혜의 주님으로, 또는 진노하시는 주님으로 나타나셨다. 이것이 결국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막아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여러 나라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겔 20:22).” 곧 나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내 곁의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가 되게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84:11, 145:20).

 

이를 우리로 알게 하시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더러는 실패와 좌절로 더러는 주저함과 망설임으로 나는 늘 주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나 이로써 돌이켜 주의 사랑을 찾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이에,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하여 오늘도 다만 이른 새벽 눈을 뜨면서 교회로 나와 이와 같이 말씀으로 나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며 묵상하는 일, 이를 글로 적어두는 것은 어디서든지 다시 읽고 고치고 되새길 수 있는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또는 누군가 그 한 영혼이 같이 공감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도 족한 것이니… ‘좋아요’나 여러 댓글이나 조회수에 개의치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으로 책을 내겠다거나, 어떤 역할로 쓰임을 하겠다거나 하는 생각도 없다. 오늘, 이 한 날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이를 위하여 내게는 묵상과 이를 글로 적어두는 것이 유익하여서일 뿐이다. 나의 삶에 있어서 언제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또는 하나님의 상황과 여건으로 나를 보호하셨던 것과 같이 나의 이 글이 나에게 먼저 선포되길 기도한다. 솔직하게 이 묵상글을 쓰는 만큼만이라도 주를 간절히 바라고 사는 삶이되기를. 그리하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오늘 모세는 연거푸 주저하고 또 망설이지만 주는 여호와이심을,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하여,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하실 때에,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35:1-2).

 

주께 맡겨드림으로,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3).

 

하는 고백으로,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27-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