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
출 37:29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 66:20
앞서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구조물과 앙장 등의 건축이 기술되었다. 오늘은 성막 내부에 배치될 각종 성물과 관유, 향품 등의 제작에 관계된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곧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지성소 내의 기물들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먼저 법궤와 속죄소를 만들고(1-9), 떡상과 그릇들(10-16) 및 등대(17-24), 그리고 분향단(25-28)을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성막 골격을 이루는 각종 물건들은 화려하고 다양한 재료로 꾸며졌는데 반해 성막 내부의 기물들은 조각목과 정금, 두 종류의 재료로만 제작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위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곧 조각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고, 정금은 신성을 상징한다.
우리는 각종 성물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지니는 모양과 재질 등의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살피고, 각각 역할을 주목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먼저는 약속의 상징인 법궤를 제작하는 일이다(37:1-9). 이 부분은 성막이 완성된 후(36:8-38) 그 성막에서 가장 중심적인 기물이라 할 수 있는 법궤가 앞서 말씀(25:10-22)에 따라 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법궤 뚜껑을 차지하는 속죄소(6-9)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법궤가 지니는 속죄의 기능이 크게 느껴진다.
속죄소는 시은소라 하여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우리를 찾아 오셔서 그 죄를 완전히 덮어 주시는 은혜와 화해의 장소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5:22).”
속죄소가 지니는 영적인 의미에서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씩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있는 법궤의 뚜껑 부분에 위치한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 죄인인 인간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 오직 대제사장이 대속죄일(레위기 16장)에 속죄를 상징하는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신약에 인류의 영원한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서야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8-10).”
이에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피 뿌리는 의식’을 속죄소 위에 거행할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구름이 속죄소 위에 내려와 덮었다. 따라서 이 속죄소는 법궤의 뚜껑 부분에 위치하는 것이긴 하나 우리가 정확히 형상화할 수 있는 그 어떤 모형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물질적 형태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형상화할 수 없는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속죄소는 분명히 법궤 뚜껑이나 그 위에 장식된 그룹들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두 그룹들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 공간은 사람이 임의로 한정하거나 또는 통제할 수 없다.
이러한 속죄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셔서 화해와 속죄와 은총을 베푸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정죄하고 영원한 죽음에 이르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다. 저들이 비록 하나님을 거역하는 애굽이요, 앗수르요, 바벨론이라 해도,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5).” 그리하여 온 만방의 세상이 주를 인정하기까지,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하시는 말씀과 같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게 하시기까지, 구약에는 희생의 피가 뿌려지는 속죄소에서였으며, 신약에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이루셨다. 이에, 구약에서 지성소는 폐쇄적 공간으로 대제사장 외에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이나 오늘의 이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 믿는 자 누구에게든지 공개되었고 자유로운 곳이 되었다.
이제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와 희열을 맛보아 아름다운 신앙을 가꿔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본문에서의 진설병상의 제작에 따른 것으로 대접, 숟가락, 잔, 붓는 병 등을 설명하고 있다(37:10-16).
진설병은 항상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열두 개가 상 위에 진설되게끔 규정되었다.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 24:8).” 이는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에 대하여 온 이스라엘이 감사하는 표시이다. 백성들의 온전한 헌신과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예물이다.
이어서 등대를 제작하는데(37:17-24), 성소 내에서 진설병상(10-16)의 반대 방향인 남편에 배치될 등대(17-22)와 그 부속 기구들(불집게, 불량 그릇)의 제작(23-24)에 대해 언급한다(25:3 1-40). 이 등대는 성소 안을 밝게 비춰 주어 성소 내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가진다. 이 등대는 오늘 본문에서 보면 금 한 덩이를 일일이 손으로 두들겨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출 37:17).”
등대는 성막 내의 다른 성물들처럼 조각목에 금을 덧입힌 것이 아니라 순전한 금으로 재료를 삼고 있다.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24).” 이는 등대에 들인 정성과 많은 시간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곧 순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분향단과 관유 및 향을 제작하는 데 있어(25-29), 본문은 성소의 기물 중 마지막 부분에 이를 기록하여 거룩한 향과 기름에 관계된 물품들의 제작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중 먼저 지성소의 휘장 바로 바깥 성소 중앙에 배치될 분향단의 제작이 앞서 언급되었다(31:1-10). 관유(30:22-33)와 정결한 향(30:34-38)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오늘도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29).” 하고 정리한다.
분향단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향을 피워 올리는 곳이다. 여기서 피워 올리는 향은 성도의 온전한 헌신과 기도를 항상 예표한다. 관유는 성물과 성막 봉사에게 각각 발라 거룩한 존재로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성령이 새롭게 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예표한다. 성막의 각종 기구와 물품들은 신약의 그리스도와 교회를 나타낸다. 당시 이방 문화와 종교의 영향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에 의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졌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살피다보면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각 상황과 그 여건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역사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오늘 시편으로 이를 다시 묵상하면 우리의 찬양과 기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시 66:1-2).
이는 의무이고 당연한 권리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이것으로 오늘 우리는 산다. 나에게 부여된 특권이면서 동시에 의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2:23).
이것으로 오늘을 산다. 아이가 저녁 늦게 카톡을 남겨 아침에 같이 나누었으면 하는 성경을 보내왔다. 고넬료를 만나게 하실 때 베드로의 환상 중에 보이신 내용이다(행 10:11-16). 곧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여기서 먼저 “하늘이 열리며” 곧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이와 같은 내용을 받는 것인데,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그리 행하셨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6).” 얼마든지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그만큼 하나님의 직접 계시는 시의적절하게 나타나셨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 이는 매우 개별적이며 특별하여서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7).” 따로 구분하여 불러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베드로의 환상에서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을 파기하시는 것은 유대의 고질적인 배타적 선민의식을 깨뜨리시는 일이기도 하다. 예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은 온 세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를 “잡아 먹으라.” 하실 때, 우리의 이 복음이 더 이상 유대인을 우선하지 않고 이방인의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하며 자신의 생활신조와 종교적 완고함에 사로잡혀있음 또한 단적으로 보게 한다. 곧 우리의 신앙은 신념이나 개인적인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말하되 아하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겔 4:14).” 하며 스스로 자부하는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는가? 하고 되물으심으로 우리의 전통적 이분법사고를 뒤엎는다. 우리의 신앙은 엄연히 배타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1-12).” 동시에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유추하게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처럼 베드로에게 세 번씩 반복하여 강조하시는 것으로, 더욱 명백하게 또한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사실로 전달하신다. 더욱이 하늘에서 그들, 속되고 부정한 것이 내려오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평소 우리의 선입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이는 곧 이방인과 선민이라는 구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고전 10:25-26).”
오늘도 아이와 나눌 말씀과 오늘 본문을 동시에 그 의미를 살피면서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의 찬송과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66:3-4).
오늘 시편의 시각으로 정리하면,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5).
그러므로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8-9).
그리하여 우리가 주께 올려지는 분향단에서,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14).
나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17, 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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