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레 12:8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시 81:7
우리가 질병에 걸리거나 무슨 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 돌아보아 죄를 정하게 하는 것이 옳다. 죄는 모든 화목을 깨뜨린다. 그러한 일을 죄 때문이라 하면 듣기 싫겠으나 실은 죄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도 스스로의 의로 주 앞에 설 수 없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3-4).
살면서 우린 서로 이와 같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는 하는지. 어느 날 덜컥, 암에 걸리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여 고통 중에 놓일 때 우리로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 앞에 부르짖을 때이다. 그런 가운데 이와 같은 불행은 축복이 된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81:7).
고난 중에 주를 찾으면 주가 우리를 건지신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역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셨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 2:23).” 이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3:7-8).”
이와 같은 원리로 오늘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아무리 어떠한 죄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해도, 우렛소리와 같이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도 주가 응답하신다. 이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고통의 중심에서 나는 은밀한 부르짖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 가운데서도 시내 산에 임재하신 사실을 가리킨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19:18-19).”
이때에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하심은 그와 같은 시련과 고통으로 인하여 주를 찾고 돌이켜 주 앞에 나아오는가? 아니나오는가? 주께서 기다리심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민 20:13).” 죄를 앞에 두고 하나님과 다투어 싸우는 시간이 고통의 때이다.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죄를 운운하면 다들 듣기 싫어하지만 실제 우리에게 닥치는 질병이나 변고나 죽음까지도 실은 모두 죄로 인한 것이다. 이때에 과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도리어 패역한 마음을 가지기 십상인데,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17:7).”
그리하여 주 앞에 엎드려 주를 찾을 수 있을 때가 복이다. 아직 젊은 나이에 어떤 이가 암에 걸렸다. 항암이나 수술을 할까 하다 도로 닫을 수밖에 없이 여러 장기에 전이되었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또는 일생을 주의 사역자로 강단을 지키다 이른 노년에 이와 같은 질병이 찾아오면 우리는 주 앞에 하소연하며 서러워한다. 이것이 우리로 주를 더욱 갈망하게 하거나 더욱 완고하여서 자기 서러움에 어그러지거나….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죄는 분명히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으나 또한 죄는 우리로 하여금 주를 더욱 의지하고 의뢰할 수밖에 없다. 하여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17).” 하고 깨달은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19).” 이것이 실은 우리의 속성이어서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20).” 그러니 어쩔 것인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21).” 이때에 우리는 절규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
결국 아담 이래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으나 또한 그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영원히 하나님과 화목하게도 되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이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한참 이제 그럴 나이여서 그런가? 툭하면 누가 어떤 변고를 알리며 뜻하지 않은 슬픔을 전한다. 우리 몸도 여기저기 아픈 데가 늘어가고 나름의 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는데,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나는 이와 같은 역설을 사랑한다. 몸이 어렵고 힘들 때 주를 더욱 간절하게 구하고 찾게 된다. 어떤 어려움이 느닷없이 닥쳤을 때 우린 저절로 주 앞에 엎드리게 된다. 하여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18).”
은혜란 어디 병에 걸렸다가 나음을 받은 게 아니라 그와 같은 고통 가운데서 주를 온전히 찾았고 바랐고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간 건강한 나의 육신이 또는 적당한 물질과 풍요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가 비로소 그와 같은 계기로 주의 말씀을 찾아 듣게 되는 것이니,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대하 34:31).”
우리로 돌이켜 주만을 바라게 하는 것이 은혜이고 복이었다. 설령 그것으로 더는 손쓸 수 없는 질병이 깊어지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 해도, 그리하여 저 천국을 소망하며 주를 찬미하게 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기어이 주의 말씀으로 소환되는 순간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12:1).
물론 우리 형편이 나을 때 좀 더 젊고 능력이 있을 때에 주를 바라며 주 앞에 온전하여 주가 쓰시는 데 거침이 없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지만… 그러할 때 나는 욥의 이 놀라운 고백 앞에서 감동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여,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3:15).”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화들짝 놀라 나 자신을 돌아볼 때에 주의 은혜로 내가 사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이것이 죄의 역설이다. 죄로 인하여 나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으나 또한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은혜를 입었다. 그러므로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53:3).
이러한 나의 실상에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친구가 어느 모임에서 가까이 지내던 누구 혹은 누구에 대하여 저들이 갑자기 겪게 된 어떤 안타까운 사연을 말할 때, 나는 그들 모임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모두가 ‘예전에 믿던 사람들’이라는 데서 친구의 역할을 생각하였다. 그저 안타까워할 게 아니라 그것으로 도리어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어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어디서 잃어버린 것인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주를 멀리하고 살았던 때를 생각하면 우리 주님은 기어이 돌이키사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이는 우리로 뜻하지 않은 질병에 걸려서 혹은 어떤 실패와 낙심의 순간에 주를 찾게 하시려고, 이내 세상과 같이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죽이시더라도 살리시는 것이 주의 사랑이다. 정죄함이란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이다.
더러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몸부림치다, C. S. 루이스의 <헤아려본 슬픔>에서와 같이 비로소 주의 불가항력적인 사랑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찬미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어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그러므로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딤후 1:5).” 우리로 주 앞에 흠이 없는 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2-5).”
이와 같은 환난의 역설 그 진정한 사랑의 목적은 하나여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할 때에, 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하여 오늘 우리의 죄로 우리가 회개를 하여 우리로 주의 사랑이 어떠하신가를 보다 깊게 또한 넓게 깨닫게 하심이어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81:1).
하여,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6-7).
그러므로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9,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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