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전봉석 2024. 9. 20. 01:58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11:10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 40:1

 

 

결국 갈 데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그런 가운데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11:10).” 이는 하나님이 그리 완악하게 마음을 두게 하사 들을 귀 없는 자로, 굽힐 수 없는 자로 뻗대고 완고하게 하심이었다. 이에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고 따를 뿐이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그와 같아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우리로 주 앞에 승복하게 하실 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그리하여 기쁠 때는 찬송하고 슬플 때는 기도하는 것으로 찬송과 기도는 주를 인정하는 것으로 같은 거였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 103:19).

 

이를 알 때에 우리는 온유한 자가 된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끝까지 기다리시고 또한 참으신다. 우리가 갈 데까지 간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하나님이 참고 또 참아 기다리시는 한계에까지 다다른다는 소린데, 결국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출 11:1).” 하나님은 절대 주의 뜻을 굽히지 않으신다. 그러는 중에 우리의 기도와 찬송이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그러니 더러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나 어떤 일을 두고 씨름할 거 없다. 안 될 것은 죽어도 안 되고, 될 것은 어찌하든지 되게 돼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린 다만 기도하는 게 일이어서 처음에는 나의 요구와 바람을 구하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는 주의 뜻을 구하게 된다. 더욱이 세상을 보면 더욱 그 의미가 선명하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그러니 120년을 노아인들 주를 나타내지 않았겠으며 저들의 죄악이 끝 간 데 없이 가 닿았음을 알리지 않았을까? 그런들, 누가 노아의 방주에 관심이나 가졌겠나? 결국은 하늘이 열리고 땅이 솟아나 방주는 닫히고 비가 퍼부을 때야 알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닫힌 문을 두드리며 아우성을 치다 물에 잠겨서야 후회하며 죽어갔을까?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오늘에서 보면 하나님의 일은 더디고 말씀은 막연하여서 믿는 일보다 안 믿는 일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듯 싶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얻은 구원은 우리가 수고하여 얻은 게 아니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우린 이를 앎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세상은 여전히 잘만 굴러가고 내 곁의 안 믿는 자들은 속 편히 잘만 사는 것 같은 때에 굳이 우리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나 또 갈등이 들 때에도,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 15:11).”

 

부디 주의 은혜로 안 믿는 가족이 또는 사랑하는 이가 돌이켜, 나에게 보이는 것이 저에게도 들리기를. 나에게 들리는 것이 저에게도 보이기를.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이와 같은 시간이 한정되었고 유효시간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두려움으로 받을 수만 있다면….

 

언젠가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시간을 보상하실 것이다. 마침 오늘 말씀 2-3절과 같이,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주가 높이시고 주가 돌아보게 하실 날이 가깝다. 그러므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성경은 오늘이 거저가 아닌 것을 알리신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일이나 견디는 일에 대하여 보상하신다. 또한 주를 거역하고 끝내 거절하는 이에게도 그에 따른 결과가 주어질 것이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6-9).”

 

이와 같은 말씀을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오늘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안다. 주의 이름으로 당하는 일이나 겪는 상황 속에서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히 10:34).” 가끔은 나의 약한 육신으로, 또는 주의 일을 하는 데 따른 어려움으로 되레 주가 주실 기쁨의 날을 소망하고 참는다. 이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2-4).”

 

하여 오늘에 주신 시간과 건강과 물질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서 주가 더하신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러할 때에 어찌 저는 그러했는지…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1, 22).” 주를 따르겠다 할 때에 나의 적당함과 넉넉함이 도리어 나의 온전한 신앙과 믿음을 저해한다.

 

그리하여,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이상하지? 없을 때 더 주께 드리고자 하고 아플 때 더 주를 바라게 되는 것이… 죄로 인한 우리의 망가진 인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좋을 때, 조금은 여유가 있을 때는 어찌 그렇듯 해이한 마음으로 주를 멀리하고 사는지…. 이에,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8-19).” 묵묵히 그저 맡은 자로 충성하여야 한다. 우린 다만 사랑에 빚진 자로 살아간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요일 3:17).”

 

오늘 우리 안에 ‘바로’가 있음을. 이 모든 교만과 완고함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마주하게 하신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11:10).” 그럴수록 상대적으로 주가 인도하시는 삶이 더러는 고난 중의 위로이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7-8).” 그러므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일련의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누굴 탓하고 뭐라 원망할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게 지혜이겠다. 마치 이렇듯 일이 되어 미안하다는 듯 들어와서 에어컨 구멍은 잘 막았는지, 재차 확인하는 저이의 위선에 역겨운 마음이 욱, 하고 일었다. 말로는 죄송하게 됐다고 하면서 눈으로나 그 본심으로는 무엇을 확인하려 왔는지 빤히 보이는데… 생각 같으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그런들. 그런 거 보면 한 사람을 온전히 대하는 일이란 참으로 여러 감정이 동시에 속에서 부글거리는 일이다. 나 역시 내 속을 감추고 다 이해한다는 말투나 표정으로 대하는 일이 역겨웠다. 우린 서로가 정직하지 못하다.

 

그런 우릴 아심으로 주가 이르신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5-6).”

 

마침 동생이 전화를 했을 때 두어 번 통화를 못하고 병원에 물리치료를 하러 가는 길에 통화하면서 나도 모르게 욕을 퍼붓다, 그만 말하자, 입으로 죄 짓는다, 하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리라, 나라고 뭐 그리 선하고 의로운가? 주의 판단 앞에 설 때에 주의 의로 가려지지 않으면 바로 내가 죄인 중의 괴수이다. 주의 할 것은,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오히려 나의 나 된 것을 인정하는 데서 주의 긍휼하심 앞에 통회한다. 구원은 애통해 하는 자의 은혜이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2-4).”

 

하여,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주 앞에 아뢸 뿐이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와 같은 욥의 고백과 신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끝까지 내가 붙들 말씀으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27:3, 118:6).

 

하여 오늘 시편의 세계로 하루를 맞이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40:1).

 

묵묵히 주께만 아뢸 때,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2).

 

그러므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이는,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11).

 

하여,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13,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